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가 한지와 사랑에 빠졌다고? 우리 형제 덕분이지요"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2021. 6. 26.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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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김성윤 기자의 공복]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유물 복원 등
韓紙 우수성 알린 김성중·민중 형제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서는 지난 5월부터 ‘부르봉가(家)의 역사’ 전시가 열리고 있다. 전시장에는 18세기 프랑스 풍속화가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Fragonard)와 샤를 르모니에(Lemonnier)가 그린 프랑스 부르봉 왕가 18명의 파스텔 초상화가 걸렸다. 루브르가 지난해 구입해 1년여에 걸쳐 복원 작업을 마친 작품들이다. 작품 복원에는 외발식으로 생산한 전통 한지(韓紙)가 사용됐다.

세계 박물관에서 미술품·문화재·유물 복원에 사용하는 종이는 99% 이상이 일본 화지(和紙)다. 화지가 장악한 복원 분야에서 한지가 일부 작품이 아닌 전시에 나온 모든 작품에 사용된 건 이례적이다. 그 이변에 김성중(39)·민중(34) 형제의 노력이 있었다. 형제는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 외규장각에서 약탈해간 의궤를 돌려받는 일에도 기여했다.

한지를 세계에 알리고자 애쓰는 김성중(오른쪽)·민중(왼쪽) 형제가 전통 외발 뜨기 방식으로 생산한 한지를 펼쳐 보였다. 와인 경매·수입이 본업인 형 성중씨는 “뛰어난 와인과 한지는 숙성할수록 품질이 좋아지고 비싸진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웃었다./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와인 전문가인 형 성중씨와 우주공학자를 꿈꾸던 동생 민중씨가 한지에 빠져든 계기는 박병선 박사와의 만남이었다. 2011년 세상을 떠난 박 박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인 직지심체요절(직지심경)의 존재를 처음 발견해 세상에 알린 ‘직지 대모’이자,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 외규장각에서 약탈해간 의궤를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찾아내 결국 돌려받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주역이다.

형제는 어떻게 박 박사와 만났고 외규장각 반환에도 기여했을까. 어쩌다 한지에 매혹돼 루브르가 한지를 복원 작업에 사용하도록 했을까. 사단법인 ‘미래에서 온 종이’를 설립해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한지의 멋을 세계에 알리고 있는 두 형제를 서울에서 만났다. 다섯 살 차이지만 얼굴뿐 아니라 목소리까지 닮은 이들은 “단골 이발사가 쌍둥이 형제인데, ‘우리보다 손님들이 더 쌍둥이 같다’고 한다”며 웃었다.

◇한지의 우수성 알린 논문 한 권

-종이가 유물 복원의 핵심 재료라니 의외다.

김민중(이하 민): “종이는 그림뿐 아니라 나무로 만든 가구, 가죽 제품, 조각품 등 다양한 유물 복원에 이상적으로 쓰이는 재료다.”

-세계 박물관에서 복원에 사용하는 종이의 99%가 일본 화지라던데.

김성중(이하 성): “모든 박물관에서 유물 복원에는 화지를 사용한다고 보면 된다. 루브르에서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화지만 사용했다. 맏형 격인 루브르가 한지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니 세계 다른 박물관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이번 부르봉가 전시에 나온 모든 작품 복원에 한지가 사용됐다는 것은 그래서 큰 의미가 있다.”

-한지가 화지보다 우수하다는 뜻인가.

민: “화지는 세로로만 뜨기 때문에 한쪽 방향으로 잘 찢어지는 단점이 있다. 반면 전통 외발뜨기 방식으로 제조한 한지는 가로·세로 동시에 뜨기 때문에 양쪽 방향 모두 질기다. 복원은 영구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견고한 한지가 가장 적합한 소재로 인정받은 것이다.”

성: “영국의 한 서지학자가 도서관에 보관된 한·중·일 동아시아 세 나라의 책에 대해 쓴 글이 있다. 중국과 일본 책은 한 쪽으로 휘어있는데, 한국 책만 빳빳하게 서 있더란다. 마치 상자를 세워놓은 것처럼.”

