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원은 내일이었다" 1950년 장진호, 死地의 기록
책을 펼치자마자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다. 미국 제1해병사단 해병 1만3000여 명은 지구를 반 바퀴 돌아 막 목적지에 도착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시골 마을과 농장에 있던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은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갑판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M1 소총 분해조립을 배웠다.
승률 5000대 1이라는 도박에 가까운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 전세는 역전된다. 석 달여 만에 연합군은 수도 서울을 탈환한다. 더글러스 맥아더 최고사령관은 한껏 승리감에 도취돼 있다. 38선을 넘어 압록강까지 밀어붙일 기세다. 김일성 패잔병들을 몰아내 한반도 전체를 통일한다면 그의 경력뿐 아니라 미국 전쟁 역사상 최고의 순간 중 하나가 될 터다.
그의 야심 찬 계획에 따라 제1해병사단을 포함한 제10군단은 인천으로 돌아와 다시 배를 탄다. 70척이 넘는 함정들은 서해를 따라 군산과 목포를 들러 부산과 영덕, 삼척, 양양을 거슬러 올라가 북한 동부 항구도시 원산에 도달한다. 10월 26일이다. 북쪽으로 진격하면서 뜻하지 않은 맹추위가 밀려온다. 이미 함경도는 겨울에 접어들고 산악 지역에는 폭설이 내리고 있다. 불길한 기운을 감지한 제1해병사단장 올리버 프린스 스미스 장군은 11월 15일 워싱턴 해병대 사령관에게 장문의 편지를 써 "함흥에서 만주 국경까지 120마일이나 되는 산길을 따라 해병사단을 전개시키는 것이 내키지 않는다"며 "한국의 산악에서 벌어지는 동계 군사작전이 미군이나 해병대에게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한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이 보고는 묵살됐다. 맥아더는 추수감사절이 끝나자 "제군들이여, 크리스마스까지는 집에 돌아갈 것"이라고 장담했다.
해병대 8000여 명이 장진호 서쪽 유담리에 도착한 날이 11월 26일이다. 장진호 남쪽 하갈우리에도 해병대 병력 3000명과 육군 병력 500명이 있다. 해발 1000㎞ 산악지대를 행군하며 지칠 대로 지친 그들을 맞이한 건 영하 30도에 달하는 살인적인 한파였다. 모든 것이 얼어붙었다. 동상 환자가 속출했다. 그곳의 추위는 "축축하고, 고통스러우며, 모든 걸 집어삼킬 듯…휘몰아치는 짐승"이었다. 또 하나의 복병이 있었다. 일찌감치 그곳에 도착해 산기슭에 매복하고 있던 중공군이다. 어둠을 틈탄 게릴라 공격과 인해전술이 시작됐다. "마치 들판 전체가 일어서서 앞으로 걸어오는 것 같았다. 많은 중공군이 쓰러졌지만, 빌어먹을 더 많은 중공군이 계속 밀려오고 있었다." 압록강을 건너온 중공군은 무려 26만명으로 추산된다.
그야말로 장진호는 '사지'였다. 그렇게 맥아더의 '크리스마스 대공세'는 맥없이 끝났다. 퇴각 명령이 내려졌다. 해병대원들을 이끈 스미스 장군은 이때 역사에 길이 남을 명언을 남긴다. 후퇴가 아니라 다른 방법의 공격일 뿐이라며 '역방향 기동' '후방으로의 진격'이라는 표현으로 쓰러진 부원들을 일으켜 세웠다. 실제로 퇴각하면서도 중공군과 교전하며 그들의 남하를 막았다. 후퇴했지만 승리한 여정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영화 '국제시장'이 잘 묘사했듯, 12월 15일부터 열흘간 군인과 민간인 20만여 명을 대피시키는 흥남철수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저자는 미군 역사상 가장 과소평가된 인물 중 한 명으로 스미스 장군을 꼽는다. 그의 신중한 리더십과 결단력이 중공군에 포위돼 전멸 위기에 처했던 해병대원들을 구했다는 얘기다. 생생하면서도 탁월한 스토리텔링으로 당시 상황을 다각도로 묘사한 이 전쟁서는 2018년 워싱턴포스트가 꼽은 '올해의 논픽션', 아마존 '올해의 역사책'에 올랐다.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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