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날 맨날 기도혀요"..100세 할머니가 시 한편 들고 군청 찾은 까닭은

김동욱 2021. 6. 2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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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완주군 동상면 수만리 입석마을에 사는 100세 시인 백성례 할머니는 요즘 주름진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었다.

할머니가 구술(口述)한 시 '100세 할머니의 소원'은 4편의 자작시와 함께 지난 4월 동산면사무소가 마을공동체 육성 프로그램 일환으로 발간한 주민채록 시집 '동상이몽-홍시 먹고 뱉은 말이 시가 되다'에 수록됐다.

특히 입석마을에서도 최고령인 백 할머니의 아픈 삶의 파편이 녹아든 시는 진한 감동을 줬고, 그렇게 유명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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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완주군 동상면 수만리 입석마을에 사는 100세 시인 백성례 할머니는 요즘 주름진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었다. 국내 8대 오지로 불리던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한평생 생활하면서 가슴에 쌓였던 겹겹의 한을 5편의 시로 풀어낸 이후 변화다.

암(아무)것도 바랄 게 없고 / 그냥 그냥 웃고 살지 // 아들딸 걱정할까 / 아플 것도 걱정이여 // 아, / 팔십 먹은 할매(할머니)들도 / 치맨(치매)가 먼저 잘 걸린댜(다) // 나도 안 아프고 / 영감 따라 후딱 가는 게 / 소원이여.

할머니가 구술(口述)한 시 ‘100세 할머니의 소원’은 4편의 자작시와 함께 지난 4월 동산면사무소가 마을공동체 육성 프로그램 일환으로 발간한 주민채록 시집 ‘동상이몽-홍시 먹고 뱉은 말이 시가 되다’에 수록됐다.

시집은 오지마을 어르신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담고 있어 선풍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입석마을에서도 최고령인 백 할머니의 아픈 삶의 파편이 녹아든 시는 진한 감동을 줬고, 그렇게 유명인이 됐다.

시집 발간 이후 할머니의 삶이 180도 바뀌었다. 하릴없이 앉아 있던 방에서 나와 집 앞 텃밭을 가꾸고 손주와 함께 동네도 한 바퀴씩 도는 등 활동이 잦아졌다.

할머니의 하루는 아침 기도로 시작한다.

맨날 맨날 기도혀요 // 나라가 잘되라고 / 기도허고 // 대통령이 잘허라고 / 기도허고 // 정부도 잘허라고 / 기도허고 // 아들딸 며느리도 잘되라고 / 기도혀요.(100세 할머니의 기도)

아들 유경태(63)씨는 “시로 표현한 ‘나라 사랑’이 어머니의 진짜 순수한 마음이다. 맨날(매일) 저렇게 기도하신다”고 말했다. 노모가 아들딸 잘되라고 기도한 것이 약발이 먹혔는지 올해는 산에 놓아둔 벌통 열두 개 안에 유난히 벌들이 많이 들어찼다고 아들 부부는 즐거워한다.

할머니는 25일 평생 바라온 소원 하나를 풀었다. 며느리 손을 잡고 난생처음 군청을 방문할 기회를 가졌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이날 자작 시 ‘100세 할머니의 기도’를 액자에 담아 박성일 완주군수에게 깜짝 선물했다.

백 할머니는 “일제와 6·25전쟁을 거쳐 수몰 지역 삶의 아픈 이야기를 책으로 맹글어(만들어) 가슴에 응어리로 남았던 한을 후련히 털어낼 수 있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며느리 원영수(58)씨는 “어머니의 살아오신 이야기가 시가 되고 책이 되니 온 동네에 웃음꽃이 피었다”며 “이게 바로 문화이고, 완주가 왜 문화도시로 선정됐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고 거들었다.

박 군수는 “어르신 한 분이 돌아가시면 역사 하나가 사라진다는 말이 있다”며 “한 세기 동안 지역을 지키고 부지런히 삶을 일궈온 주민들의 행복과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해 더 꼼꼼히 챙겨 나갈 것”이라고 화답했다.

완주=김동욱 기자 kdw763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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