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희의 영화 같은 하루] [24] 시대의 기후에 발맞춰

황석희 영화번역가 2021. 6. 2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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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climate of the era
‘세상을 바꾼 변호인(On the Basis of Sex∙2018)’.

“아홉 명 정원의 대법관 중 몇 명이 여성이 되어야 충분할 것 같습니까?” 미국의 연방 대법관을 지낸 한 여성 판사는 이런 질문을 받으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아홉 명입니다.” 많은 이가 극단적이라 말하지만 그는 담담하게 소견을 밝힌다. “남성 아홉 명이 연방 대법원을 이끌었을 땐 그 누구도 거기에 의문을 품지 않지 않았습니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On the Basis of Sex∙2018)’의 주인공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말이다.

1956년, 하버드 로스쿨 신입생 500명 중 여성은 단 9명이었다. 긴즈버그는 출중한 성적으로 입학했지만 교내에는 노골적 성차별이 있었다. 심지어 식사에 초대한 학장조차 여학생들에게 “남학생들에게 돌아갈 자리를 차지한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같은 법학도였던 남편 마티가 암으로 쓰러지자 긴즈버그는 학업을 그만두고 남편 대신 로스쿨에 출석했다. 마티를 극진하게 보살피며 학업을 도운 결과 마티는 완치돼 로스쿨을 졸업한다. 이후 긴즈버그도 컬럼비아 로스쿨에 편입해 수석으로 졸업하지만 대형 로펌들은 여성이란 이유로 긴즈버그를 채용하지 않아 결국 대학에서 법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된다. 법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던 긴즈버그는 이런 세상에 절망한다.

세법 변호사였던 마티는 이런 긴즈버그를 위해 세법에서 남성이 차별받고 있던 케이스를 말해주며 그 케이스를 이용해 역으로 여성 인권을 주장할 수 있지 않겠냐며 소송을 주선한다. 이것이 훗날 역사적 재판이 된 ‘찰스 모리츠 대 국세청장’ 재판이다.

긴즈버그는 여러 판례로 역공을 받자 “법정은 그날그날의 날씨에 영향을 받기보다 그 시대 기후에 발맞춰야 한다(A court ought not be affected by the weather of the day, but will be by the climate of the era)”고 말하며 새 시대에 맞는 새 법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결국 승소하여 여성 인권의 역사에 기록될 판례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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