-루브르에서 한지의 우수성을 알게 된 계기가 민중씨의 논문 때문이라던데, 사실인가.

민: “파리 1대학(소르본대학)에서 미술품 복원을 전공하면서 한국인 최초로 루브르박물관 복원실에서 유급 인턴으로 일했다. 그때 논문 주제를 한·중·일 전통 종이 비교로 했다. 그걸 루브르에서 복원용 소재를 연구하는 아리안느 드 라 샤펠 응용연구 담당이 읽은 거다.”

-인턴의 석사 논문을 응용연구 책임자가 읽었다는 건가?

민: “루브르에서 일하면서 드 라 샤펠 담당과 친해졌고, 식사 초대를 받아 집에도 자주 방문하면서 그 분 딸과 친구가 됐다. 이 친구에게 제 논문 교열을 봐달라고 부탁했다. 드 라 샤펠 담당이 자기 집에 있는 내 논문을 봤고, 관련 분야이다 보니 관심을 갖고 읽어본 거였다.”

성: “그 전에도 루브르에 한지는 있었다. 태국, 필리핀 등 다양한 나라의 종이를 참고용 자료로 보관하고 있다. 한지는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논문을 계기로 한지를 복원에 활용하게 됐다. 처음엔 다른 직원들이 ‘국수주의 아니냐’며 비판했다. 한국 사람이 ‘한국 종이가 우수하다, 복원에 사용하자’고 하니 색안경을 끼고 볼 수밖에 없었을 거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한지가 확연하게 우수하다고 나오니 모두 납득하게 됐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오는 9월까지 열리는 ‘부르봉(Bourbon)가의 역사’전 포스터. 전시에 나온 파스텔 초상화 18점 모두 우리 한지를 이용해 복원됐다./김성중씨 제공

문화재 복원가는 그림을 배접하거나, 으깨고 짓이겨 조각·가구·도자기·그림·액자 등에 생긴 흠집을 메우는 등 종이를 다양하게 활용한다. 김민중씨는 2015년 석사 논문에서 한국 한지와 일본 화지, 중국 선지(宣紙)를 과학적으로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수축·팽창률이나 노후화 등에서 복원용 종이로 가장 적합하다는 게 수치로 입증됐다.

또, 유물을 원형대로 유지하려면 복원용 종이에 화학 성분이나 불순물이 섞여 있지 않아야 한다. 일본 화지는 자연산 잿물을 이용한 전통 방식이 100여년 전 이미 사라져 화학 성분이 든 양잿물을 사용하지만, 한국에는 자연산 잿물을 이용하는 노하우가 아직 남아 있다. 유럽 박물관들이 찾는 100% 자연산 종이를 만들 수 있는 요건을 한지가 갖춘 것이다.

-한지가 우수한 종이가 된 배경이 궁금하다.

성: “나는 ‘대한민국의 테루아(terroir)’라고 말한다. 테루아는 프랑스어로 땅이지만 단지 토양뿐 아니라 강수량, 일조량 등 와인의 생산을 둘러싼 자연환경 전반을 뜻하는 말이다. 한국은 종이 생산에 최고로 좋은 테루아를 가졌다. 닥나무 그러니까 원재료 자체가 우수하다. 일본 종이는 굉장히 부드럽다. 그렇게 만들려는 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나온다. 일본 기후가 습하지 않나. 반면 겨울이 습하지 않은 한반도에서 만든 종이는 단단하고 질기다.” 같은 고추도 일본 열도에 심으면 맵기만 한데, 한반도에서 재배하면 단맛이 감도는 ‘맛있게 매운’ 고추가 되는 이치와 비슷한 걸까.

-내년 루브르박물관 아부다비 분관에서 열리는 세계 종이 전시에서 한국만이 유일하게 국가 방이 생긴다고 들었다.

