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참느라 혼났어요".. '슬의생' 차청화가 띄운 편지
"여기서만 절 연우 엄마로만 불러줘요"
뭉클한 연기로 호평
시청률 신기록을 세우고 있는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슬의생)' 시리즈는 '고약한' 드라마입니다. 사람이 무섭게 느껴질 상황을 지뢰처럼 곳곳에서 심어 놓고선 끝에 가선 결국 '정은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며 의심한 사람을 민망하게 만들어 버리곤 합니다. '응답하라' 시리즈와 '슬기로운 감빵 생활' 등을 만든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의 특기죠.
두 콤비는 슬의생 시즌2 첫 회에서도 이 덫을 놨습니다. 바로 연우 엄마(차청화) 에피소드였습니다.
상황은 이렇습니다. 미숙아로 태어난 연우 엄마의 아이는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다 3년 만에 세상을 떠납니다. 그 이후 연우 엄마는 몇달 째 병원을 들락거리고 심지어 죽은 아이의 생일에 케이크를 사 들고 병원에 가 의료진을 찾습니다. "아이가 눈을 감은 게 병원 실수라고 생각해 그 증거를 찾고 있는 게 아닐까요?" 일부 간호사와 의사들은 연우 엄마를 경계하기 시작했습니다. 연우 엄마는 왜 병원에 오는지 통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오해의 시간이 단층처럼 쌓여 관계의 균열이 나기 직전, '슬의생'은 그 오해의 조각을 주워 담아 어긋난 마음을 잇습니다. "선생님 여기 오면요, 사람들이 절 연우 엄마라고 불러요. 전 그 말이 너무 좋아요." 병원에서만 잠깐 살다간 아이, 엄마는 아이를 오래 기억하고 싶어 연우의 흔적이 남은 병원을 찾았던 겁니다.
이 덫에 걸린 '슬의생' 시청자들은 적지 않았습니다. 유튜브엔 시즌 첫 화의 사실성을 검증하기 위해 팔짱을 끼고 보던 현직 의사가 결국 연우 엄마 장면을 보고 "나도 애가 있잖아"라며 눈물을 흘리는 영상이 올라왔고, 온라인엔 '제2, 3의 연우 엄마'라고 고백하는 글이 굴비 엮이듯 이어졌습니다.
연우 엄마를 연기한 차청화의 묘한 표정은 이야기의 여운을 더했습니다. 웃으면서도 웃는 것 같지 않은 표정과 물기를 머금은 그의 수줍은 말들이 상황을 더 아리게 만들었습니다.
차청화는 '슬의생' 시즌2에 특별 출연했습니다. 배우에게도 이 촬영은 짧지만 강렬한 경험이었다고 합니다. 연기할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배우가 최근 본보에 카톡으로 들려준 촬영 준비 뒷얘기를 편지 형식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먼저 인상 깊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그때 기억을 떠올리게 돼서 마음이 뜨거워졌어요.
촬영은 지난 3월에 했습니다. 그에 앞서 제작진과 사전 미팅을 두 번 정도 했고요. 연우 엄마란 캐릭터와 사연을 그때 알게 됐고요.
촬영장에 갈 땐 연우를 보러 가는 마음이었어요.
내가 연우엄마란 사실이 아무렇지 않은 곳, 우리 연우를 기억해주는 곳, 우리 연우가 평생 숨 쉬던 곳에서 늘 우리 연우와 함께했던 선생님들과 아무렇지 않게 연우 이야길 나누고 싶었어요.
병원 밖 세상에선 마치 연우란 이름이 금기처럼 여겨지잖아요. 마치 세상에 없었던 아이인 듯, 그게 연우 엄마를 위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니까요.
남들 눈에는 자주 오는 것 같았겠지만 연우 엄마 마음 같아선 매일, 더 자주 가고 싶었을 거예요. 꾹꾹 참다가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어서 연우를 기억해주는 사람들과 함께하고픈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그런 연우 엄마의 마음을 상상하며 연기했습니다.
촬영하는 데 애를 먹기도 했습니다. 자꾸 시청자로서 연우 엄마 생각이 나서 눈물 참느라 혼났습니다. 그래서 얼른 연우 엄마가 되려고 노력했고요.
연우를 낳고 보내고 추억하고 있는 지금까지 연우 엄마는 어떤 마음일까를 생각해봤어요.
전, 연우 앞에서는 늘 밝고 씩씩하고 건강한 미소를 가진 엄마였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야 연우에게 더 긍정적인 힘을 줄 수 있고 연우를 위해 수고해주시는 의료진분들께도 힘을 드릴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아마 연우 엄마는 혼자있을때 한번씩 토해내듯 감정을 쏟아내지 않았을까요? 그런 연우 엄마에게 병원 선생님들과의 따뜻한 수다는 그 무엇보다도 커다란 위로가 됐을 겁니다.
정말 정말 감사드립니다. '슬의생' 제작진과 배우분들 그리고 세상에 모든 따뜻한 의료진분들께요♡
배우 차청화
차청화는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2019) 신스틸러였습니다. 북한 주민 양옥금 역을 맡아 감칠맛 나게 북한 사투리를 소화하면서도 새침하게 윤세리(손예진)를 견제하는 모습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철인왕후'(2020)에서도 감초 역을 톡톡히 했습니다. 21세기 남자의 영혼이 옛 중전(신혜선)의 몸에 들어가 괴팍하게 변한 상전을 모시느라 '현타'가 온 최상궁 역으로 극에 재미를 줬습니다. 난처한 상황 때마다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 연기가 압권이었습니다. 상궁부터 구청장 아내('이태원 클라스')까지 중후한 역을 주로 맡았지만, 알고 보면 '80년대생'입니다. 2005년 연극 '뒷골목 스토리'로 대학로에서 연기를 시작해 10년 넘게 무명 배우로 살았습니다. 어렵게 배우의 꿈을 키우던 20대, 같은 소속사였던 유재석에 가끔 용돈을 받기도 했다는 건 유명한 일화입니다. "보고 또 보고 싶은 배우"가 되는 게 그의 꿈이라고 합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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