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한국적인, 세계적 'K'
그래. 어쩌면 ‘K’ 강박증이었을 지도 모른다. 해외 뉴스에서 ‘K’가 나올 때마다 심장 박동은 왠지 빨라 졌다. 한국 스타, 한류뿐만 아니라 ‘한국계’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만 하면 클릭, 클릭, 그리고 ‘클립’이다. 스포츠 스타들의 맹활약에서 시작해 한국 드라마 광풍이 불더니 패션계까지 한국 스타들의 입지는 점점 넓어지고 있다. 해외 팬들이 열광하는 장면 속, 그 자리에 마치 내가 있는 듯 자랑스러워졌고, 글로벌 캠페인을 차지하는 한국 스타들의 얼굴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내 어깨도 우쭐해졌다. 한국 스타들이 선망의 대상이었고, 한국 스타들처럼 먹고 입고 마시며 집안을 꾸미는 것이 화제가 되면서 세계 트렌드를 움직이는 주춧돌이 됐다. 게다가 넷플릭스 같은 OTT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한국 드라마는 그야말로 브랜드들의 글로벌 전시장 격이다.
최근 들어선 한국 아티스트들에 대한 관심도 상당해진걸 느낀다. 몇몇 브랜드 관계자들은 “본사에서 한국 젊은 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높다. 기존 유명한 이들은 물론이고 특히 최근 들어선 개성 넘치는 신진 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고 전했다. 디자이너들도 인스타그램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 잠재력 있는 작가를 직접 찾아나서곤 했다. 이러한 요청에 매년 여름 국내에서 즈음 열리는 아시아프(ASYAAF·아시아 대학생 청년작가 미술축제)를 한 번 가보라고 추천해준 적도 있다.
세계적인 작가에서부터 유망한 신진 작가들까지 다양한 협업을 통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이탈리아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에서 보여준 것이 바로 이러한 세계관이 반영돼 있다. 최근 발행된 디지털 저널 이슈 02에선 미국의 힙합 아티스트 트래비스 스캇과 세계적인 탑모델 나오미 캠벨에서부터 한국 아티스트인 이광호 작가와 정그림 작가의 작품이 포함됐다. 2021년 프리폴 컬렉션인 워드로브 02(Wardrobe 02) 컬렉션 런칭을 기념해 발행된 것으로, 이광호 작가는 Salon 01 남성 니트웨어를 재해석한 작품을 선보였고, 정그림(Jeong Greem) 작가는 Wardrobe 02 쥬얼리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을 제작했다. 줄을 꼬아만든 작품 유명한 이광호 작가는 펜디, 디올, 젠틀몬스터 등을 비롯해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하며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날리는 작가. 디자이너에서, 수공예 작가, 설치미술가 등 여러 작업을 거치며 매번 진화를 거듭하는 그에게 이번에 보테가 베네타에서 손을 내민 것이다. 1993년생으로 프랑스 랭스고등미술디자인학교 출신인 정그림 작가는 단 하나의 선으로 공간에 그림을 그려넣는 작가다. 단순해 보이지만 공간감이 대단해 가구도 되고, 조형물로도 변신한다. 그녀의 손을 통해 톡톡 튀는 감성으로 입체적으로 구현된 작품들은 그 자체로 리듬감 있어 보인다.
최근 서울 이태원에 들어선 구찌의 국내 두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 ‘구찌 가옥’ 파사드를 완성한 건 박승모 작가다. 스테인리스 스틸 와이어를 활용하여 작품을 선보이는 조각가로 상상의 숲에서 영감을 얻은 ‘환(幻·헛보임)’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낮에는 자연스럽게 드리우는 빛과 그림자와 어우러져 방문객을 맞으며, 저녁 시간에는 시시각각 바뀌는 라이트 조명으로 멋스러움과 웅장함을 배가시킨다. 글로벌 플래그십 스토어는 주로 해외 작가와 건축가, 인테리어 디자이너 손에서 이루어 지던 과거와 달리 국내 작가의 손에서 ‘일’을 낸 것이다. 이와 함께 눈에 띈 건 구찌 가옥만의 스페셜 셀렉션. 알록달록한 한국 전통의 ‘색동’ 무늬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으로 구찌가 특정 지역에 영감을 받은 패턴을 개발해 디자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골든구스가 서울 플래그십 스토어 1주년을 기념해 선보인 윤여준 작가의 네온사인 디자인 역시 기존을 뒤집었다. 한복의 전통 매듭이나 노리개 같은 것을 네온으로 구현해냈다. ‘golden’이란 글자를 마치 한국식 도장 각인 새기듯 장식 안에 넣어 한국적인 듯 서양적인 듯 환상을 오간다. 그의 작품을 보다보니 노리개를 원형으로 하지만, 이를 응용해 가방이나 신발, 혹은 의상에 다는 참(charm) 장식으로 사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골든구스 특유의 별모양과 스케이트 보드를 잊지 않으면서 유쾌하게 전통과 현대를 결합시킨다. 한 때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문구가 유행한 적 있다.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등장한 문장일 것이다. 이미 영화 ‘기생충’에서 증명되지 않았는가. ‘로컬’ 문화를 보편적인 공감대로 승화시켜 세계적인 작품으로 구현한 것 말이다. 이젠 ‘K’란 용어에 집착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한국은 이미 세계적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오늘의 운세] 11월 18일 월요일(음력 10월 18일 丙戌)
- 개선장군처럼... 트럼프, 장남·머스크 등 최측근과 UFC 경기장에
- 트럼프 2기는 ‘즉흥 인선’... 논란의 법무장관, 비행기서 2시간 만에 결정
- 올해 1~10월 발생한 전세보증사고 규모 4조원 넘어서
- NBA 선수 경험도 못 했던 클리블랜드 앳킨슨 감독, 개막 14연승 이끌어
- 北, 열흘 연속으로 GPS 신호 교란… 무인기 대응 훈련하는 듯
- 59년 지나도 밝혀지지 않은 진실...말콤X 유족 1400억원 소송
- 사유리처럼... 20대 43% “결혼 안해도 아이는 낳을 수 있다”
- ‘아웅산 테러’ 마지막 생존자, 최재욱 전 환경부 장관 별세
- 법원 “택시조합 기사 실업급여 반환 처분은 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