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코리아] ‘아아’ 세대의 공정

김미리 주말뉴스부 차장 2021. 6. 26.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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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생에게 뜨거운 커피는 사치… 빨리, 싸게 잠 깨우려 찬 커피 마셔
‘눈물 젖은 아아’ 마시는 2030에겐 흘린 땀방울의 양이 공정 잣대
아이스 아메리카노/이명원기자

‘따뜻한 아메리카노(따아)’냐 ‘아이스 아메리카노(아아)’냐. 무더위가 슬슬 시동 거는 유월 하순, 카페 주문대에서 종종 고민한다. 계절을 반 박자 추월해 에어컨을 빵빵하게 튼 카페에서 찬 커피를 마셨다가 배탈 난 적이 여러 번. 목구멍까지 넘어온 ‘아아’ 소리를 삼키고 따뜻한 커피를 시켰더니, 같이 간 20~30대 후배 손엔 모조리 송골송골 물방울 맺힌 아이스 커피가 들려 있다.

‘따아’와 ‘아아’를 오가는 낀 세대여서일까, 얼마 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발언이 퍽 신선하게 들렸다. 이 대표는 본지 팟캐스트 인터뷰에서 직설 화법이 자칫 건방져 보일 수 있다는 말에 “주변 충고를 다 녹여 내리면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존재하기 힘든 물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어불성설을 뜻하는 즉흥적 표현인데 ‘차가운 핫 아메리카노’가 아니라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커피 하면 ‘아이스’를 기본 값으로 하는 MZ세대(20~30대) 사고방식이 은연중에 담겼다.

젊은 세대의 ‘아아’ 사랑은 실로 뜨겁다. 광화문의 단골 카페 직원은 요즘 20~30대에선 ‘아아’와 ‘따아’ 주문 비율이 9대1 정도인데 겨울에도 거의 변함없다고 했다. 한 드라마 대사에도 나오듯, 아메리카노를 ‘커피 헹군 구정물’ 취급하는 이탈리아 등 유럽에선 그들 기준으로 ‘구정물에 얼음까지 띄운 격’인 ‘아아’에 대한 한국인의 사랑을 신기하게 본다.

한겨울에도 아이스를 고집하는 소위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를 줄인 신조어)를 보며 “피 끓는 청춘이 한겨울에 반바지, 미니스커트 입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20대 몇 명과 대화하다가 미처 생각지 못한 이유를 들었다. 갓 입사한 20대 중반 A는 “고달픈 취준생(취업 준비생) 시절 ‘가장 빨리’ ‘가장 싸게’ 피곤에 전 몸을 깨우는 방식이 1500원짜리 ‘아아’였다”고 했다. 뜨거운 커피를 호호 불며 식혀 먹을 마음의 여유조차 사치인 취준생이 카페인 덩어리를 원샷으로 쭉 털어 넣을 수 있는 길, 시린 취업 전선에서 버틸 전투식량, 그것이 ‘아아’라는 얘기였다. 20대 취준생 B는 “우유 넣고, 크림 올리면 500원 정도 추가되는 것도 얇은 지갑엔 부담이어서 제일 싼 메뉴를 고른 것”이라고 했다.

종합하자면, 이 세대에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란 ‘마음의 여유 없는 삶’(아이스)과 ‘금전적으로 빠듯한 삶’(아메리카노)의 합성어인 셈이다. 이들에게 ‘피, 땀, 아아’는 한 세트였다. 2~3년 전 ‘얼죽아’란 말이 등장한 시점이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 정책과 맞물려 청년 취업난, 주택난이 극으로 치닫기 시작한 시기와 묘하게 겹친다는 사실이 우연만은 아닌 듯하다. 이 시대 청춘의 애환이 서린 음료를 두고, ‘혈기 왕성한 젊음의 표상’쯤으로 치부한 것이 미안해졌다.

험난한 취업 전쟁, 빠듯한 살림 속에서 ‘눈물 젖은 아아’를 마시는 MZ세대에게 그래서 ‘공정’의 잣대는 더 엄격하며 명료하다. 흘린 땀방울의 양만큼 성공하는 것이 공정이다. ‘아아 세대’가 이렇다 할 정치 경험 없이 1급 공무원으로 ‘벼락 승진’한 25세 청와대 청년 비서관에게 뜨겁게 분노하는 이유다. 이들이 문제 삼는 것은 그의 물리적 나이가 아니다. 그가 흘린 피와 땀의 양이, 인고의 시간이, 좌절의 깊이가 그 자리에 합당한지를 묻는다.

차가운 각성제를 들이켜며 정신 번쩍 차려야 할 이들은, 새벽잠 떨치고 공부하러 일하러 가는 이 시대의 청춘이 아니라, 그들의 비애를 공감하기는커녕 오독(誤讀)하는 위정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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