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환의 지식카페>'저 행동이 무슨 이득 되겠나' 의심 풀리는 순간, 거짓말은 먹힌다
■ 김태환의 이야기철학 - (14) 거짓말의 교묘한 술책
여관주인 옷 훔치려던 도둑, 늑대로 변한다고 공포감 증폭… 신빙성 없지만 행동의 진짜 동기 완벽히 감춰
‘옷’은 인간 존재의 본질적 조건… 최근 새로운 옷이 된 ‘마스크’가 또 다른 인간의 부끄러움을 감추는 징표 되지 않기를
어떤 도둑이 여관에 묵었는데, 뭐 훔쳐갈 게 없나 살피다가 별것이 없고 다만 여관 주인이 입고 있는 화려한 키톤이 마음에 들었다. 도둑은 여관 주인에게 접근해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입을 벌리고 늑대처럼 울부짖었다. 놀란 주인이 무슨 일이냐고 묻자 도둑은 자기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이렇게 발작적으로 늑대처럼 세 번 울면 진짜 늑대로 변해서 사람들을 잔인하게 잡아먹게 된다고 대답하고는 자기 옷을 잘 간수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말하고 두 번째로 입을 벌리고 울부짖었다. 그 말을 믿어버린 여관 주인은 급히 자리를 뜨려 했다. 도둑은 키톤 자락을 잡으며 애원했다. “제발, 옷을 잃어버리지 않게, 제가 늑대로 변한 사이 제 옷을 좀 간수해 주세요.” 그러고서 세 번째로 입을 벌렸다. 여관 주인은 공포에 질린 나머지 도둑의 손에 잡힌 키톤을 벗어버리고 미친 듯이 달아났다. 도둑은 키톤을 손에 들고 유유히 사라졌다.
이 이솝우화 속 도둑의 교묘한 술책은 모리스 르블랑의 괴도 뤼팽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감탄스럽다. 여기서 특히 흥미로운 문제는 인간이 늑대로 변한다는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어떻게 여관 주인에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인 것처럼 여겨졌는가, 도둑은 어떻게 황당무계한 거짓말을 믿을 만한 것으로 만들었는가이다.
거짓말을 믿게 하는 데는 두 가지 차원에서 작업이 필요하다. 첫째는 우선 거짓말의 내용을 최대한 신빙성 있게 만드는 일, 즉 실제로 일어났음 직한 그럴듯한 줄거리를 꾸며내는 일이다. 둘째는 거짓말하기라는 행위의 차원이다. 거짓말하는 사람과 그의 행동에 진실성의 분위기가 깃들어 있을 때 사람들은 더 쉽게 속아 넘어가기 마련이다.
사람이 늑대로 변신한다는 이야기가 첫 번째 조건을 충족시킬 수 없음은 자명하다. 그래서 도둑은 두 번째 차원의 작업에 집중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거짓말의 동기를 짐작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내가 상대방에게 거짓말을 믿게 함으로써 그 효과로 어떤 이득을 취할 수 있는지 뻔히 드러나 있는 상황이라면, 상대방은 기본적으로 거짓말의 동기가 있다고 가정하고 나의 말을 비판적으로 검증하려는 태도를 취할 것이다. 기업에서 사람을 채용할 때 지원자가 경력을 과장하지 못하도록 증빙서류를 요구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도둑의 거짓말은 어떤가? 물론 도둑은 여관 주인의 옷을 빼앗는다는 분명한 동기를 가지고 거짓말을 한다. 그러나 거짓말에서 도둑이 노리는 목적의 실현으로 이어지는 고리가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도둑이 처음 보는 사람에게 늑대인간 이야기를 꾸며내야 할 좋은 이유가 있을 거라고 의심하기는 어렵다.
짐작할 수 있는 동기가 있다면, 상대방을 공포에 빠뜨리려는 의도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도둑은 그러한 동기조차 알아차리지 못하게 천연덕스러운 연기를 한다. 도둑은 늑대인간 이야기로 여관 주인을 공포로 몰아넣지만, 정작 그 자신은 상대에게 겁을 주는 데 전혀 관심이 없는 척한다. 도둑은 늑대로 변했을 때 옷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문제만을 걱정하면서, 심지어 여관 주인에게 그 걱정거리를 해결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여관 주인이 무서워할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자기 문제에 몰입해 있는 도둑의 태도는 늑대인간 이야기가 사람을 놀래기 위해 꾸며낸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차단하고 그런 만큼 여관 주인을 더 큰 공포로 몰아넣는다.
