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 따른 병역거부' 무죄 확정판결 뒤에 남은 질문

조윤영 2021. 6. 25.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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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다음주의 질문][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24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군인권센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이 평화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 대법원 선고에 대한 입장을 발표한 뒤 구호를 외치고 있다. 대법원은 이날 종교·정치적 신념에 따라 현역 입대를 거부한 시우(활동명)씨에게 무죄를 확정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극단적 상황을 가정한 채 ‘이래도 총 안 들겠냐’고 유도하는 검찰 질문에 마음이 흔들리진 않았나요?”

2019~2021년 사이 여호와의 증인이 아닌 양심적 병역거부자 7명의 법정 진술을 담은 검찰 피고인신문조서를 본 뒤, 기자가 병역거부자들에게 던진 질문이다. 2016년부터 평화적 신념에 따라 예비군 훈련을 거부한 이상(활동명)씨는 “무죄를 받아내는 게 목적이었다면 다른 선택지를 준비했을 수 있지만 양심을 포기하거나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며 “(검찰과 법원이 엄격하게 요구하는) 고정불변한 신념이 아니라, 오랜 기간 성찰과 고민을 통해 변화하고 흔들리며 평화적 신념으로 변화한 내 양심을 있는 그대로 말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검찰 신문을 받는 과정에서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한 검찰의 함정·유도성 질문이 논란이 됐다.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를 “질문을 가장한 괴롭힘”이라고 분석한 적이 있다. 이상씨는 ‘북한이나 외국 침략이 있을 경우 국민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냐’는 검찰의 가정적 질문에 “극단적 상황을 가정하고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 것”이라고 대항했다. 종교적·정치적 신념에 따라 2017년 11월 현역병 입대를 거부한 시우(활동명)씨는 “병역거부 선택이나 고민, 경험을 질문한다면 진솔하게 답할 수 있겠지만,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한 평가를 (내가) 어떻게 말할 수 있는지 고민된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병역거부자들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택하기까지 어떤 삶을 살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최선을 다해 설명했다.

병역거부자들은 확정판결 전까지 언제 형사처벌을 받을지 모르는 불안한 삶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예비군 훈련에 불참할 때마다 추가 처벌을 받는 훈련거부자들은 “반복되는 기소와 재판 자체가 이미 형벌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이상씨의 경우 예비군 훈련거부 재판을 받으러 가는 도중에 경찰로부터 또 다른 훈련 불참 문제로 조사를 받으라는 문자메시지를 받는가 하면, 김형수씨는 예비군 훈련거부로 2017년 12월과 이듬해 2월 1심에서 벌금 50만원을 각각 선고받아 항소한 상태에서 다른 훈련거부로 1심 재판을 하나 더 감당해야 했다.

병역·훈련거부자들이 무죄를 인정받는다고 해도 병역법에 따른 형사처벌만 받지 않을 뿐, 국방의 의무를 회피하는 것도 아니다. 현역 입대거부자의 경우, 현역 복무기간(18개월)의 두배에 이르는 36개월 동안 교도소 등 교정시설에서 합숙 복무하며 청소, 급식, 시설관리 등의 업무를 맡게 된다. 예비군 훈련거부자도 교도소 등 대체복무기관에서 연차별 합숙형태로 복무한다.

지난 24일 대법원은 현역 입영 대상자였던 시우씨에게 병역법 위반 혐의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 판결을 확정했다. 여호와의 증인 신자가 아닌 현역 입대거부자 가운데 무죄가 확정된 첫 사례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형사17단독 남신향 판사가 지난달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오수환씨에게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오씨는 지난 1월 대체역 심사위원회에서 여호와의 증인이 아닌 병역거부자로는 처음 대체역 편입 인용 결정을 받은 바 있다. 남 판사는 오씨의 병역거부가 병역법에서 정한 ‘정당한 사유’로 인정할 수 있는지 판단하지 않았다. 대신 대체복무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에 위헌적 요소가 있어 대체역법을 만든 만큼 오씨에게도 대체역법을 소급 적용해 심사위 결정을 받을 때까진 현역병 징집이 연기됐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는 취지다. 오씨처럼 기존 병역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다른 병역거부자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법리 해석이다.

법원이 이전보다 진전된 판결을 내놓고 있지만, 이미 넉달 전 1년6개월형이 확정돼 현재 수감 상태인 홍정훈씨와 오경택씨에겐 소용없는 일이 됐다. 두 사람에게 사면과 복권, 전과기록 말소나 특별 재심 기회는 여전히 보장되지 않는다. 석달째 수감생활을 하는 홍씨는 오히려 대체역 편입신청 기회를 준다고 해도 이를 원하지 않았다. 그는 손편지를 통해 “이미 국가로부터 큰 상처를 받았는데 다시 36개월의 대체복무를 버티라는 건 잔인하다. 하루빨리 사랑하는 사람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라고 전했다. 그는 형을 마친 뒤, 유엔자유권규약위원회에 권리 구제 등을 요청할지 고민하고 있다.

8년 동안의 예비군 복무기간을 지난 훈련거부자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해 예비군이 끝난 조성현씨도 8년 동안 수십차례 날아오던 소집 통보가 거짓말처럼 끝나고 재판만 남았다. 그러나 유죄 확정판결을 받아도 예비군 복무기간이 끝나 더 이상 대체역 편입신청도 할 수 없다. 조씨에겐 다시 판단받을 기회마저 없는 셈이다. 여호와의 증인 신자가 아닌 병역거부자는 전체 병역거부자의 1%도 안 되는 소수지만, 사회적 배려와 보호가 절실한 이유다. 시우씨는 대법원 판결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번 판결을 계기로 다른 병역거부자들도 병역법 재판에서 무죄를 받거나 아예 재판 없이 대체역 심사를 받을 길이 열렸으면 한다”고 전했다. 이제 검찰과 법원이 응답해야 할 때다.

조윤영 ㅣ 법조팀 기자 jy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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