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내 편, 네 편에 멍든 檢 인사

이창훈 2021. 6. 25.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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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규모의 검찰 중간간부 인사 발표를 앞두고 검찰 내부에서 때 아닌 '낙동강 방어선' 이야기가 회자됐다.

정권을 겨냥한 수사(월성 원전 경제성 조작·김학의 출금·청와대발 기획사정 의혹 등)를 이끌었거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등 다양한 이유로 정권에 밉보인 부장·차장검사들이 어디까지 좌천될지를 놓고 말이다.

수사와 공판 모두에서 탁월한 실력을 보였던 A검사는 이번 인사에서도 한직으로 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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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규모의 검찰 중간간부 인사 발표를 앞두고 검찰 내부에서 때 아닌 ‘낙동강 방어선’ 이야기가 회자됐다. 정권을 겨냥한 수사(월성 원전 경제성 조작·김학의 출금·청와대발 기획사정 의혹 등)를 이끌었거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등 다양한 이유로 정권에 밉보인 부장·차장검사들이 어디까지 좌천될지를 놓고 말이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멀어질수록, 비수사 부서로 갈수록 좌천의 강도는 강해진다. 검사들끼리 ‘한강 방어선(재경지검)은 무너진 지 오래다. 추풍령 이북(수도권·충청·강원)은 언감생심, 낙동강 방어선(대구·경북)도 지키기 어려울 수 있다’고 한 웃픈(웃기지만 왠지 슬픈) 자조는 가볍게 들리지만 않았다.

25일 인사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대로였다. 권력의 비위 의혹을 향해 칼을 들이댄 검사들은 전보와 좌천을 피하지 못했다. ‘윤석열 라인’ 꼬리표가 달린 검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상당수가 수사 등 업무능력에 상관없이 고등검찰청이나 각 검찰청의 인권보호관 등 비수사 부서나 한직으로 발령받았다. 대신 권력 편에 선 것으로 평가받는 검사들은 영전했다. 한동훈 검사장을 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정진웅 광주지검 차장검사가 별다른 불이익 없이 수평 이동하고, ‘김학의 불법출금’ 의혹 사건 장본인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규원 검사는 부부장으로 승진했다. 앞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출금 사건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서울고검장으로 승진한 것과 같다.
이창훈 사회부 기자
성과와 보상이 비례하지 않는 인사는 검사들을 인사에 목매게 했다. ‘기소=승진’이라는 유례없는 공식마저 만들어졌다. 성과와 헌신에 따른 승진과 전보 원칙이 깨지자 인사 전후로 뒷말만 무성하다. 남은 것은 ‘네 편과 내 편’, 편 가르기뿐이다. A검사는 “과거 정권에서 공안 사건을 맡았던 이들은 줄줄이 밉보였다. 뭘 해도 회복이 안 된다”고 자조했다. 수사와 공판 모두에서 탁월한 실력을 보였던 A검사는 이번 인사에서도 한직으로 밀렸다. B검사는 “수사를 잘하는 검사들이 오히려 피해를 보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는 “부장급 이하 검사는 배당되는 사건이 어떻든 취사선택할 수 없다. 주어진 사건을 맡아 성실히 수사할 뿐”이라며 “그 사건이 정권에 불편한 수사라고 눈 감고 봐줄 수 있냐”고 따졌다. C검사는 “죄라면 너무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다”고 허탈해했다.

‘인사가 만사(萬事)’라고 하지만 ‘인사만이 만사’가 된 조직은 병든 조직이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지난 22일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이성윤 서울고검장 승진과 관련해 “공적인 인사를 했다고 자부한다”고 강조했다. 사상 유례없는 피고인의 고검장 승진을 ‘공적인 인사’라고 평가한 법무부 장관의 일성은 보스를 대신해 범죄를 자백하고 대신 교도소에 간 조직원을 보호하는 조폭 논리와 다름없다. 정권에 충성하면 인사로 보답해준다는 강력한 선언이다.

검찰 수사의 오·남용을 막기 위한 개혁작업은 제대로 추진돼야 한다. 그렇다고 검찰의 수사 역량 자체를 깎아내리는 인사와 조직개편을 한다면 가장 큰 수혜자는 범죄자들이고, 가장 큰 피해자는 국민이 될 것이다.

이창훈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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