옷 문제로 걱정하는 연기의 효과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 연기를 통해 도둑은 거짓말의 진짜 동기인 키톤 훔치기에서 상대의 주의를 완전히 돌리는 데 성공한다. 도둑은 키톤에 눈독을 들이고 그 옷자락을 붙잡으면서도, 이를 곤경에 처한 사람의 구조 요청으로 위장한다. 게다가 도둑이 가장하는 곤경이 ‘옷을 도둑맞을 위험’이기 때문에, 바로 그 사람이 옷을 훔칠 계획으로 여관 주인의 옷에 손을 댄 것임을 짐작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완벽한 시나리오다. 늑대로의 변신 뒤에 남는 옷이라는 문제는 거짓말의 공포 효과를 증폭시키는 동시에 옷을 훔치려는 행동의 의미를 완벽하게 감추는 다목적 장치로 작동한다.
그런데 도둑은 어떻게 그런 복잡한 시나리오를 머릿속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도둑이 비상한 두뇌의 소유자임은 분명해 보이지만, 그가 이 모든 시나리오를 무에서 창조한 것은 아니다. 도둑은 이미 존재하는 늑대인간 전설의 시나리오를 이 상황에 완벽하게 적용한 것뿐이다.
늑대인간 모티브의 출발점에 있는 신화로 아르카디아의 왕 리카온의 이야기가 있다. 리카온은 제우스에게 인육을 대접했다가 제우스의 분노를 사고 그 벌로 결국 늑대가 되고 만다. 그런데 이것은 정확한 의미에서 늑대인간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다. 그저 인간이 늑대로 변해버린 이야기일 뿐이다. 좀 더 늑대인간의 전설다운 것은 고대 로마의 저자 플리니우스가 들려주는 이야기다. 그에 따르면 아르카디아에서는 매년 한 명의 남자를 뽑아서 늪지로 보낸다. 그 남자는 늪을 건너 늑대로 변신한 뒤 늑대 무리와 함께 지내는데, 9년 동안 사람을 한 번도 보지 않으면 다시 사람으로 돌아온다. 이보다도 더 전형적인 늑대인간의 이야기는 한 인간이 보름달과 같은 자극을 받으면 늑대로 변신했다가 일정 시간 후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는 경우다. 우화 속의 도둑이 말한 것도 이처럼 변신과 역변신의 과정을 주기적으로 겪는 늑대인간의 이야기다.
많은 유럽 동화의 동물 변신담은 대체로 일회적인 변신과 회복의 과정을 이야기한다. 마녀의 저주로 동물이 된 주인공이 결국 구원받아 인간으로 돌아오는 줄거리다. 다만 그림 형제의 동화 중 하나인 ‘6마리의 백조’에서는 저주와 구원의 서사가 주기적인 변신과 역변신의 이야기와 합성돼 있다. 마녀의 저주로 백조가 된 여섯 왕자는 밤마다 잠깐씩 본모습으로 돌아온다. 최종적 구원은 막내 누이의 노력으로 찾아온다. 누이동생은 저주를 풀기 위해 6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빠들의 옷을 짠다는 조건을 이행함으로써, 오빠들을 완전한 인간으로 만든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오빠들의 옷을 만드는 것이 인간으로의 완전한 역변신의 조건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동물로의 변신이 옷의 상실과, 인간으로의 역변신이 옷을 되찾는 것과 결부돼 있음을 암시한다. 변신할 때는 옷이 버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역변신하는 경우에 벌거벗은 인간은 어디서 옷을 되찾는가? 마지막에 백조들은 누이동생이 짜준 옷을 입고 인간으로 돌아온다. 누이동생이 없는 늑대인간은 어떻게 되는가?
아르카디아인의 늑대 변신 이야기에서 선택된 사람은 옷을 벗어 늪가의 참나무에 걸어놓고 헤엄쳐 늑대 무리에 합류한다. 그리고 9년 동안 사람을 보지 않으면 늪가로 돌아와 인간의 모습을 되찾고 걸어둔 옷을 입은 다음 인간세계에 복귀한다. 그것은 역변신의 마지막 의식으로서 옷을 되찾는 절차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고대 로마의 작가 페트로니우스는 ‘사티리콘’에서 늑대인간의 옷 문제와 관련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하는 ‘나’는 자신의 친구가 늑대로 변신하는 놀라운 광경을 관찰한다. 그 친구는 먼저 옷을 벗고 옷 주위에 오줌을 눈다. 그리고 늑대로 변신해 숲으로 들어간다. ‘나’는 친구가 옷을 벗어놓고 떠난 자리에서 놀랍게도 옷이 돌덩어리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 후 ‘나’는 애인 멜리사의 집에 돌아오는데, 늑대가 침입해 멜리사의 양들을 죽이고 멜리사의 하인이 휘두른 창에 목이 찔려 쫓겨 갔음을 알게 된다. ‘나’는 다시 변신 장소로 가본다. 돌덩어리는 사라지고 피만 흥건했다. 이어서 친구 집을 찾아가 보니 친구는 목에 깊은 상처를 입고 의사의 치료를 받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늑대인간이 늑대로 변신하기 전에 옷을 벗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 다시 옷을 입기 위해 옷에 마법의 잠금장치를 해둔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런 이야기들을 보면, 도둑의 시나리오가 늑대인간 전설에서 차용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늑대인간은 안전하게 인간세계로 복귀하기 위해 옷을 잘 보관해야 한다. 페트로니우스의 늑대인간이 자신의 오줌으로 옷을 보관했다면, 도둑은 늑대인간이 타인의 친절에 기대어 안전한 역변신을 보장받는다는 변형된 시나리오를 지어낸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시나리오는 고도로 정교한 절도 작전의 핵심 장치가 된다.
