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태어나 '유령처럼' 사는 아이들 [책과 삶]
[경향신문]
▶ 있지만 없는 아이들
은유 지음
창비 | 232쪽 | 1만5000원
1999년 한국에서 태어난 페버는 중학교 시절, 청와대로 수학여행을 갔다가 혼자만 견학하지 못했다. 신분증이 없어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2002년생 마리나는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의 콘서트에 가고 싶었지만 티켓 예매조차 할 수 없었다. 콘서트에 가려면 예매 사이트에 가입부터 해야하는데, 가입에 필요한 주민등록번호가 없었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나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이들의 선택은 빠른 포기다. 대학 진학도, 미래를 설계하는 일도 그렇다. “뭘 해도 신분증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면서 포기했어요. 안 되는 걸 아니까요.”
<있지만 없는 아이들>은 국내에 2만명 정도 있을 것으로 추산되는 미등록 이주아동의 목소리를 담았다. 부모에게 체류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법을 어긴 존재’가 돼 국가가 돌보지 않은 이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유엔아동권리협약에 의거해 한국에서 고등학교까지는 다닐 수 있지만, 만 18세가 넘으면 말도 통하지 않는 부모의 본국으로 가야 한다.
한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서류상 존재하지 않는, ‘있지만 없는 아이들’에겐 평범한 일상도 막막해진다. 공부를 잘해도 경진대회에 나갈 수 없고, 본인 명의의 휴대전화 개통도 어렵다.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고 ‘N분의 1’로 계좌 이체를 할 때도 혼자 현금을 꺼내야 한다. 이제 고등학교 3학년이 된 마리나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한국에서 유령으로 지내온 거나 마찬가지예요. 살아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요.”
국가인권위원회 기획이다. 그 누구도 자신의 출생을 선택할 수 없고, 세상에 태어난 것만으로 ‘불법’인 사람은 없다. 작가가 만난 아이들은 세상이 아무리 자신의 존재를 지워도,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완전한 행동”임을 세상에 보여준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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