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한 어머니의 영원한 전쟁
자식 건사하며 '억척 어멈'으로
애도받지 못한 무의식 저편에서
평생 내색 못한 채 홀로 견뎌와
“가자! 가자!” 정신이 성하지 않은 어머니는 밤낮 이 말만 되풀이한다. 다른 말은 다 잊었다. 자식들조차 알아보지 못한 지 오래다. 그런 어머니가 주문처럼 연신 “가자! 가자!”를 외친다.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만이 어머니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의식인 것처럼.
그러나 ‘전쟁-생존자’이자 ‘어머니’인 이 여성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칭송하고 영원한 본보기로 삼는 것만이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일까. 1950년 발발한 6·25전쟁이 이미 70주년을 넘어선 지금, 우리는 오늘의 우리를 낳은 이 어머니들에게 경의를 표할 뿐만 아니라 이 어머니들의 애도받지 못한 삶의 무의식 저편에 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 아닐까. 그럴 때 우리는 한 인간으로서, 또 여성으로서, 이 어머니가 겪었던 전쟁의 진면목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이 순간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 2’(1981)가 다시 상기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듯하다. 널리 알려진 대로 박완서 선생은 동명의 소설을 세 편 발표했다. 그만큼 ‘엄마’와 전쟁, 그리고 그 이후의 삶에 대한 복원과 애도는 작가의 필생의 화두였다. 이 소설 속 어머니는 일찍 남편을 잃고 바느질품을 팔아 자식을 건사하던 중 6·25의 와중에 외아들을 여의고 현재 86세에 이른 노인이다. 일견 무탈해 보이던 그녀의 일상은 눈길에 미끄러져 부러진 다리를 수술하고 난 저녁 그동안 억압해온 ‘어떤 기억’의 역습을 경험하며 전혀 다른 국면을 선사한다. “안 된다. 안 돼. 이노옴. 안 돼. 너도 사람이냐? 이노옴, 이노옴.” 아들의 다리에 총을 쏜 ‘군관 동무’를 향한 그녀의 비명과 호소는 엄마의 ‘전쟁’이 과거의 것으로 완료된 것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임을 온전하게 증명한다. 어쩌면 엄마는 평생 내색하지도 못한 채 홀로 이 ‘전쟁’을 지속해온 것인지도 모른다.
박완서 선생은 이를 다음과 같은 말로 정리한다. “그 며칠 동안의 낭자한 유혈과 하늘에 맺힌 원한을 어찌 잊으랴. 그러나 덮어둘 순 있었다. 나는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자식을 낳아 또 사랑하는 걸로. 어머니는 손자를 거두어 기르며 부처님께 귀의하는 걸로.” 그랬다. 선생뿐이랴. 우리 모두 그랬다. 잊을 수 없는 어떤 것도 일상의 시간으로 ‘덮어둘 순 있었다.’ 그러나 그 어떤 것으로도 그것을 완전히 ‘덮어둘 순 없었다.’ 사정이 그러하다면, 이제 이 어머니들을 향해 덮어두려는 노력 대신 덮어두지 않아도 된다고 우리 모두 말해줄 필요가 있다. 덮어두어선 안 될 것을 더는 덮어두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만드는 것, 그리하여 그녀들의 ‘어떤 기억’을 온전히 애도하는 것, 지금 우리의 ‘전쟁’은 여기에서 출발해야 할 것도 같다.
신수정 명지대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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