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픔서 해방된 신세대 향촌민들, 이젠 정신적 갈증 해소와 사회적 인정을 바라다 [김유익의 광저우 책갈피]

김유익 재중문화교류활동가 2021. 6. 25.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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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중국을 성장시킨 농민공
량훙(梁鴻)
서명 <량좡 10년(梁庄 十年)>

풍경 하나, 지난 5월 연도에 늘어선 수만 명의 중국 시민들이 빗속에 한 노과학자의 운구차를 눈물로 보냈다. 위안룽핑은 교잡벼의 아버지로 불리며 중국의 식량문제 해결에 크게 기여한 ‘공화국 영웅’이다. 정치적 영웅 만들기에 뜨악한 마음도 있고 일찌감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우리 통일벼에 대한 기억도 있어 이 거대한 애도의 정체가 궁금했다. <량좡마을의 중국>을 읽기 시작하면서 의문이 좀 풀렸다. 책의 도입부에 작가의 아버지가 대기근이 닥친 1960년을 술회한다. “마을 친족 200여명 중 70명이 굶어죽었어.”

인민대학 중문과 교수인 작가 량훙은, 2010년에 중국 논픽션 문학의 시조 격인 이 작품을 내놓아 중국 사회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중국 북방의 가난한 농촌마을이 있는 자신의 고향 허난성을 찾아가 2년 넘게 취재했다. 현대 중국의 공업 진흥과 도시 건설, 나아가 대국굴기는 이들 농민공의 피와 땀에 기반한 것이다.

농업생산소득은 변변치 않은 가운데, 별다른 산업이 없는 농촌의 난개발은 노인과 아이들만 남은 농촌마을의 비극을 더한다. 무분별한 건설용 모래 채취로 강바닥 곳곳이 파였는데, 물놀이 나온 아이들이 와류(소용돌이)에 휘말려 목숨을 잃는다. 홀로 남겨진 ‘조용한 모범생’ 고3 남학생이 역시 마을에 혼자 남은 80세 할머니를 살해한 뒤 강간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작가는 갓 만 18세로 사형 선고를 피할 수 없던 이 소년을 구치소로 찾아가 면담하면서 제대로 질문조차 던지지 못하고 눈물만 하염없이 흘린다. 2013년 출간된 <출량좡기>는 중국 전역에 흩어진 량좡마을 사람들을 현지로 찾아가 인터뷰해 백인백색의 분투를 기록했다.

풍경 둘, 올 초 베이징의 ‘국무원구빈개발국’이 ‘국가향촌진흥국’으로 간판을 바꿔달며 중국 정부는 30년 넘게 진행된 절대빈곤 퇴치의 성공을 선언했다. 2017년 말 국가 중점정책으로 선포된 향촌진흥은 이제 도농격차와 같은 상대빈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7월의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에 서둘러 맞추긴 했지만, 과장된 정치적 선전만은 아니다. 맹목적이지 않은 발전주의자로 자신을 소개하는 중국농업대학의 리샤오윈 교수가 그의 20년 현장 경험을 녹여 최근 출간한 <빈곤의 종결>을 보면 서구의 빈곤이론과 중국 현실에 기반한 구체적인 정책의 시행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김유익 재중문화교류활동가

올해 4월 량훙은 <량좡 10년>을 출간해 그의 3부작을 완성했다. 문체가 한결 평안해졌는데, 이는 객관적으로 개선된 량좡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많은 주민들이 도시에서 벌어온 돈으로 번듯한 새집을 지었고, 개중에는 호화로운 별장도 있다. 하지만 작가가 새로운 량좡을 유토피아로 묘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농촌 출신 여성들이 겪어온 이중의 질곡을 통해 양성평등 문제를 꼬집고 있고, 귀향한 주민들이 직면한 경제적·심리적 문제들도 놓치지 않는다. 그는 특히 향촌문화의 문제에 천착한다. 농민의 정치적 주체성도 그중 하나이다. 중국의 신세대 향촌민들이 바라는 것은 더 이상 육체적 포만감이 아니라 정신적 갈증 해소와 사회적 인정이다. 중국 사회는 이제 어떻게 답할 것인가?

김유익 재중문화교류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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