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17] 무슨 소망을 품고 오셨나, 부처님 찾는 귀부인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2021. 6. 2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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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 '문종심사'(聞鐘尋寺·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 종이에 채색, 28.2x35.6㎝, 간송미술관 소장

홍살문이 살짝 보이는 조용한 절 입구에 지체 높은 귀부인이 나타났다. 점박이 조롱말을 타고 여종과 말구종까지 대동했다. 먼저 연락이 갔을 터이지만 영접 나온 스님 모습이 더없이 공손하다. 엄청 커다란 바위를 배경으로 작은 돌무더기가 조금씩 서낭당 모습을 갖추어가고 있다. 귀부인 일행도 잠깐 멈추어 작은 돌멩이 하나라도 얹어둘 만하건만 그냥 지나친다. 큰스님 만나고 돌아 나올 때 더 간절한 소망을 담을 심산이다.

돌무더기 앞에는 젊은 나무 한 그루가 키만 껑충하게 서 있다. 세월이 지나면 위엄을 갖춘 아름드리 고목나무가 되어 오가는 백성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서낭당 지킴이가 될 터다. 약간 갸름한 잎 모양새나 줄기가 뻗는 모양, 자라는 위치 등으로 봐서는 느릅나무다. 스님 뒤 X 자로 꼬인 나무와 바로 옆의 약간 희미하게 처리한 굵은 나무도 잎이 핀 색깔은 조금씩 다르지만 역시 느릅나무로 짐작된다. 사찰 입구의 계곡과 같이 돌 많고 배수가 잘되는 비옥한 땅에서 잘 자란다. 우거진 숲속보다 그림처럼 사람 다니는 길목에서 더 흔히 만날 수 있다. 느릅나무는 흉년에 소나무와 같이 속껍질을 벗겨 먹고 배고픔을 달랠 수 있으니 절 부근에는 당연히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산 아래 백성들에게 베풀고, 스님들의 비상식량이 될 수도 있다. 개화기의 서정시인 박목월의 ‘청노루’에서는 ‘머언 산 청운사 낡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속잎 피어 가는 열두 굽이를/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이라고 읊조렸다.

그 외 짙은 색으로 나타낸 바늘잎나무는 모두 소나무다. 그림 왼쪽 위의 글에는 ‘소나무가 많아 절은 뵈지 않고 인간 세상에는 종소리만 들린다’고 했다. 그래서 제목은 ‘종소리를 듣고 절을 찾는다’는 ‘문종심사(聞鐘尋寺)’다. 사람들에게 종소리가 들리려면 적어도 직선거리로 4㎞ 이내에 마을이 있어야 한다. 인가와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서 나들이가 쉽지 않은 조선시대 부인네도 손쉽게 찾아갈 수 있는 절이다. 말 탄 귀부인이나 남녀 하인, 심지어 영접하는 스님까지 모두 심각한 얼굴이다. 누구도 밝은 웃음기가 없다. 서낭당을 그냥 지나치는 것도 큰스님을 먼저 찾아뵙고 간절히 빌어야 할 소망이 너무 절박한 탓이리라. 아마 집안에 큰 우환이 생긴 것 같다. 신윤복(1758~?)의 풍속화 ‘혜원전신첩’ 30폭 그림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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