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새롭게 생겨버린 고위공직자의 방패들
고위공직자들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고발장이 공수처로 쏟아지고 있습니다. 지난 21일 시민단체 '사법정의 바로세우기 시민행동'은 유력 대권 주자로 떠오른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한 10번째 고발장을 공수처에 접수했습니다. 3일 뒤인 어제(24일), 반대 성향의 시민단체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동연대'는 윤석열 X파일이 정부기관에서 만들어 진 것으로 의심된다며 고발장을 공수처에 접수했습니다.
번번이 발생하는 이첩 줄다리기…행정소송 제기 가능성도 대두
김학의 불법출금 의혹에 연루된 검사들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공수처는 지난 3월 검찰로부터 문홍성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김형근 서울북부지검 차장검사, A 검사의 불법 출금 연루 혐의를 이첩받았습니다. 하지만 공수처는 당시 수사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건을 다시 검찰로 이첩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 검사들에 대한 기소 여부를 판단하겠다며 다시 사건을 가져오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검찰은 수원지검 형사3부 (이정섭 부장검사) 수사팀의 반대 의견을 전달 받아, 사건을 다시 돌려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공수처에 통보했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공수처는 검찰에서 아무런 내용을 통보받은 적 없다는 입장입니다. 이처럼 양 기관이 사건 이첩을 둘러싸고 줄다리기를 벌이는 상황은 이첩 기준에 대한 세부 내용이 현행 공수처법에 빠져있기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생기는 논란이 고위공직 피의자들에게는 또 하나의 방패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법조계에서는 이 사건이 공수처로 이첩됐을 경우, 피의자인 검사들이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사건의 이첩은 공수처장이 하는 행정 처분의 일종으로 볼 수 있는데, 이것이 위법하다고 행정 소송을 제기함으로서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수원지검 수사팀 또한 대검찰청에 보낸 의견서에서 '해당 사건을 공수처에 이첩할 경우 행정소송 제기와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취지의 분석을 기재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검사 아닌 고위공직자 구속영장 청구에도 논란 따를듯
공수처가 '채용 비리' 의혹 수사에 나선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사건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조 교육감처럼 검사가 아닌 고위공직자의 경우, 수사는 공수처에서 담당하더라도 기소는 검찰에서 해야 합니다. 그런데 조 교육감에 대한 기소권이 없는 공수처가 수사 과정에서 구속영장을 청구하고자 할 경우 논란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현행 형사소송법에서는 '기소권'이 없는 사법경찰관에게는 구속영장 청구 권한이 없고, 영장을 발부받아도 10일 동안만 구속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공수처 검사는 이름은 '검사' 이면서도, 조 교육감과 같은 검사 아닌 고위공직자에 대해서는 '검사'의 핵심 권한인 '기소권'이 없습니다. 따라서 공수처 검사는 검사가 아닌 고위공직자를 수사할 때는 '반쪽짜리 검사'가 돼버리는 것입니다. 이때 공수처 검사에게 구속과 관련한 권한을 어디까지 줄 것인지와 관련해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현 정부 수사기관 개혁 작업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해 온 양홍석 변호사 (법무법인 이공)는 "현 공수처법 하에서는 검사 아닌 고위공직자에 대해 기소권이 없는 공수처의 구속 기간을 몇일로 해야 하는지, 구속 기간을 연장하려면 사건을 검찰로 넘겨야하는지와 같은 논쟁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인신 구속과 관련된 문제는 법률적으로 엄격히 따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는 상황에서는 공수처가 고위공직자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제대로 하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한 지방법원 부장판사도 "공수처가 검사 아닌 고위공직자를 구속 수사한 뒤 검찰이 사건을 기소했을 경우, 구속 이후 확보한 증거가 적법한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재판 과정에서 불거질 수밖에 없다"며 "현재로서는 뚜렷한 정답을 찾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검사 작성 피신조서 증거능력은 사라지는데…더 복잡해진 고위공직자 수사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있다
5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공정과 정의'는 이번 대선에서도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선거가 가까워올수록 국가를 운영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공정과 정의'라는 상징을 독차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뜨거운 말들을 쏟아낼 것입니다. 선의로 가득 찬 사법제도 관련 공약들도 표를 모으기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서 유권자들에게 던져질 것입니다. 하지만 공약의 주체가 누구든, 좋은 말들 뒤에 자리한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 좀 더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있다는 서양의 오랜 격언처럼, 정의로 포장된 공약들은 현실 속에선 부정의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기능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원종진 기자bell@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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