물론 정말 영리한 것은 도둑이 아니라 이 우화를 지어낸 작가이다. ‘도둑과 여관 주인’ 작가는 옷 훔치는 도둑의 이야기 속에 늑대인간의 옷 모티브를 절묘하게 차용하면서, 비합리적이고 미신적인 이야기를 패러디하고 그것을 철석같이 믿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조롱한다. 늑대인간 이야기에서 인간이 늑대로 변신하면서 옷을 잃어버릴 위기에 빠진다면, 이 우화에서는 그런 비합리적인 이야기에 현혹된 인간이 옷을 잃어버린다. 따라서 이 우화에서 인간성을 상실하는 것은 늑대인간이 아니라 늑대인간의 미신에 현혹된 여관 주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옷의 상실을 인간의 동물화와 동일시하는 늑대인간 이야기의 논리를 이 우화에도 적용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과연 옷을 곧 인간성을 담보하는 매개물로 볼 만큼 인간 존재와 옷 사이에는 그렇게 본질적인 관계가 있는 것일까? 동물들이 옷이 없듯이, 인간도 본래는 옷이 없었다. 인간은 진화의 과정에서 환경에 적응하는 가운데 옷을 발명해 입기 시작했을 뿐이다. 그런 한에서 옷은 인간에게 우연적이고 비본질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해 옷을 버리려 하는 나체주의 운동은 옷에 대한 그러한 관점을 대변한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옷이 없는 인간의 삶을 상상할 수 없다. 인간은 옷을 입는 동물이다.
인간과 옷 사이의 복합적인 관계는 창세기 낙원 추방의 신화에도 잘 표현돼 있다. 이에 따르면 인간은 태초의 무구함을 상실하면서 그 타락의 결과로 비로소 옷을 필요로 하게 됐다. 그러나 성서는 이와 동시에 인간이 인간으로서 자각을 가지게 된 것이 옷의 출발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인간이 자신을 인식하게 된 최초의 징표는 벌거벗었다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이는 옷이 사후적으로 인간에게 덧붙여진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적 조건에 속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벌거벗음이라는 관념은 옷에 대한 인식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인간은 어떻게 옷이란 것이 존재하기도 전에 옷에 대한 관념을 얻은 것일까? 아마도 태초의 인간이 이미 신의 옷을 봤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성서는 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이 신에 더 접근하고자 한 데서 옷을 입고자 하는 욕망이 나온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에게는 1년 반 전부터 새로운 옷이 생겼다. 마스크라는 옷이다. 최초의 남자와 여자가 벗은 몸을 깨닫고서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했다면, 지금 우리는 타인의 벌거벗음 앞에서 공포를 느낀다. 옷을 벗고 위험한 늑대로 변신하는 늑대인간처럼, 마스크를 벗은 타인의 얼굴이 자연적 폭력과 공격의 기호가 됐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가 너무 오래 지속돼 타인의 얼굴을 본능적으로 참을 수 없게 되는 상황이 오지 않기를 희망한다.
김태환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 용어설명
모리스 르블랑의 ‘괴도 뤼팽’
1905년부터 1939년까지 25년 이상에 걸쳐서 집필된 프랑스의 인기 소설로, 모리스 르블랑의 대표작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뤼팽은 가장 매력적인 도둑으로 손꼽히는 캐릭터다. 신사이면서 강도, 사기꾼, 모험가이다. 변장의 달인으로 자유자재로 가명을 사용하며 신분을 숨기는데 주로 귀족이나 자본가의 저택 등을 덮쳐 보석이나 미술품, 값비싼 가구 등을 훔쳐 간다. 반면 선량한 사람을 돕는 의적(義賊)의 성격도 가지고 있어 범죄자 캐릭터임에도 독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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