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탄 대신 매화 되찾은 매향리

2021. 6. 26.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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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필국 앵커 ▶

어제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1년이 되는 날이었죠?

◀ 차미연 앵커 ▶

네, 오늘 통일전망대는 한국전쟁 때부터 오랜 기간 피해를 받았던 매향리라는 마을을 찾아가봅니다.

◀ 김필국 앵커 ▶

매향리는 과거 미군 사격장 때문에 주민들이 큰 고통을 겪었던 곳이기도 한데요.

◀ 차미연 앵커 ▶

그동안 이곳을 평화 마을로 바꾸는 작업이 진행됐다는데요.

지금은 어떤 모습일지 이상현 기자와 함께 매향리로 떠나보시죠.

◀ 리포트 ▶

새천년을 맞았던 2000년 5월.

미군 전투기의 오폭사고가 발생하면서 경기도 화성 끝자락에 있는 한 어촌마을이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합니다.

[2000년 5월 11일 뉴스데스크] "포탄 6발을 경기도 화성군 매향리 앞바다 사격장에 동시에 투하하는 바람에 인근 마을주민 7명이 놀라 대피하다가 경상을 입고 농가 수백채의 유리창 등이 파손됐습니다."

봄이면 매화 향기가 마을 전체에 가득했다 해서 그 이름이 붙여졌다는 매향리.

하지만 한국전쟁중인 1951년, 미군의 폭격훈련장이 들어서면서부터 매화향은 화약냄새로 바뀌었습니다.

특히 반백년간 주민들이 폭격의 굉음과 오폭사고로 고통을 겪어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분을 샀고, 결국 2005년 8월 사격장 폐쇄로 이어집니다.

그로부터 16년.

옛 미군 사격장 자리는, 부지매입 등으로 총 1100억원이 투입된 끝에 최근 평화생태공원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우선 해변을 따라 조성된 널찍한 풀밭엔 한반도 모양의 정원이 큼지막하게 만들어졌습니다.

그 옆으론 철새들을 위한 습지가 마련됐고 사이사이엔 한적한 산책길이, 반대편 쪽으론 8개의 유소년 야구장이 웅장하게 들어섰습니다.

평화를 상징한다는 분수가 인상적이었던 중앙정원엔 공모로 선정된 8명의 작가들이 평화를 주제로 만들 각양각색의 조형물들이 조만간 들어선다고 합니다.

[서철모/화성시장] "매향리는 50여년간 미군의 폭격훈련으로 주민들에게 상처와 고통을 준 공간입니다. 이곳을 치유와 회복의 공간으로 만들고 역사를 기억하는 장으로 만들 것입니다."

띄엄띄엄 놓여져 있는 한적한 벤치, 철마다 옷을 갈아입는 다양한 꽃과 식물들, 고즈넉한 전통누각의 그늘은 벌써부터 나들이객들을 조금씩 불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시민] "요즘 코로나시대니까 사람 많은데보다는 좀 없으니까 그래도 자유롭게 놀기도 좋고 그래가지고..."

공원 한가운데에 자리잡은 매향리 평화기념관.

오는 9월 완공을 앞두고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었는데요.

내년에 공식 개관을 하면 이 공원의 랜드마크가 될거라고 합니다.

기념관 옆에 독특한 모양으로 지어지고 있는 높다란 전망대에 오르면 끝없는 서해바다와 함께 그 사이로 멀리, 제철소가 있는 충청남도 당진까지 선명하게 보입니다.

전망대 바로 앞엔 역사를 위해 남겨둘 낡은 건물들이 듬성듬성 자리잡고 있었는데요.

바로 50여년간 미군들이 쓰던 시설들로 조만간 리모델링 작업을 거쳐 교육의 장소로 활용된다고 합니다.

가장 중요한 시설이었던 사격통제소.

[이상현 기자/통일전망대] "바로 이곳이 과거 미군의 폭탄투하 훈련을 통제했던 사격통제소가 있던 곳입니다. 그리고 저 앞에 보면요, 당시 미군 폭탄이 투하됐던 섬, 농섬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수목이 울창해 늘 짙은 녹색을 띠고 있다 해서 짙을 농자, 농섬이라 불린 이 섬은 반백년 폭격으로 거의 3분의 1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마을 입구엔 2년전 평화역사관이 들어섰습니다.

과거 사격장 폐쇄를 요구하며 시위하던 바로 그 자리에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만든건데요.

매향리의 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산더미처럼 수북히 쌓여져 있는 포탄의 잔해들.

넘쳐나던 그 잔해들과 탄피들은 푸줏간의 고깃덩어리나 평화의 꽃처럼 다양한 상징물로 둔갑했습니다.

건물 안쪽 중앙엔 탄피로 가득한 한반도가, 주변엔, 포탄과 함께 수십년을 살아온 주민들의 지혜가 엿보이는 옛 물건들이 전시돼 있습니다.

[전만규/매향리 평화마을 건립추진위원회 위원장] "이게 탄피가 분리돼서 떨어져요. 토요일 일요일 폭격하지 않는 날 농섬 주변 갯벌에 가면 이게 무수히 많이 떨어져 있어요. 이걸 주워다가 주민들이 직접 이렇게 재단해가지고 생활용품으로 사용했던 것이죠."

조명탄 낙하산은 곡식 담는 자루나 모기장으로, 미군 헬멧은 물을 퍼올릴때 쓰던 두레박으로, 포탄의 철은 등잔받침이나 대야로, 모든 것이 재활용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그렇게 썩 어울려보이지 않던 옹기들이 줄지어 눈에 띄었습니다.

열어보니 아주 잘 숙성된 매실청이 한가득이었는데요.

매향리라는 이름처럼 매화향기 가득한 마을로 되돌리고자 주민들이 합심해 마을 곳곳에 7만 그루에 달하는 매화나무를 심었고, 1년전 그 열매를 담가놓은 것으로, 상품화까지 준비중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함께 마을을 바꾸는 과정에서 주민들끼리도 많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전만규/매향리 평화마을 건립추진위원회 위원장] "극심한 소음때문에 사소한 것에서도 신경질적이고 다툼, 이런 것들이 일상이었고 다반사였는데 지금은 사람들의 표정 자체가 아주 안정감 있고 평화스럽고 평온한 모습, 차분한 모습(입니다)"

포염 대신 매화향기가 날리는 마을.

전쟁과 파괴가 아닌 생명과 평화의 마을.

매향리는 그렇게, 70년전 마을, 그때 그 모습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습니다.

통일전망대 이상현입니다.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replay/unity/6281751_291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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