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완료 1년 앞두고.. 독일 감사원, 전력 부족사태 경고

선정민 기자 2021. 6. 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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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제로 30년 전쟁] [5] 독일, 딜레마에 빠지다

독일 연방 감사원은 올 3월 48쪽짜리 ‘에너지 전환 특별 보고서’를 의회와 정부에 제출했다. 이 보고서엔 탈(脫)원전과 탈석탄을 동시 추진해온 정부 정책이 ‘전력 공급 부족 우려’ ‘지나치게 높은 전기 요금’ ‘송전망 설치 부진’ 같은 문제에 봉착해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독일은 내년 연말까지 남은 6기의 원전 가동을 멈추고 탈원전을 완료한다. 석탄화력발전소는 2038년까지 전부 폐쇄하기로 했다. 원전과 석탄이 공급해온 전기는 대부분 태양광·풍력으로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그런 독일에서 탈원전 완료 1년을 앞두고 “전력 공급이 부족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 것이다.

독일 필립스부르크 원전/EPA연합뉴스

독일 감사원은 입법·사법·행정부에서 독립된 헌법기관이다. 정부 입김을 받지 않는다. 그런 감사원이 보고서를 통해 탈원전, 탈석탄으로 인한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무엇보다 “2022~2025년 전력 계획에 대형 석탄발전소 4기 용량에 맞먹는 4.5GW(기가와트) 전력이 모자랄 위험성이 높다”고 했다. 탈원전이 시작되는 내년부터 당장 전력 공급에 차질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또 독일의 가정용 전력 가격이 이미 유럽 평균보다 43% 높다고 지적하면서 “전기요금이 중소기업과 가계의 재정 건전성을 압도할 위험이 있다” “높은 전기요금은 궁극적으로 독일의 경쟁력을 위협할 수 있다”고 했다.

독일은 문재인 정부가 에너지 정책의 모델로 삼은 나라다. 하지만 에너지 전환 모범국이라는 명성 이면에, 독일이 처한 고충을 독일 감사원이 지적한 것이다.

독일은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계기로 1990년대부터 탈원전과 탈석탄을 동시에 추진해왔다. 태양광·풍력으로 원전과 석탄을 대신한다는 ‘에너지 전환’이라는 용어를 처음 만든 나라가 독일이다. 국제적으로 ‘기후변화 대응을 선도하는 모범국’으로 꼽혀왔다. 그러나 지난 30년간 독일의 도전은 가시밭길이었다. 전기요금은 유럽을 넘어 세계에서 가장 비싸졌고, 발전량이 들쭉날쭉한 재생에너지 비율이 늘어나면서 전력 공급 부족이나 과부하 위험을 가까스로 견디고 있다.

◇”높은 전기요금 독일 경쟁력 위협”

유로스타트 자료에 따르면 작년 독일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킬로와트시(kWh)당 30센트로 유럽연합(EU) 국가들 가운데 1위를 기록했다. 20년 전 요금(15.4센트)보다 95% 상승했다. 사업용 전기요금도 EU에서 가장 비싸다. 지난 5월 바이에른경제협회(VBW)는 독일의 도매 전력 가격이 2030년까지 추가로 50% 오를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VBW는 “기업의 경우 수십만 유로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전기요금이 가파르게 오른 것은 탈원전, 탈석탄을 하면서 재생에너지를 대폭 늘렸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 보조금, 송전망 건설 비용, 전력망 관리 비용 등을 모두 독일 국민들의 전기요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전기요금 고지서에 적힌 비용 가운데 25%만 전기료이고 나머지 75%는 대부분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비용을 국민들에게 청구한 것이다.

대조적인 에너지 정책을 가동하는 독일과 프랑스 비교

◇독일 재생에너지 늘렸어도 전기 수입

독일 감사원이 지적한 공급 부족 위험은 발전량이 안정적인 석탄발전소나 원전이 줄고,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 비율이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DPA통신에 따르면 독일은 지난해 주변국으로부터 전기 3만3000GWh를 수입했다. 전년도보다 36% 늘어난 것이다. 반면 독일이 외국으로 수출한 전기는 1만7400GWh로 전년 대비 반 토막이 났다.

전력 수입이 늘어난 이유는 ‘에너지 믹스’(전원 구성)에서 석탄화력과 원자력 비율이 동시에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연방통계청은 분석했다. 바람이 불지 않거나 일조량이 감소할 때 수요를 채우기 위해 전기를 수입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탈원전을 선언한 독일이 전기를 가장 많이 수입한 나라는 원전에서 67%의 전기를 얻는 프랑스였다.

한국도 재생에너지 비율을 목표만큼 빨리 늘려나간다면 날씨에 따른 공급 부족 사태에 처할 위험이 크다. 정부는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통해 2050년까지 태양광·풍력 에너지를 총 발전량의 61%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전력이 부족해도 안 되지만, 지나치게 많이 생산돼도 전력망에 과부하가 걸려 대정전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실제로 독일은 북부 풍력발전 단지에서 과잉 생산된 전기를 인접한 체코와 폴란드로 사전 협의도 없이 흘려보내 반발을 사기도 했다.

그나마 독일은 유사시 전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인접국들이 있다. 한국은 전기 공급과 수요를 자체 조절해야 하는 사실상 ‘전력 외딴섬’이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예측하고 관리할 수 있는 기술과 설비투자가 절실하다”고 했다.

◇송전망 부족, 건설 갈등에 대비해야

우리 정부는 2050년까지 태양광·풍력발전 설비를 2018년의 53배, 작년의 30배 수준으로 급격히 늘리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전국에 산재하게 될 태양광·풍력발전소와 수요처를 연결하는 송전망 구축이다.

이는 독일에서 10년 넘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독일의 풍력발전소는 풍속이 강한 북해 연안에 주로 설치돼 있다. 북해에서 생산된 전기는 기업과 공장이 많은 서·남부 지역으로 끌어와야 하는데, 여기에 필요한 7700㎞의 송전선로 중 지난 12년 동안 20% 수준인 1600㎞만 지어졌다. 송전선로가 지나는 지역 주민들과 환경단체의 반발 때문이다.

산지나 바다에서 대량 생산된 전기를 도심과 산업단지로 끌어오는 것은 천문학적 비용과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수반하는 과제이지만, 한국에서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방 안의 코끼리’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하루빨리 송전망 보강 계획을 세우고 주민 수용성을 확보해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향후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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