성: “종이에서 태어나 종이에서 죽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태어나면 종이 꼬아 만든 금줄이 걸리고, 죽으면 종이 수의를 입힌다. 무명·삼베 수의(壽衣)만 알지만 한지장(韓紙匠)들은 종이로 수의를 지었다. 집 바닥도, 벽도, 창문도 종이고, 옷·모자·허리띠·신발 심지어 물통까지 종이로 만든다. ‘종이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기회, 루브르가 우리에게 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한지를 세계적인 박물관이 사용한다니 뿌듯하다.

성: “저는 반대로 생각한다. 외국에서 한지를 복원 작업에 사용해줘서 뿌듯한 게 아니라, 우리 종이가 있기 때문에 그들의 문화재를 제대로 복원할 수 있으니 고마워해야 한다. 우리가 그들을 돕는 일이다.”

루브르박물관에서 한지를 사용해 유물을 복원하는 김민중 복원가./김성중씨 제공

◇엄마에게 ‘속아서’ 간 프랑스 유학

김성중·민중 형제는 프랑스에서 공부했다. 동생 민중씨가 먼저, 중학교 2학년이던 2001년 여름 프랑스로 갔다. 우주공학자를 꿈꾸던 민중씨는 파리12대학 공대에 진학했다.

형 성중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바텐더와 소믈리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여러 술을 섭렵하다 와인에 반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2006년부터 3년간 파리4대학에서 프랑스어를 익힌 뒤 디종에 있는 유명한 와인 고등교육기관(그랑제콜)인 ESC고등상업학교에서 공부했다. 성중씨는 와인 유통 회사를 차려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작지만 뛰어난 와인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자크 셀로스, 다비드 레클라파, 에마뉘엘 브로셰, 조지 라발 등 이제는 와인 애호가들이 이름만 들어도 군침을 흘리는 샴페인 여럿을 국내에 처음 들여왔다.

-민중씨 자신은 유학 떠나는 줄도 몰랐다던데.

민: “그냥 파리 여행인 줄 알았다. 어머니가 평소보다 저한테 잘해 주셔서 살짝 이상하긴 했다(웃음). 며칠 뒤 아침에 일어나니 어머니는 사라지고 책상에 편지 한 통만 놓여 있었다. ‘네가 일어났을 때쯤이면 나는 공항에 가 있겠지. 프랑스에서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내용의 편지였다.”

성: “사실 다른 가족들은 미리 알고 있었다. 동생만 몰랐지. 다 계획이 있었다(웃음).”

-갑자기 가족도 없는 외국에서 어떻게 적응했나.

민: “원래 프랑스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1998 월드컵에서 우승한 프랑스 축구 선수들, 특히 지네딘 지단을 굉장히 좋아했다. 루브르에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림도 정말 좋아해서, 파리에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다. 마침 우리가 ‘할머니’라고 부르던, 부모님 친구의 어머님이 파리에서 선교사로 활동하고 계셨다. 그분 댁에서 같이 살아서 덜 외로웠다. 말도 빨리 배우고 친구도 금방 사귀었다.”

-성중씨는 왜 대학에 가지 않았나.

성: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옷을 팔았다. 동대문에서 옷을 사다가 인터넷에서 판매했다. 인터넷 쇼핑몰이 막 생겨나던 때였다. 저는 늘 새롭고 재미난 일을 궁금해하던 아이였다. 돈을 충분히 벌었고, 굳이 대학에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담당하는 소믈리에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너무 매력적이더라. 레스토랑 사장님이 주류 아카데미에 다니게 해주셨다. 내가 이쪽에 재능이 있다고 느끼셨던 것 같다. 그러다 와인 경매를 알게 됐다. 어떤 술이길래 미술품처럼 경매까지 하나 궁금했다. 와인에 완전히 빠졌고, 공부를 계속하러 프랑스에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조기 입대해 군대 문제를 해결하고 프랑스로 갔다.”

-부모님이 반대하진 않았나.

