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발가락 사이·운전석 아래 '몰카 천지'.."내 남친까지"
#지난해 2월 남자친구와 헤어진 20대 여성 A씨. A씨가 불법촬영 범죄의 피해자가 됐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그 후로부터 약 일주일 뒤였다. 지인으로부터 자신의 신체 사진이 SNS 등에서 공유되고 있다는 사실을 듣게 됐다. 사진은 A씨의 남자친구 B씨가 함께 여행을 갔을 때 몰래 촬영한 것이었다.
A씨는 경찰에 신고했고, B씨에게 이를 지워달라고 요구했다. 재판에 넘겨진 B씨는 '반성하고 있고, 직접 게시물을 지웠다' 등의 이유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A씨는 머니투데이와 통화에서 "증거를 수집하는 동안 불면증에 시달려야 했다"며 "여전히 내 사진이 인터넷 공간 어딘가에 남아 있을까 두렵다"고 말했다.
25일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2010~2019년) 발생한 불법촬영 범죄 건수는 4만7420건으로 조사됐다. 2019년에 발생한 몰카 범죄는 5762건으로 2010년 대비 5배가량 늘었다.
지난해 한국여성진흥원 산하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에 접수된 피해 6983건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유형은 불법촬영(2239건)으로 전체의 32.1%를 차지했다. 이어 유포(1586건), 유포불안(1050건) 등이 뒤를 이었다. 센터가 지원한 피해자수는 2019년(2087명) 대비 138.3% 증가한 4973명, 삭제 지원은 전년 대비 67% 늘어난 15만8760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신고·적발 된 것만 집계한 것으로 실제 발생건수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경찰 관계자는 "공동 화장실에 육안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카메라가 설치된 걸 발견하는 경우가 있다"며 "휴대전화를 이용해 몰래 촬영하는 것까지 더하면 건수는 당연히 더 많을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 16일 경기도 용인에서는 한 40대 남성이 지난 3월 초부터 한 달 간 카페, 음식점 등에 발가락 사이에 초소형 카메라를 끼워 불특정 다수 여성의 실체 일부를 촬영한 혐의로 경찰에 구속됐다. 최근 한 온라인커뮤니티엔 초소형 몰래카메라가 내장된 액자 사진이 담긴 '모텔에서 보이면 바로 방 나와야 하는 그림들'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지난해 5월 디지털 성범죄 관련 법률이 개정된 이후 형량이 대폭 강화되긴 했지만 이전에 벌어진 사건의 경우 기소조차 되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내 인생은 당신의 포르노가 아니다"-한국의 디지털성범죄' 보고서에서 2019년 불법촬영 및 불법촬영물 제작·유포 사건에 대한 불기소 처분율은 43.5%인 반면 같은 기간 살인, 강도 사건의 불기소 처분율은 각각 27.7%, 19.0%라고 지적했다.
최근 발생한 '운전연수 강사 몰카' 사건의 피해자 변호인 이재희 변호사(법무법인 명재)는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직접 증명해야하는 어려움을 지적한다.
이 변호사는 "대부분 범행자들은 의심한다 싶으면 바로 증거를 지운다"면서 "동의 없이 휴대전화를 가져가 사진, 영상을 수집했다가는 증거능력을 잃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검찰에 구속된 강사 최모씨 역시 범행이 발각될 당시 차량 운전석 밑에 설치했던 카메라를 이미 떼서 숨긴 상태였다.
이에 일각에선 '변형 카메라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범죄에 사용되는 변형카메라의 제조·수입·수출·판매·구매대행 등에 대한 등록제를 도입하고 이력정보시스템을 구축해 불법촬영 범죄를 사전에 막자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유통망 차단을 포함해 소비 행위에 대한 실효성 있는 처벌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에 '구매사범'이 포함됐지만 실제로는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구매하는 사범은 징역 10개월~징역 2년에 처하고 상습범이나 가중처벌 요소가 있으면 최대 징역 6년 9개월까지 선고 가능하다. 성인 불법 촬영물 소지 사범의 경우 징역 6개월~1년이 기본 형량으로 권고된다.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불법촬영물을 제작 및 유통하는 이들 뿐만 아니라 소지·시청하는 이들에 대한 처벌이 확실히 이뤄져야지만 생태계를 뿌리 뽑을 수 있다"며 "가령 미국은 불법촬영물 광고를 하는 이들에 대해서도 제작자만큼 엄중하게 처벌 한다"고 말했다.
이어"얼굴이 나오지 않은 촬영물의 경우 감경요소가 되는데, 얼굴이 나오는 경우 되레 가중처벌이 되는 방식으로 가야한다"고도 지적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역시 "우리나라는 아직도 물리적 피해를 입어야지 심각한 범죄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며 "디지털 성범죄는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정신적 피해를 입히는 만큼 처벌의 중대성 못지않게 처벌이 된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손정민씨 유족 '친구 A씨 고소했지만'…법조계 "무리수" - 머니투데이
- "생리할 때 피 많이 흘리나" 질문한 외국인 교수…수업중 성적 묘사까지 - 머니투데이
- "내 돈 수천만원 아끼는데 안할래?" 급매 살 때 고수의 '꿀팁'[싱글파이어] - 머니투데이
- 여경 소문 확인하려 숙박업소 CCTV 조회…"집단성폭력 경찰 파면하라" - 머니투데이
- 서장훈, 문채원 애교에 "건물까지 줄 뻔했다" 사심 반응 - 머니투데이
- 피 흘리고 쓰러졌는데…"사망자? 뉴스 보고 알았다" 시청역 운전자 아내에 공분 - 머니투데이
- 尹대통령, 김홍일 방통위원장 사표 수리…후임에 이진숙 등 거론 - 머니투데이
- 허웅, 여친이 초음파 사진 보내자 "병원 왜 갔어?"→중절 수술 - 머니투데이
- "손흥민 신화에 가려진 폭력"…시민단체, 손웅정 감독 비판 - 머니투데이
- 인도 휘저으며 보행자 들이받아…CCTV 속 시청역 역주행 참사 - 머니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