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슬의 아웃사이트]이 시국에 日덕후 자처한 45명

정다슬 2021. 6. 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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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문화 반향이 보여주는 것
국민감정 고려치 않은 '위안부 합의'가 실패할 수 밖에 없어
이해에 대한 노력의 끈, 외교력 상승으로

현재 외교부에 출입하고 있는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입니다. 딱딱하고 막연하며 어렵게 느껴지는 외교 이슈를 일상 속 언어로 바꿔 여러분들에게 전달해드리겠습니다.

역대 최악의 한·일 관계다. 우리나라에서 친미(親美), 친중(親中)이라는 말은 널리 통용되지만, 친일(親日)이라는 말은 매국노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 덕후를 자처한 45명이 모여 함께 집필한 책이 있다. 한·중·일 3개국에 대해 연구하는 학술모임 ‘동아시아 사랑방 포럼’이 지은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지식의 날개)다.

서울시 종로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디지털미디어센터에서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북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日언론 1면에도 실려

이 시국에 이런 책이 과연 세상에 통할까. 걱정과는 달리 반향은 뜨거웠다고 한다. 지난 5월 출간 보름 만에 이 책은 예스24에서 역사분야 베스트셀러 9위까지 올랐고 6월에는 교보문고 ‘탐나는 신간’에 선정됐다. 현재 3쇄 제작을 앞두고 있다.

일본 언론도 이 시국에 이같은 책이 나왔다는 것에 주목했다. 도쿄신문·주니치신문은 이 책을 1면에 실어 비중 있게 다뤘다.

다만 발간을 주도한 이경수 방송대 일본학과 교수조차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방송대 디지털미디어센터에서 열린 북콘서트에서 이 책이 일본 신문에 1면에 실려 소개되자 반가운 마음보다는 걱정이 들었다고 한다.

민감한 한·일 관계상 이같은 책의 발간의도가 왜곡돼 전달될 수도 있겠다는 부담감에서다. 걱정은 기우로 끝나고, 일본 언론들 역시 섣부른 ‘국뽕’에 취하기보다는 혐한(嫌韓), 반일(反日)이 판치는 세상에서도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진정성’에 주목했다.

한·일 관계가 이토록 엉망이 된 근본적 원인에 대해 외교 전문가들은 괴리된 역사인식을 지목한다. 한국은 일제강점기 시대의 비극과 나라를 되찾기 위해 선조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철저하게 교육한다. 반면, 일본은 갈수록 과거에 대한 책임과 반성이 희미해지고 있다. 요즘 일본 젊은이에게 한국은 ‘과거 식민지’가 아닌 ‘BTS, 명랑 핫도그, K뷰티’의 나라이다.

한·일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한 외교 소식통은 “고노 담화 당시만 하더라도 일본이 한국에 저지른 만행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세대가 많았고 일본 역시 이 부분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해왔다”면서 “그러나 점차 이 세대가 사라지고 현재 세대는 과거에 대한 인식과 반성이 희미하다. 이 틈을 일본 극우 세력이 차지하며 한·일 갈등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외교는 타국과 하는 대화와 협상이지만, 그 스피커의 최종 종착지에는 자국민이 있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2015년 위안부 합의 당시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라며 “내각 총리대신으로서 다시 한번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그는 일본으로 돌아가자마자 “전쟁범죄를 인정한 것은 아니다”라며 태도를 180도 바꿨다.

앞선 메시지가 한국과의 외교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후자는 일본 내 여론을 의식한 정치적 발언이었다. 이는 가뜩이나 피해자를 배제한 협상이라는 한국 내 비판 여론에 기름을 부었고 화해·치유 재단의 해산으로 이어졌다.
2015년 12월 28일 윤병세 외교장관(오른쪽)과 일본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이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 협상 최종 타결을 발표하고 있다.(사진=연합제공)
이처럼 한·일 위안부 합의는 그 내용을 떠나 양국 국민감정을 전혀 고려치 못했다는 이유로 ‘실패’했다. 외교라는 것이 외교관들의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외교, 외교관들만의 일 아냐…국민 감정 중요

국민들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통해 우리나라의 역사, 전통, 문화, 정책 비전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하고 신뢰를 회복하는 공공외교의 중요성을 우리 정부도 익히 알고 있다. 이에 공공외교 5개년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범정부 공공외교 통합조정기구로 공공외교위원회를 2017년 설치했지만 아직 그 활동과 성과는 미비하다. 올해 상반기에는 공공외교위는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공공이 부족한 부분은 민간이 메워야 한다. 사실 이것이 훨씬 더 강력한 힘일 수 있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의 끈을 놓지 않고자 노력해야 하는 까닭이다.

역사의 변곡점마다 휩쓸려 비극을 경험해야만 했던 오키나와의 역사를 조명한 강상규 일본학과 교수는 “일본을 단순한 이미지가 아닌 다층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즐겁지만 어렵다”면서도 “이 즐거움과 고통스러움을 앞으로도 같이 지속해야 나가야겠다”고 말했다.

이 책에는 일본인 10명, 한국인 35명이 참여했다. 이·강 교수와 동아시아사랑포럼은 현재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문화 제2부를 만들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정다슬 (yamy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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