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복 김선생] 바삭바삭 맛있고 영양 많은.. 곤충?
미래 대안식량으로 뜬 곤충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이색적인 경고를 내놨습니다. FDA는 최근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매미는 새우나 바닷가재와 비슷한 계열”이라며 “해산물 알레르기가 있다면 매미를 먹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곤충과 갑각류는 둘 다 절지동물과(科)에 속하고, 비슷한 단백질을 함유하기 때문에 갑각류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식용 곤충에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죠.
FDA가 이런 경고를 내놓은 것은 지금 미국 동부와 중부가 매미 천지이기 때문입니다. 17년 전인 2004년에 짝짓기하고 굼벵이가 되어 땅속으로 들어갔던 매미들이 성충이 되어 돌아온 거죠. 헤아릴 가늠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많다는데요, 곤충학자들은 어림잡아도 10조 마리가 넘을 것으로 본답니다.
미 전역의 음식점은 물론 일반 가정에서도 매미를 활용한 볶음, 튀김, 데침, 구이, 샐러드, 타코 등 다양한 요리로 맛보느라 난리가 났습니다. 17년만에 돌아온, 그야말로 날이면 날마다 맛볼 수 있는 별미라며 인기를 얻고 있죠. 저는 이번 미국의 매미 소동이 무척 반갑습니다. 곤충이 훌륭한 식품임을 새삼 깨닫게 해줬다는 점에서, 그리고 곤충 식용에 대한 거부감을 크게 완화시켜줄 것이란 점에서 그렇습니다.
◇ 인류 최초의 스낵은 곤충?
우리가 간식으로 즐겨 먹는 과자는 왜 대부분 바삭할까요. 오래 전부터 곤충을 식량원으로 활용하던 습관을 꼽는 음식사학자들이 있습니다. 인류 최초의 스낵이 곤충이란 거죠. 고대는 물론이고 지금도 벌레를 식용하는 인구가 전 세계 20억명이나 됩니다. 한국인이 술안주와 간식으로 즐기는 번데기가 대표적이죠. 그럼에도 여전히 혐오 식품이라는 인식이 강한 곤충이 미래의 대안(代案) 먹거리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가성비’가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체중 1kg을 늘리려면 소는 10kg, 돼지는 5kg, 닭은 2.5kg의 사료를 먹어야 합니다. 반면 귀뚜라미는 1.7kg이면 충분합니다. 사료뿐 아니라 마시는 물과 사육 공간도 훨씬 적게 듭니다. 생산성이 높고 경제적이죠. 온실가스 배출도 적으니 친환경적이기까지 합니다. 기후 변화, 물 부족 등으로 식량 생산이 인구 증가를 따라가지 못할 경우, 번식력이 좋고 영양 가치 높은 곤충이 인류의 새로운 식량이 된다는 거죠.
곤충은 단백질 함량도 소·돼지·닭보다 월등히 높습니다. 고기에는 없는 섬유질도 함유했고요. 고기의 지방은 몸에 해로운 불포화지방산이지만, 곤충의 기름은 오메가3 등이 풍부한 불포화지방산이라 혈관에 기름 낄 염려가 덜하죠. 요즘 무농약, 유기농 이런 거 많이 따지죠? 곤충은 농약을 치면 바로 죽기 때문에 친환경일 수밖에 없죠. 매미는 아스피린과 같은 성분이 있고, 굼벵이는 ‘동의보감’에 ‘간(肝)에 좋다’고 나오기도 합니다.
곤충은 식량뿐 아니라 애완용으로 인기입니다. 장수풍뎅이, 사슴벌레, 거미 같은 곤충은 제 아들들도 엄청 키우고 싶어합니다. 의약품·화장품 개발에도 활용되고, 농약 대신 해충을 제거하는 천적 곤충과 식물 꽃가루를 매개해주는 화분 매개 곤충은 친환경기술로 주목 받기도 하지요.
이에 따라 한국 정부도 지난 2019년 갈색거저리·장수풍뎅이·흰점박이꽃무지 등 곤충 14종을 축산법에 따른 가축으로 인정했습니다. 곤충 사육 농가는 취득세·지방교육세 50% 감면, 농어촌특별세 비과세 등 각종 지원을 받게 돼 곤충산업이 활성화될 전망입니다.
◇ 곤충, 맛있어서 먹는다
미국에서 매미 요리가 쏟아져 나오는 건 단지 화제성 때문만은 아닙니다. 실제 매미는 맛이 꽤 좋은 모양입니다. 국내 1호 곤충요리 전문가 송혜영 한국곤충연구소 소장을 인터뷰한 적 있는데요, 그는 “매미가 울기 시작하면 새벽부터 잠자리채 들고 아파트 뒤 숲으로 나간다”고 했습니다. 시끄러워서가 아니라 먹고 싶어서랍니다. “매미 그리고 매미가 벗어놓은 허물을 튀겨 먹으면 그렇게 바삭바삭 고소하니 맛있을 수가 없어요.”
