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인들과 빗속에서 아프게 이별한다”

베이징/박수찬 특파원 2021. 6. 2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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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시행 1년만에 反中 빈과일보 끝내 폐간
24일 새벽 홍콩 빈과일보 한 직원이 신문사 밖에 모인 지지자와 취재진을 향해 막 발행된 마지막 빈과일보를 들어보이고 있다. 홍콩 당국의 자산 압류로 빈과일보는 이날 창간 26년만에 신문 발행을 중단했다./AFP 연합뉴스

홍콩 반중(反中) 신문 빈과일보(蘋果日報)가 발행을 중단한 24일 지지자들은 홍콩 정관오에 있는 빈과일보 사옥 앞에서 “고마웠습니다. 라이 아저씨(老黎)”를 외쳤다. 하지만 빈과일보 사주인 지미 라이(黎智英·73)는 홍콩 감옥에 수감돼 자신이 직접 이름을 지은 신문사가 문 닫는 순간을 보지 못했다. 홍콩의 언론 자유를 지키겠다며 30여 년에 걸쳐 세운 그의 미디어제국은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 1년 만에 무너졌다.

중국 남부 광둥성에서 태어난 지미 라이는 1949년 중국 대륙이 공산화되자 12살에 홍콩으로 밀항했다. 자유와 돈을 찾아서였다. 그는 지난해 12월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홍콩은 내게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홍콩에서 나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자유를 맛봤고, 그것은 천국 같았다”고 했다. 지미 라이는 홍콩에서 창고, 가발 공장, 의류 회사 등에서 일을 했다. 1981년에는 의류 브랜드인 ‘지오다노’를 창업하기도 했다.

그의 정치 사상을 일깨운 것은 미국이었다. 의류 회사에서 일하던 지미 라이는 미국 백화점에 스웨터를 팔기 위해 20대 때인 1960년대 말부터 미국으로 출장을 자주 다녔다. 이 시기에 그는 사회주의를 비판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칼 포퍼 책에 매료됐다. 특히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비판한 자유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Road to Serfdom)’은 책장이 떨어져 나갈 때까지 읽었다고 한다. 지미 라이는 회고록에서 “국가가 지옥이 된 것은 나라를 천국으로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하이에크의 주장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1990년 언론 사업에 뛰어든 그는 자신이 창업한 넥스트미디어(현 넥스트디지털) 본사에 하이에크 흉상을 세웠다. 천안문 사태, 소련 해체를 겪으며 자유주의에 대한 그의 믿음은 확고해졌다. 1990년 주간지 일주간(壹周刊), 1995년 일간지 빈과일보를 창간했다. 창간 초기 선정적 연예 뉴스로 인기를 끌었지만 2003년 홍콩보안법 반대 시위, 2014년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요구 시위를 적극 지지하며 홍콩 내 대표 반중 매체로 자리 잡았다. 자미 라이 자신도 시위대 선두에 섰다. 미국 부통령, 국무장관도 만났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지미 라이를 “홍콩을 혼란에 빠지게 만드는 막후의 검은손” “매국노” “배신자”라고 비난했다.

24일 홍콩 반중(反中) 신문 빈과일보가 폐간을 결정하며 26년 역사를 마감했다. 신문이 창간된 해인 1995년, 사주 지미 라이가 빈과일보를 상징하는 사과 그림 옆에 서서 베어 문 사과를 들고 있다(왼쪽 사진). 빈과일보는 창간 초기 선정적 연예 뉴스로 인기를 끌었지만 홍콩 및 중국 당국에 대한 비판적 보도를 이어가면서 2000년대 이후 사회 영향력이 큰 매체로 자리 잡았다. 지미 라이는 지난해 12월 불법 집회 조직·참여 혐의로 구속됐고(가운데 사진) 옥중에서 폐간을 지켜보게 됐다. 빈과일보가 마지막 신문을 발행한 24일, 한 신문 가판대 앞에 시민들이 줄을 서서 빈과일보를 사고 있다. 1면 제목은‘홍콩인들 빗속에서 아프게 이별, 우리는 빈과(일보)를 지지한다’이다(오른쪽 사진). /AFP·AP 연합뉴스

2020년 6월 30일 중국이 반중 세력을 감시, 처벌하는 홍콩보안법을 시행했을 때 1순위 체포 대상으로 지목된 것도 지미 라이였다. 지난해 8월 그는 두 아들과 함께 홍콩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넉 달 후인 같은 해 12월 불법 집회 조직·참여 혐의로 다시 구속됐다. 현재 2019년 불법 집회 3건을 조직한 혐의로 징역 20개월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홍콩 당국은 불법 집회 주최, 사기, 홍콩보안법 위반 등 3건의 혐의로 그를 추가 기소한 상태다. 그는 홍콩보안법 중 외세결탁죄 혐의를 받고 있다. 강연, 인터뷰를 통해 중국·홍콩 관리에 대한 서방 제재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홍콩 당국은 지미 라이의 재산이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범죄에 연루됐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그의 재산 가운데 5억홍콩달러(약 730억원)를 동결했다. 홍콩 당국은 지난 17일 경찰 500여명을 동원해 빈과일보를 압수 수색하고 1800만홍콩달러(약 26억원)의 자산을 동결했다. 신문 판매 대금이 들어오고 직원 월급이 나갈 돈줄을 막은 것이다. 빈과일보 편집국장, 주필, 모회사인 넥스트디지털 CEO 등도 체포했다.

지미 라이가 71%의 지분을 가진 넥스트디지털은 23일 주간지인 일주간의 발행을 중단하기로 했다. 창간 31년 만이다. 빈과일보 발행 중단 소식도 그 직후 알려졌다. 24일 자를 끝으로 지면 발행을 중단한 것이다.

빈과일보는 24일 평소보다 10배 많은 100만부를 발행했다. 1면 제목은 “홍콩인들 빗속에서 아프게 이별, 우리는 빈과(일보)를 지지한다”였다. 시민들은 전날 밤 10시부터 신문 가판대에서 줄을 섰고 3시간을 기다려 막 발행된 빈과일보를 몇 부씩 샀다. 빈과일보 사옥 앞에는 지지자들이 휴대전화 조명을 촛불처럼 들고 빈과일보 지지 시위를 벌였다.

23일 오후 11시45분 람만청(林文宗) 빈과일보 집행총편집인은 마지막 신문 발행을 마치고 동료들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기자들은 손뼉을 치며 “힘내라 빈과, 힘내라 홍콩”을 외쳤지만 이내 고개를 떨구고 서로를 끌어안고 회사를 떠나야 했다. 사옥의 불도 하나둘 꺼졌다. 지미 라이의 빈과일보가 첫 신문을 발행한 지 26년 4일 만이다.

홍콩 몽콕에서 24일 새벽 주민들이 빈과일보의 마지막 신문을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올해로 창간 26주년을 맞은 빈과일보는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 1주년을 엿새 앞두고 이날 폐간됐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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