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주의 세계관 변호사라도 떨쳐낼 수 없는 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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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친의 유언장> 처럼 "책을 표지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는 격언이 잘 적용되는 책도 드물 것이다. 전남친의>
제19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대상 수상작인 <전남친의 유언장> 은 도입부만 봐서는 허황한 얘기 같지만, 작가인 신카와 호타테가 도쿄대학교 법학부 출신의 전직 변호사인 만큼 소설은 법리를 따지며 진행된다. 전남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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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친의 유언장
신카와 호타테 지음, 권하영 옮김/북플라자(2021)
<전남친의 유언장>처럼 “책을 표지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는 격언이 잘 적용되는 책도 드물 것이다. 일만 엔 지폐와 유언장이 휘날리는 빨간색 표지, 슈트를 입은 긴 머리 여성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제목과 일러스트를 언뜻 보면 로맨스 웹 소설 같아서, 이 책이 자못 진지한 법률 미스터리임을 짐작하기 어렵다. 주인공 켄모치(겐모치) 레이코도 마찬가지이다. 스물여덟에 대형 로펌의 변호사, 남자친구가 다이아몬드 반지를 사서 청혼했어도 다이아몬드가 작다고 분개하는 물질주의 세계관의 사람이 돈 아닌 다른 동기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남자친구와도 헤어지고, 보너스가 적다고 로펌도 때려치운 레이코에게 어느 날 옛 남자친구 모리카와 에이지의 부고가 날아든다. 공통의 친구인 시노다와 이야기를 나누다 알게 된 사실, 에이지의 유언장에는 자신을 죽인 사람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준다는 항목이 있다. 독감으로 죽었다고 알려진 에이지, 시노다는 자신이 그 죽음에 어떤 책임이 있지 않을까 여기고, 레이코에게 관계를 입증해달라고 의뢰한다. 레이코의 성공보수는 에이지의 전 재산 중 부모에게 돌아갈 유류분과 상속세 등을 제외하고 남은 3백억 엔의 절반인 백오십억 엔으로, 누구보다 수지타산에 밝은 레이코로서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제19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대상 수상작인 <전남친의 유언장>은 도입부만 봐서는 허황한 얘기 같지만, 작가인 신카와 호타테가 도쿄대학교 법학부 출신의 전직 변호사인 만큼 소설은 법리를 따지며 진행된다. 레이코는 이 유언이 “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가 아니라 법적으로 유효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고, 동시에 시노다를 상속인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레이코는 이런 유언을 남긴 에이지의 동기를 이해할 수 없지만, 의뢰인의 이익, 그리하여 자신의 이익을 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뛴다. 용의자로 몰리고 조폭들에 맞서고 유치장에 갇히는 한이 있어도.
소설의 심리적 배경에는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에 나오는 ‘포틀래치’ 개념이 깔려 있다. 북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관습인 포틀래치에는 선물을 주고받는다는 호혜성의 개념 외에도 남에게 무언가를 받는 사람은 마음의 부채가 생긴다는 원리가 포함되었다. 에이지의 유언의 의미는 자신을 죽인 자에게 잊지 못할 죄책감의 부채를 씌우기 위한 것이었을까?
신에게 부끄러울 것 하나 없이 살아가는 레이코이지만, 인간인 만큼 부채감을 완전히 떨치기는 어렵다. 유형이든 무형이든 타인에게 빚지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빚 없이 살고 싶다는 욕망이 인간의 행위를 지배하지만, 결국 우리의 삶은 타인에게 감정의 빚을 갚으며 살아가는 과정이라는 진실은 이 사건이 남긴 유산 중 하나였다. 물론 물질주의를 충족시킬 수 있을 만한 성과도 있었다는 사실은 빼놓을 수 없다.
작가,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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