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핫라인] '평화의 소' 추적기 2탄

이상현 2021. 6. 25.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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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2000년 1월 1일 제주로 옮겨진 '평화통일의 소'>

북한에서 홍수로 떠내려왔다 1997년 1월 해병대에 의해 김포 유도에서 구출됐던 '평화의 소'의 후손, 그 5세와 6세를 김포의 한 농가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필자는 이제 또다른 후손이 있을 가능성이 있는 곳을 찾아나섰다.

바로 '평화의 소'가 제주 출신 암소 '통일염원의 소'와 짝짓기해 낳았던 송아지 7마리중 첫번째 새끼가 옮겨진 곳 제주도다.

그 첫번째 새끼, 장남은 '평화통일의 소'라 이름붙여졌는데, 새천년을 맞은 2000년 1월 1일 새해 첫날, 엄마의 고향인 제주도로 보내졌고, 바다에 누운 소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제주 우도, 그곳에 있는 한 농가에 맡겨졌다고 한다.

<사진2: 2005년 제주도민 체육대회 성화봉송 주자로 나선 '평화통일의 소'>

제주도청과 시청, 우도 면사무소와 제주 MBC 등을 수소문한 결과 2000년 당시 두살배기 숫소였던 '평화통일의 소'는 우도에서 대대적인 환영식을 받은 뒤 우도의 한 농가에 맡겨졌고, 2005년엔 제주도민 체육대회에서 성화봉송 주자로까지 나서는 등 시민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고 한다.

<사진3: 훼손돼 있는 '평화통일의 소' 기념 표지판>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그 '평화통일의 소'는 천천히 사람들의 관심에서 잊혀졌고, 필자가 찾은 그 우도의 농가에 걸려있던 기념 표지판도 형체를 알아볼수 없을 정도로 많이 훼손돼 있었다. 당시 소를 사육하던 농장 주인 역시 5년전 세상을 떠나면서 한때 백마리에 달했던 소들은 모두 팔려나갔고, 축사는 창고와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었다.

수소문한 결과, '평화통일의 소'는 2013년쯤 사망했는데, 수십마리로 추정되는 그 새끼들 역시 축사가 없어지면서 뿔뿔이 흩어졌다고 했다. 후손찾기에 나섰던 필자로선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주변 이웃들과 면사무소 협조를 얻어 그 뿔뿔이 흘어진 새끼들을 수소문해봤다. 그러다가 지금은 우도에서 거의 유일하게 100마리 가까운 소를 키우고 있다는 농장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고, 일단 그 농가를 찾아가보기로 했다.

<사진4: 제주 우도 '평화의 소' 후손 사육 농가>

어렵사리 알아내 찾아간 농가엔 소 울음소리만 가득했다. 조그마한 송아지들도 있었고 육중한 소들이 풀밭에 풀어진채 풀을 뜯고 있기도 했는데, 사람이 없었다. 알아낸 농장 주인의 휴대전화는 연락이 닿지도 않았다. 또다시 난감했다.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한 30분쯤 지났을까? 한 아주머니가 조그마한 스쿠터를 타고 농장을 들어오고 있었다. 반가웠다.

"혹시 이 농장 주인이세요?"

필자의 물음에 이 아주머니는 알듯 모를듯한 제주 사투리로 남편은 지금 5곳으로 흩어져 있는 마늘밭을 돌아다니며 약을 뿌리고 있고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르고 휴대전화도 안 가지고 갔다고 했다. 하염없이 기다리기엔 우도란 곳은 시간적 여유가 없는 곳이었다. 특유의 제주 바람과 높은 파도로 제주 성산항과 우도를 오가는 배편은 수시로 끊기기 일수다. 그래서 제주를 찾은 관광객들이 한번 가보기 어렵다 하는 곳이 우도인데, 이날도 높은 파도로 성산항으로 돌아가는 배가 두시간 후면 끊기는 상황이었다. 다음날도 다다음날도 배가 뜰 수 있을지는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방송을 앞둔 필자로서는 참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한 상황이었다.

<사진5: '평화의 소' 후손 사육 농장주 찾기>

결국 5곳의 마늘밭을 하나하나 찾아다니기로 했다. 다행히 농장주의 아내분이 스쿠터로 선도하며 마늘밭 위치를 알려주셨다. 렌트카로 스쿠터를 쫓아가며 논두렁길을 달리던중 첫번째 마늘밭에 당도했다. 하지만 농장 주인은 없었는지 스쿠터는 다시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십여분뒤에 도착한 두번째 마늘밭. 스쿠터를 탄 농장주 아내분이 갑자기 한 트럭이 있는 곳을 가리키기 시작했다. 남편이었다. 그러더니 홀연히 사라지셨다. 마지막 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 필자와 취재진은 차에서 내려 농약을 뿌리고 있던 농장주를 향해 논두렁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사진6: '평화의 소' 5세와 사육자>

우여곡절끝에 농장주와 대면한 필자는 '평화통일의 소'와 관련된 이것저것을 문의해봤고, 이 농장주가 2005년쯤 '평화통일의 소'의 새끼, 그러니까 김포에서 구출됐던 '평화의 소' 증손녀뻘인 3세 한마리를 분양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평화통일의 소'의 새끼들이 몸집도 좋고 잘 먹고 해서 유심히 지켜봤다는 이 농장주는 그 분양받았던 소가 나중에 새끼를 낳았고 그 새끼가 성장해 7~8년전 낳았던 암송아지, 그러니까 '평화의 소' 5세를 지금 키우고 있다고 했다. 운이 좋았다. 제주에도 '평화의 소' 5세가 있다는 말이었다.

<사진7: '평화의 소' 5세>

농장주를 따라 그 '평화의 소' 5세를 찾아가봤다. 밖에서 왕성하게 풀을 뜯어먹고 있던 '평화의 소' 5세는 몸집이 육중한 암소였는데, 지금까지 모두 5마리의 새끼를 낳았다고 한다. 이 새끼들은 축사에서 다른 소들과 섞여 키워져서 지금은 구분하기가 어렵지만, 배 속에 6번째 새끼, 그러니까 '평화의 소' 6세를 임신한 상태여서 올 가을쯤에 또다른 '평화의 소' 핏줄이 세상에 나올 예정이고 했다. 김포와 마찬가지로 제주에서도 '평화의 소' 5세와 6세가 확인된 셈이었다.

<사진8: '평화의 소' 가계도>

어렵사리 찾아본 북한 출신의 '평화의 소' 핏줄들. 20여년이 흐르며 이제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지만 끈끈한 한민족의 핏줄처럼 그 생명력은 김포에서 제주까지, 한반도 전역에서 살아 숨쉬고 있었다. (End)

(이상현)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6281587_291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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