'세기의 재판' 승기 잡은 SKB..뿌리깊은 '망 사용료' 갈등 짚어보니

이기범 기자 2021. 6. 26.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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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SKB의 방통위 중재 요청이 넷플릭스 소송으로 이어져
국내 ISP와 해외 CP의 망 사용료를 둘러싼 해묵은 갈등
망 사용료를 놓고 SK브로드밴드와 소송을 벌여 온 넷플릭스가 25일 사실상 패소 판결을 받았다. 사진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킹덤' 행사장에 부착된 넷플릭스 기업 로고. 2019.1.24/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서울=뉴스1) 이기범 기자 =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 간의 망 사용료 소송은 지난해 4월 시작됐다. 2019년 11월 SK브로드밴드가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에 넷플릭스와의 망 사용 갈등을 중재해달라고 요청한 것이 넷플릭스의 소송 제기로 이어졌다. 양사는 그해 9차례 협상을 벌였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보다 앞서 2018년 페이스북의 행정소송 사례가 있다.

이번 소송은 국내 인터넷서비스제공자(ISP)와 콘텐츠제공사업자(CP)의 오래된 망 사용료 갈등에서 비롯됐다. 소송은 넷플릭스의 사실상 패소로 결론이 났지만, 법원이 내린 판결은 계약 당사자 간 해결하라는 내용이어서 향후에도 양사 간 갈등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소송의 뿌리를 짚어봐야 하는 이유다.

◇무임승차냐 이중과금이냐…ISP와 CP간 갈등 표출

이번 소송은 ISP와 CP가 지속해서 갈등을 빚어온 망 사용료를 놓고 법원 판단을 구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특히 ISP와 CP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나오는 사법적 판단이라는 점에서 양사 외에도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이 관심을 두고 지켜봤다.

양사 갈등에 앞서 살펴볼 사례는 페이스북 사례다. 페이스북은 지난 2016년~2017년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등 국내 ISP와 망 사용료 갈등을 빚던 중 접속 경로를 임의로 변경해 속도를 떨어트려 이용자 불편을 초래했다는 이유로 2018년 3월 방통위로부터 과징금 3억9600만원과 시정명령을 부과받았다. 페이스북은 같은 해 5월 행정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 재판부는 1심(2019년 8월)과 2심(2020년 9월)에서 페이스북의 손을 들어줬다.

페이스북의 승소를 계기로 망 사용료를 놓고 국내 ISP를 향한 전방위 압박이 시작됐다. 해외 사업자뿐만 아니라 국내 CP들도 망 사용료 구조 개선 및 비용 증가를 부추기는 상호접속 고시 개정을 주장했다.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의 망 사용료 협상은 이러한 배경 속에 난항을 겪으며 2019년 9차례 협상을 진행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SK브로드밴드는 2018년 10월22일부터 넷플릭스로 인해 트래픽이 급증한 국제망 구간에 대한 증설 비용 지급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SK브로드밴드는 2019년 11월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에 망 사용료 협상을 중재해달라며 재정신청을 했다. 재정은 통신사업자간 분쟁발생, 통신서비스로 인하여 손해가 발생한 경우 사업자가 방통위에 손해배상 또는 각종 의무의 이행을 구하는 제도다. SK브로드밴드는 방통위를 통해 넷플릭스와의 망 사용료 문제를 매듭지으려 했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방통위가 5개월에 걸쳐 재정을 심의한 결과를 발표하기 직전인 지난해 4월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CP가 망 사용료를 낼 책임이 없다는 걸 법원이 확인해달라는 내용이다. 이후 양사는 법정 공방을 벌여왔다. 지난 4월30일 3차 변론까지 양사는 망 무임승차냐 이중 과금이냐를 놓고 팽팽히 맞섰다.