송 소장은 “무엇보다 맛있어서 곤충을 먹는다”고 했습니다. “고소애를 빻은 가루를 슈퍼마켓에서 산 된장·고추장에 섞으면 다들 맛보고는 ‘집된장·집고추장이냐’고 너무 맛있다고 해요. 곤충 단백질이 인공조미료(MSG)와 같은 글루탐산 계열이라 감칠맛이 엄청나거든요. 굼벵이나 귀뚜라미를 물에 끓이면 사골처럼 뽀얗고 구수한 국물이 금세 우러나요.”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곤충은 개미랍니다. “새콤한 개미산(酸)이 정말 매력적이에요. 오미자차에 산 개미를 넣고 네모 얼음으로 얼렸다가 입에 넣고 녹여 먹으면 마지막에 탁 하고 터지는 개미의 새콤한 맛이 정말 매력적이에요. 개미를 볶으면 검은깨처럼 보이는데, 이걸 멸치볶음에 한 숟갈 푹 넣으면 다들 맛있게 먹어요. 물론 개미라는 걸 알기 전까지 말이죠.”
송 소장은 본래 요리연구가가 아닌 과학도입니다. 곤충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농촌진흥청·한국생명공학연구소 등 정부 연구기관에서 곤충을 연구했으며 서울대·충남대 생물학과 교수를 역임했죠. 지구 온난화 줄이는 친환경 밥상을 위해서는 곤충 식용이 좋겠다는 생각에서 곤충요리를 연구하게 됐다고 합니다.
송 소장은 “곤충요리를 알리는 데 가장 방해가 되는 건 선입견”이랍니다. “모르면 잘 먹지만 곤충이라고 아는 순간 안 먹어요. 하지만 곤충은 분명히 맛있는 식재료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밀웜(mealworm·가장 대표적인 식용 곤충)을 막대사탕에 묻혀 주면 너무 맛있게 먹어요. 엄마들이 깜짝 놀라죠.”
◇ 곤충으로 요리하는 세계 최첨단 셰프들
곤충은 미래 대안식량일 뿐 아니라 맛도 좋지만 혐오감이 문제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 최정상 요리사들이 나섰습니다. 곤충을 음식에 활용하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죠.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노마(Noma)가 대표적입니다.
세계 최고 레스토랑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 노마에서는 샐러드에 레몬즙을 뿌리는 대신 붉은 개미를 올려 신맛을 냅니다. 오너셰프(주인 겸 주방장) 르네 레드제피는 “지중해에서 비행기로 오랜 시간이 걸려 배송된 레몬보다 코펜하겐 인근 흙에서 잡은 개미에서 더 좋은 신맛이 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레드제피는 메뚜기로 가룸(garum)을 만들고 있기도 합니다. 가룸은 고대 로마와 그리스에서 고등어·참치 등 생선을 발효한 액젓의 일종. 최근 이 가룸을 되살리려는 요리사들이 서양에 꽤 있습니다. 레드제피는 “가룸을 똑같이 되살리면 너무 비리고 짜서 현대인 입에 맞지 않는다”며 “전통 가룸 제조법을 사용하되 메뚜기를 재료로 써서 실험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몇 해 전 노마를 방문했을 때 메뚜기 가룸을 맛봤습니다. 짙은 적갈색을 띤 메뚜기 가룸은 멸치액젓보다 짙고 구수한 맛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모르고 먹었다면 소고기·돼지고기 등 고기로 담그는 육장(肉醬)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어떠세요, 곤충을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은 드시나요? 영양, 환경, 맛 등을 따졌을 때 곤충이 좋다는 건 알겠지만 여전히 거부감을 갖는 분들이 많겠죠. 이런 분들에게 곤충 식용에 도전하는 첫걸음으로 ‘갈아서 형태가 보이지 않도록 하기’를 추천합니다.
곱게 빻은 분말을 간장이나 된장, 고추장에 넣으면 오이 등 채소를 찍어 먹거나 쌈장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올리브오일과 발사믹식초 등과 섞으면 훌륭한 샐러드 드레싱이 됩니다. 밀가루 반죽에 섞어서 국수를 뽑거나 빵을 구우면 곤충이 들어갔는지 전혀 느껴지지 않지만 훨씬 더 구수한 맛이 나면서 단백질 등이 보충돼 영양 균형이 좋아집니다.
식용 곤충 구하기도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요즘은 인터넷 등을 통해 쉽게 구입할 수 있습니다. 곤충은 기름이 많아 산폐하기 쉬우니 가루로 주문하지 말고 통으로 건조된 걸 주문해 냉동실에 보관하면서 먹을 때마다 빻아서 쓰는 게 좋답니다. 가정에서 흔히 쓰는 분쇄기에 넣으면 1~2초면 쉽게 갈리죠. 물론 송 소장처럼 직접 잡아서 먹는 게 가장 신선하고 맛있기는 합니다만, 거기까지는 아직 저도 힘들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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