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의 혁명가 김산, 밀정 누명 쓰고 황토고원서 총살
님 웨일스 만나 『아리랑』 구술
일제에 잡혔다 풀려나 밀정 의심
중국 공산당 지령에 처형당해
고대 중국 문명의 중심 황토고원
망국 청년의 한 핏빛으로 물들어
중국 기행 - 변방의 인문학
황토에 함유된 광물에 따라 하양·연두·빨강·노랑 등의 색깔이 제각각 드러나거나 무지개처럼 한데 모인 곳도 종종 눈에 뜨인다. 광대한 지표에 붉은 기운이 배어 나오고 절단면에서는 색색깔의 퇴적층들이 지질의 향연을 벌이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황량한 대지의 화려한 예술이 펼쳐진다. 화려하지만 오히려 비장감이 더 강렬하다.
중국의 황토고원은 모래보다 가는 황토가 서북에서 날아와 고원지대에 쌓여서 생성된 것이다. 황하의 중류가 남에서 북으로, 동으로, 다시 남으로 흐르면서 크게 감싸며 도는 오르도스 지역이 그 중심이다. 동으로는 산시성 타이항산까지, 서로는 간쑤성의 하서주랑으로 진입하는 오초령까지, 북으로는 네이멍구자치구의 명나라 장성 지역까지, 남으로는 섬서성 진령까지 이른다.
‘광저우 기의’서 숨진 조선 혁명가들 그려
김산과 같이 이념을 찾아온 변방의 혁명가도 있었고, 님 웨일스와 같이 혁명가를 찾아온 이도 있었다. 이국땅에서 국적이 다른 두 외국인의 운명 같은 만남(1937년)은 『아리랑』(원제 Song of Ariran, 김산·님 웨일스 공저)이란 명저를 낳았다. 『아리랑』은 1983년이 되어서야 그의 고향나라에 제대로 알려졌다.
1924년 쑨원은 제1차 국공합작을 성사시켰고, 광저우는 중국혁명의 메카가 되었다. 많은 조선인은 중국혁명과의 동맹을 조선독립의 첩경으로 인식하고 광저우로 몰려들었다. 쑨원의 중화민국은 조선인들에게 동맹의 문호를 개방했다.
김산도 광저우로 갔다. 중산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황포군관학교에서 강의했다. 김원봉·오성륜·김성숙 등과 함께 민족유일당 운동 등 조선독립을 위한 정치활동에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1927년 장제스가 상하이에서 일으킨 4·12쿠데타로 국공합작은 참혹하게 깨졌다. 광저우의 조선인들 열망도 벽에 부딪혔다. 그해 12월 김산을 포함한 150여 명의 조선인 혁명가들은 장제스에 대항하여 일어난 광저우 기의에 기꺼이 참여했다. 안타깝게도 삼일천하로 끝났다. 대부분의 조선인이 머나먼 이역에서 피에 젖은 꽃잎처럼 땅바닥에 떨어지고 허공으로 날려갔다.
1933년 김산은 중국 경찰에 다시 체포됐고 또 한 번 신의주경찰서로 압송됐다가 겨우 풀려났다. 그러나 ‘일본 경찰의 고문에 두 번이나 살아 돌아왔으니 분명히 전향한 밀정’이라는 의심을 털어 내지 못했다. 김산은 심하게 좌절했다. 죽음의 문턱을 드나들던 그를, 천사 같은 여인네가 사랑으로 구해 냈다.
본명 장지락 또는 장지학, 1983년 1월 복권
1937년 중국 공산당이 김산에게 옌안의 항일군정대학에서 강의하도록 했다. 이런 가운데 루쉰예술학원의 도서관을 통해 님 웨일스와 운명적으로 조우했다. 님 웨일스는 김산과 조선혁명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두 달간 22차례의 인터뷰를 통해 『아리랑』이란 명저를 남겼다. 김산은 운 좋게 님 웨일스를 만나 그의 치열한 삶의 기록을 후세에 남겼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몹시 불행했다. 당적을 회복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일제의 밀정이며 트로츠키파에 참여했다는 누명으로 1938년 10월 19일 황토고원 어느 계곡에서 총살을 당했다. 비밀지령이었다.
변방의 혁명가 김산의 운명은, 광저우로, 옌안으로, 베이징과 바오딩으로 그를 찾아간 여행객을 참으로 막막한 심정에 빠지게 한다. 나라를 잃은 망국노였기 때문에 목숨 걸고 대항하던 일본의 경찰에 넘겨졌고, 일본 경찰의 모진 고문을 견뎌 살아왔으나 오히려 의심을 받았다. 그가 중국인이었으면 1927년 광저우 기의에 참여하고 해륙풍 소비에트에 참여했던 것만으로도 처형은 커녕 살아서 출세의 길을 걸었을 것을.
그는 황토고원 어느 계곡에서 마지막으로 마른 숨을 들이마시면서 억울한 처형의 무자비한 총알을 고스란히 받았을 것이다. 황토의 너른 고원에서도 특히 붉은 기운이 도는 저 능선이 내 뇌리에 깊이 새겨지는 것은, 변방의 혁명가 김산의 처절한 아리랑이 핏빛으로 들렸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에 머물거나 여행한 지 13년째다. 그동안 일년의 반은 중국 어딘가를 여행했다. 한국과 중국의 문화적 ‘경계를 걷는 삶’을 이어오고 있다. 엠넷 편성국장, 크림엔터테인먼트 사업총괄 등을 지냈다. 『중국 민가기행』 『중국식객』 『길 위에서 읽는 중국현대사 대장정』 『중국에서 만나는 한국독립운동사』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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