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구충제로 암 치료? [채종일의 기생충 X파일 ②]

채종일 한국건강관리협회장·서울대 의대 명예교수 2021. 6. 25.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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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구충제, 항암 치료에 현재 많이 사용
독성 없는 '메벤다졸' 해외 임상시험 활발

[경향신문]

2019년경 강아지 구충제로 말기 암을 치료하여 효과를 보았다는 한 미국인의 소식이 지면을 뜨겁게 달군 적이 있었다. 많은 분들이 ‘이것이 사실인가’ 궁금해하였고 실제로 국내에서 암환자에게 구충제를 사용한 일도 있는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이 소식은 믿을 만한 것이며 과학적 관찰 결과에 근거한 것이다. 다만, 몇 가지 확실히 이해하고 유의해야 할 사항들이 있다.

구충제 중에는 강아지 구충제로 알려진 펜벤다졸보다 사람의 구충제인 알벤다졸과 메벤다졸이 항암 치료에 더욱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들을 ‘벤즈이미다졸계’ 약물이라 부르는데 회충, 구충, 편충 등 장내 기생충의 미세관 기능을 차단함으로써 포도당 흡수와 전달을 못하게 한다. 결국 충체는 포도당을 먹지 못하여 영양결핍으로 굶어서 죽는다. 그런데 이 약물들은 사람을 포함한 포유류의 세포, 특히 급속도로 분열하는 암세포에 대해서도 같은 작용을 일으켜 암세포를 굶어 죽게 만드는 작용을 한다.

알벤다졸과 메벤다졸의 항암효과는 30년 전부터 무수히 많은 시험관 내 연구와, 10~15년 전부터 동물에 실험적으로 유발시킨 암에 대한 연구를 통해 지속적으로 증명되어 왔다. 특히 간암이나 난소암, 전립선암, 대장암 등이 주요 대상이었고 미국, 영국, 호주 등 몇 나라에서 대부분의 연구가 진행되었다. 기존에 쓰던 항암제와 함께 사용하여 항암효과를 높이려는 시도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 환자에 대한 임상시험은 암환자에 대한 치료가 워낙 민감한 문제인 까닭에 아직 그리 많지는 않다. 알벤다졸의 첫 임상시험은 2001년 호주의 세인트조지병원에서 말기 간세포암 환자 등 9명을 대상으로 시행되었는데, 암표지 수치가 낮아지는 등 좋은 효과를 보였으나 투약 중단 후 수치가 다시 증가하는 환자도 있었고 약물에 의한 독성이 나타나 투약을 중단한 경우도 있었다. 두 번째 임상시험도 호주에서 2010년에 시행되었다. 대장암, 간암 등 암환자 36명을 대상으로 알벤다졸 투여 용량을 시험하였는데 총 14~21일간 매일 2400㎎(장내 기생충 치료 용량의 6배)을 사용할 경우 3명에서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났다고 한다. 현재는 멕시코의 한 암병원에서 2023년까지 250명의 암환자를 목표로 알벤다졸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메벤다졸은 두 명의 암환자에 대한 임상시험 결과가 2011년(미국)과 2014년(스웨덴)에 각각 보고되었는데, 한 예는 신장암이었고 다른 한 예는 대장암이다. 두 환자 모두 간에 전이가 있었고 고전적 항암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말기였다.

두 환자 모두 만족스러운 결과를 보였으며 42일 동안 약물을 투여했음에도 독성은 거의 없었다. 현재 미국, 영국, 이집트, 멕시코에서 암환자 총 574명을 목표로 메벤다졸에 대한 추가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다.

채종일 한국건강관리협회장·서울대 의대 명예교수

결론적으로 알벤다졸과 메벤다졸 모두 항암작용이 있으며 효과도 만족스럽다. 다만 알벤다졸은 독성 문제 때문에 임상시험에 다소 제동이 걸리기도 한다. 이에 비해 메벤다졸은 장기간 고용량을 사용할 경우에도 매우 안전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어 희망적이며, 현재 진행 중인 임상시험은 대부분 메벤다졸을 이용한 항암치료이다. 메벤다졸은 가격이 저렴하고 안전하므로 국내에서도 활발한 임상시험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채종일 한국건강관리협회장·서울대 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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