© 뉴스1

◇접속 유료, 전송 무료? 트래픽 놓고도 공방

넷플릭스는 '망 중립성' 개념을 들고나왔다. SK브로드밴드가 이용자에게 이미 비용을 한 차례 걷었기 때문에 넷플릭스로부터 망 사용료를 받는 건 이중 과금이라는 지적이다.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가 과도한 트래픽 유발에 대한 책임이 있기 때문에 비용을 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넷플릭스는 접속료와 전송료를 구분해 전송료에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인터넷망에 접속하기 위한 비용(접속료)을 지불하고 나면 이후 최종 이용자에게 '세계적 연결'을 제공하는 건(전송료) 통신사의 책임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SK브로드밴드는 "접속 유료, 전송 무료라는 인터넷 기본 원칙은 어디서도 없다"며 "망 중립성은 ISP가 합법 콘텐츠를 비합리적인 이유로 차별하면 안 된다는 것이지 망 무료 사용을 말하는 게 아니다"고 반박했다.

과도한 트래픽 유발도 쟁점 중 하나다. 과거와 달리 넷플릭스의 몸집이 커지면서 트래픽 부담이 커졌고 이에 대한 인프라 관리 및 투자 비용이 든다는 점이 통신사들이 내세우는 논리다.

넷플릭스는 캐시서버를 통해 트래픽 부담을 줄여주고 있다는 입장이다. 또 넷플릭스는 자사의 역할이 콘텐츠 제작 및 연결점에 콘텐츠를 구비하는 것일 뿐 연결점부터 이용자까지 콘텐츠 전송은 SK브로드밴드의 역할이기 때문에 여기에 비용을 낼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SKB "법원 합리적 판단 환영" vs 넷플릭스 "무임승차 왜곡된 프레임"

법원 판결은 넷플릭스의 패소로 결론이 났다. 서울중앙지법은 25일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에서 "협상의무부존재 확인부분은 각하하고 나머지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각하는 소송의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않으면 본안을 판단하지 않고 재판절차를 끝내는 것으로 사실상 원고 패소판결이다.

재판부는 "계약자유의 원칙상 계약체결 여부와 어떤 대가를 지급할지는 당사자 계약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며 "법원이 나서 관여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이를 두고 SK브로드밴드는 "이번 법원의 합리적 판단을 환영한다"며 "SK브로드밴드는 앞으로도 인터넷 망 고도화를 통해 국민과 국내외 CP(콘텐츠사업자)에게 최고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판결 직후 넷플릭스는 "법원 판결문을 검토해 향후 입장을 말씀드리겠다"면서도 "전 세계 어느 법원이나 정부 기관도 CP로 하여금 ISP에게 망 이용대가를 지급하도록 강제한 예가 없다"며 "법적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인터넷 거버넌스 원칙에도 반한다"고 반발했다.

또 "ISP가 콘텐츠 전송을 위해 이미 인터넷 접속료를 지급하고 있는 개개 이용자들 이외에 CP에게 대가를 요구하는 것은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외면하는 것이며 이를 두고 '무임승차'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사실의 왜곡"이라고 기존의 이중 과금 논리를 되풀이했다. 이 같은 반발에 넷플릭스가 항소를 예고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SK브로드밴드 측의 소송대리인인 강신섭 변호사(법무법인 세종)가 25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선고 이후 취재진들과 인터뷰하고 있다. 2021.6.25/뉴스1 © News1 김정현 기자

법원 판결을 놓고 ISP와 CP 업계의 입장은 갈렸다. SK브로드밴드 측의 소송대리인인 강신섭 변호사(법무법인 세종)은 판결 직후 취재진과 만나 "넷플릭스가 망 이용료 대가 지급 의무가 없다고 주장한 것을 법원이 기각했다"며 "이는 재판부가 넷플릭스에 망 이용 대가 지급 의무가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밝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CP 업계는 넷플릭스가 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넷플릭스가 졌다고 봐야 할지 판단하기 어렵다"며 "당사자들 간에 해결하라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반대로 보면 망 사용료 계약을 체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아닌가"라고 반문하며 "판결은 넷플릭스가 졌지만 재판부의 의도는 계약의 자유에 손을 들어준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K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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