민: “우리 부모님은 자식들이 하고 싶어하는 걸 다 밀어주신다. 믿고 맡기고 책임지게 한다. 공부 안 하고 옷 장사할 때도 기꺼이 허락하셨고, 와인 하겠다고 했을 때도 전폭 지지하셨다.”

2011년 별세 후인 2014년 4월 방송된 KBS 스페셜 박병선 박사 편에 출연한 김성중·민중 형제./방송 화면

◇통·번역가로 박병선 박사를 만나다

박병선 박사와 형제의 만남은 2008년 이뤄졌다. 동생 민중씨는 “한국 문화와 별 연관 없는 삶을 살다가 박사님을 만나고 우리 전통이 정말 대단하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박사님을 만난 계기가 있었나.

성: “서울대 졸업하고 파리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분과 친하게 지냈는데, 그분이 ‘박사님이 프랑스어·한국어 통·번역 능통한 사람을 찾고 있더라”며 우리를 추천했다. 박사님을 찾아가니 문서 하나를 주시면서 번역해보라고 하더라. 그걸 완벽하게 번역해서 가져갔다.”

민: “병인양요 때 강화도 외규장각을 약탈한 프랑스 극동함대 피에르 귀스타브 로즈(Roze) 제독이 쓴 편지였는데, 흘려 쓴 필기체라 읽기 힘들었다. 프랑스어에 능숙하더라도 한국 사람들은 대개 인쇄된 글씨만 보니까 필기체를 읽기가 어렵다. 그런데 나는 프랑스에 오래 있으면서 프랑스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이 쓴 손 글씨를 많이 읽다 보니 상대적으로 쉽게 읽을 수 있었다.”

형제는 그렇게 박병선 박사의 ‘직지문화연구소’에서 일하게 됐다. 4년간 형제가 맡은 주요 업무는 외규장각 관련한 고문서 번역. 로즈 제독이 프랑스 외무장관에게 보낸 편지 분석이 핵심 업무였다. 의궤 반환의 당위성이 편지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2011년 마침내 의궤 297권이 영구대여 형식으로 145년 만에 대한민국으로 반환됐다. 형제는 “너무나 뿌듯했다”고 했다.

-곁에서 본 박병선 박사는 어떤 분이었나.

민: “박사님은 어떻게 외규장각을 찾아냈는지, 직지를 어떻게 연구해왔는지 등 그간의 경험을 우리에게 늘 말씀해주셨다. 박사님을 통해 한국 전통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셈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 문화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됐고, 인쇄의 핵심인 종이 즉 한지가 얼마나 우수한지 알게 됐다.”

성: “박사님은 외규장각 의궤가 프랑스 국립도서관 베르사유 분관 폐지 창고에 버려지다시피 방치돼 있다는 사실을 공개하고 한국에 알렸다는 이유로 국립도서관에서 해고당하셨다. 유통기한이 1년도 넘게 지난 통조림으로 끼니를 때울 만큼 어렵게 사셨지만, 후회는 없다고 하셨다. 단, ‘결혼은 해볼걸, 후회한다'고는 하셨다(웃음).”

◇반도체와 함께 한지는 미래의 먹거리

박 박사와의 만남 그리고 직지문화연구소에서의 작업은 민중씨의 진로를 우주공학자에서 문화재 복원가로 바꿔놨다. 민중씨는 “이공계 마인드로 문화재에 다가가고 싶었고, 문화재를 과학적으로 다루는 분야인 복원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파리10대학 예술사 전공에 합격한 민중씨는 3년 과정으로 입학 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갖춘 뒤 바늘구멍보다 들어가기 힘들다는 파리1대학(소르본대학) 미술품 보존복원학과에 입학했고, 루브르 복원실의 유급 인턴으로 일하게 됐다.

민중씨가 2015년 군복무를 위해 한국에 돌아간 동안 루브르박물관은 형 성중씨를 한국의 한지 장인들과 루브르를 연결해줄 ‘커뮤니케이션 디렉터’로 임명했다. 민중씨가 전역하고 두 달 뒤인 2017년 11월 루브르에서 한지를 주제로 한 콘퍼런스가 열렸다.

