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광화문 떠나는 미국 대사관

김태훈 논설위원 2021. 6. 26.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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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국대사관이 1968년부터 50년 넘게 사용해온 현재의 광화문 청사를 53년 만에 떠난다. 서울 광화문에서 50년 넘게 자리하고 있던 주한 미국대사관이 서울 용산구 용산미군기지 자리로 이전하는 계획을 확정했다고 서울시가 24일 밝혔다. 서울시는 광화문광장에 옛 의정부터 등을 복원하고, 용산을 거쳐 한강까지 연결하는 ‘국가상징거리'를 조성하는 등 광화문광장 일대를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하는 계획을 공개했다. 2021.06.24./뉴시스

을미사변 이후 암살 공포에 시달렸던 고종은 어떻게든 궁궐을 탈출하고 싶었다. 피신처로 미국 공사관을 택했다. 궐 밖 무사들이 경복궁 춘생문을 넘어가 고종을 파천(播遷)시키는 작전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러시아(당시 아라사) 공사관으로 가게 됐다. 아관파천이다. 만약 미국 공사관 피신이 성공했다면 역사에 아관파천이 아니라 미관파천으로 기록됐을 것이다. 그랬다면 우리 역사는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 있었을까. 그때 미국 공사관이 있던 자리가 지금 서울 정동 미 대사관저이다.

▶광복 후 한·미가 정식 국교를 맺은 1949년, 미국 대사관은 현재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이 들어선 반도호텔에 자리 잡았다. 그러다 1968년 지금의 광화문 대사관으로 이전했다. 미 대사관의 광화문 이전 배경엔 한국의 눈부신 성장이 있었다. 한국에 대한 무상 원조를 담당하던 주한미국경제협조처(USOM)가 한국 정부에서 받은 광화문 땅에 1961년 쌍둥이 건물을 지어 하나씩 나눠 가졌다. 이후 USOM의 무상 원조 관련 업무는 줄어들었다. 반면 대사관이 처리해야 할 양국 정치·경제·문화·인적 교류의 비중이 커지면서 미 대사관이 USOM 건물을 차지하고 들어섰다.

/일러스트=김도원 화백

▶세계 모든 강대국의 대사관은 첩보 활동의 근거지이기도 하다. 독일 슈피겔이 몇 해 전 메르켈 총리의 휴대전화를 미국이 10년간 도청했다고 폭로했다. 도청 아지트로 베를린 주재 미 대사관을 지목했다. 광화문 미 대사관도 예외가 아니다. 로비스트 박동선의 미 의회 로비로 시끄럽던 1976년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이 청와대를 도청했다고 폭로했다. 뉴욕타임스는 도청 방법까지 보도했다. 미 대사관이 청와대 유리창의 떨림으로 사람 목소리를 알아내는 원거리 탐지 장치를 동원했다고 했다.

▶미 대사관은 세계 많은 나라에서 테러 대상이다. 그런데 혈맹이자 동맹인 한국에서도 그렇게 될 줄은 몰랐다. 지금 광화문 미 대사관은 높은 담장에 육중한 2중 철문과 철조망, 바리케이드로 외부와 차단돼 있다. 대학생이 사제 폭발물을 투척하고, 반미 단체가 대사관 에워싸기 집회를 벌이며, 승용차로 정문을 들이받는 사고까지 터지는 마당이다.

▶주한 미국 대사관이 대한민국의 영욕을 모두 지켜봤던 광화문 시대를 마감하고 옛 용산 미군 기지 내 캠프 코이너 부지로 이전하는 일이 최종 확정됐다. 새 대사관은 2년 후쯤 착공할 예정이다. 정동 공사관은 대한제국의 쇠망을 지켜봤지만 광화문 대사관은 대한민국의 기적적 도약을 지켜봤다. 용산에 들어서는 새 대사관은 한반도 통일을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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