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웅 광복회장 부친의 '독립운동 공훈 기록' 허위 의혹

박종인 선임기자 2021. 6. 25.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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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웅 광복회장의 선친 김근수씨의 독립운동 공훈 기록이 허위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보훈처 공훈 기록에는 김근수씨가 1963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고 1992년 1월 작고한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정부가 1963년 ‘광복군 출신 김근수’씨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할 당시 공적조서에 김근수씨는 이미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회장 본인도 각종 인터뷰에서 1963년부터 1990년까지 선친이 포상을 받았다고 주장해왔다.

보훈처 '1963년 대통령표창 김근수(金根洙) 공적조서'. 오른쪽 위 '생존작고'란에 '作故'(작고)라고 적혀 있다. /조수진 의원실 제공

23일 본지가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보훈처 ’1963년 대통령표창자 김근수 공적조서'(관리번호 8245) ‘생존 작고’란에는 ‘作故’(작고)로 표시돼 있다. 그런데 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공훈록에 올라와 있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수여자 김근수(김원웅 회장 선친)씨 사망일은 1992년 1월 30일이다. 1963년 공적조서와 1990년 공훈록 관리번호는 모두 8245번으로, 보훈처는 동일 인물로 관리해왔다. 보훈처에 따르면 1963년 대통령표창을 받은 김근수는 1977년 재심을 통해 건국포장으로 승급됐고 이어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으로 승급됐다. 공훈록 내용대로라면 1963년 이전에 이미 사망한 인물이 1992년에 또 한 번 사망한 것이다.

공훈록 내용에 따르면 ’1963년 김근수'와 ’1990년 김근수'는 동일 인물로 보기 힘들다. 두 김근수가 활동한 시기는 물론 지역도 다르다. 1963년 공적조서에는 김근수씨가 ’1939년 2월 조선의용대 입대' ’1940년 9월 한국광복군총사령부 총무처 근무' ’1942년 10월 산서‧화북지구 적 후방 지하공작'을 했다고 적혀 있다. 그런데 1990년 김근수씨 공훈록에는 ’1939년 8월~1941년 3월 조선의용대 활동' ’1941년 3월 광복군 편입' ’1945년 8월까지 중경‧하남성 및 만주지방 특파공작원'이라고 적혀 있다.

임시정부 문서에 따르면 출신지도 다르다. 김원웅 회장은 “선친이 ‘김석’, ‘왕석’이라는 가명으로 활동했고, 어머니는 ‘전희’, 나는 ‘왕원웅’으로 불렸다”고 주장해왔다. 1945년 12월 중경임시정부가 작성한 ‘한국임시정부직원기권속교민명책’에는 ‘왕석(王碩) 가속(家屬‧가족)’이라는 부기와 함께 ‘전희’와 ‘왕원웅’ 이름이 기록돼 있다.

그런데 이 문서에는 이들 출신지가 ‘평북(平北)’으로 기록돼 있는 반면 1990년 공훈록에는 김 회장 선친 고향이 ‘경남 진양(진주)’으로 기록돼 있다. 김 회장에 따르면 부친 김근수씨와 모친 전월선씨는 각각 경남 진주와 경북 상주에서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했다. 평북과는 아무 연고가 없다. 보훈처가 동일 인물로 관리해온 1963년과 1990년 두 김근수가 출신지, 활동 시기와 활동 지역은 물론 사망 시기까지 모두 다른 것이다.

광복군 2지대 출신 독립운동가 후손 모임인 장안회 이형진 회장(광복군 2지대 공작조장 이재현 선생 장남)은 “1963년 8월 14일 자 ‘조선일보’ 2면 ‘광복군 출신 대통령표창 대상자 342명 명단’에도 ‘金根洙’라는 인물 앞에 ‘故’(고)로 표시돼 있다”며 “김 회장이 자기 선친이라고 주장하는 김근수는 다른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모순의 원인이 보훈처의 단순한 행정 착오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단순 실수로 보기에는 두 김근수의 구체적인 행적이 너무 다르다. 보훈처는 “1963년 당시 국사편찬위로부터 이관받은 공적 조서가 단 한 장뿐이라 어떻게 공적 조서에 ‘작고’로 표기됐는지 경위 파악이 어렵다”며 “이 김근수와 이후 나오는 김근수가 동일 인물인지 계속 조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민의 힘 조수진 의원은 “역사를 바로잡는다는 의미에서 계속 이 사안을 조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본지는 김원웅 회장에 전화와 문자 메시지로 1963년 대통령표창을 받은 ‘김근수’씨와 선친이 동일 인물인지 물었으나 김 회장은 응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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