-어떤 주제의 콘퍼런스였나.

민: “한지를 이용해 루브르가 소장한 합스부르크 왕가 막시밀리안 2세 책상 복원 사례 등이 발표됐다. 루브르에서 한지의 우수성을 알게 된 후 처음 복원에 적용한 사례였다. 한지의 존재조차 모르던 박물관 관계자들이 한지의 우수성을 알기 시작한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후로 루브르에서 전주, 문경, 안동, 괴산 등지에서 생산한 한지를 유물 복원에 사용하고 있다.”

형 김성중(오른쪽)씨가 전통 한지를 펼쳐 보이고 있다. 동생 김민중 복원가가 들고 있는 건 한지로 만든 서명록이다. 형제는 “3년 전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때, 남북미 3국 정상이 평화협정서에 서명할 것을 대비해 준비한 서명록인데, 회담이 성공하지 못해 쓸 일이 없었다”고 했다./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와인 일을 하던 성중씨가 사단법인 ‘미래에서 온 종이’를 만든 이유는 뭔가.

성: “루브르와 2년마다 한지 관련 콘퍼런스를 열기로 했는데, 단체가 아닌 개인은 국제 학술 대회를 할 수가 없더라. 2018년부터 준비해 2019년 7월 서울시 승인을 받았다. 덕분에 2019년 11월 두 번째 콘퍼런스를 열 수 있었다. 루브르에서 9세기 만든 쿠란(이슬람 경전)을 한지로 복원한 사례가 발표됐다.”

-돈 되는 일은 아닐 텐데, 생업에 지장은 없었나.

성: “물론 지장이 있지만 너무도 귀한 일이다 보니 허투루 할 수 없더라.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와인 일을 거의 멈추고 한지에만 집중했다. 사단법인 운영에 와인 팔아서 번 돈까지 썼다. 다행히 와인 사업을 재개할 수 있어 큰 문제 없이 병행하고 있다.”

-한지를 살리고 알리는 일이 왜 귀한가.

성: “한지가 우리나라의 미래 먹거리라고 생각한다. 닥나무가 가장 잘 자라는 나라가 한국이니 가장 좋은 종이를 만들 수 있다. 반도체처럼. 종이는 중국에서 발명했지만 중국이 인정할 만큼 최고의 종이를 우리가 만들어냈다. 반도체 만드는 법을 일본에서 배워왔지만 지금은 세계 최고인 것과 비슷하다. 그동안은 대량생산을 통해 값싼 종이를 생산하는 시대였다면, 이제는 귀한 종이가 만들어질 시기가 왔다고 본다.”

-가장 시급한 일은 뭔가.

민: “파리에 한지를 저장할 공간이 없다. 박물관에서 필요로 할 때 바로바로 한지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복원가가 ‘한지로 한번 해보자’ 했을 때 바로 제공해야 하는데, 없으면 기존에 써왔던 화지로 간다. 사실 지난해 루브르에서 이탈리아 르네상스 거장 라파엘로의 작품을 한지로 복원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일반 우편으로 한 달, 특송으로도 일주일이 걸려야 한지를 받을 수 있어서 기회를 놓쳤다.”

-앞으로의 꿈, 혹은 계획은?

민: “한지로 문화재를 복원하는 인력을 양성할 학교를 설립하고 싶다. 국내 복원 전문가 대부분이 일본에서 화지로 복원하는 방법을 배웠고, 우리나라 문화재마저 화지로 복원하는 실정이다. 한지를 사용하는 복원 전문가가 많아지면 세계 박물관들도 한지를 사용하는 비율이 높아질 것이다.”

성: “뛰어난 와인은 숙성될수록 품질이 좋아진다. 한지도 마찬가지다. 우리 한지를 서양에 소개하고 서양의 와인을 한국에 소개하는 게 나의 천직인 것 같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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