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엽의고전나들이] 계보를 빛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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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읽다 보면 '성인(成仁)'이 자주 보인다.
'인(仁)을 이룬다'의 뜻이니, 유교 사회에서 대단한 성취를 이룬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겠다.
그러나 이는 '살신성인(殺身成仁)'에서 '성인' 두 자를 떼어낸 것이어서, 대의를 위해 희생한다는 뜻으로 흔히 쓰인다.
죽고 나면 더 이상 변할 것이 없으니까 그때서야 제대로 된 평가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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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세상에는 정반대의 일도 있다. 희생정신으로 수(壽)를 누리지 못한 분을 기리는 게 아니라, 제자리에서 제 일을 잘 해내고 천수를 누리신 분들을 무덤에서 끌어내는 일이 있는 것이다. 김창흡(金昌翕)의 ‘이장(移葬)’이라는 시는 그런 상황을 콕 집어내고 있다. “관 뚜껑 덮고도 되레 알기 어려운 일 있으니(蓋棺猶有事難知) / 자손이 성대하여 파헤쳐져 이장을 하네(子大孫多被掘移). / 생시에는 화려한 집에 몸 편하기 오래건만(生存華屋安身久) / 죽어서는 떠돌이 다북쑥 신세 어찌 슬프지 않으리오(死作飄蓬豈不悲)”
사람 일은 관 뚜껑을 덮어봐야 안다는 말이 있다. 죽고 나면 더 이상 변할 것이 없으니까 그때서야 제대로 된 평가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자손이 번창한 것이 도리어 문제이다. 자손들 욕심에 발복(發福)할 묏자리를 찾아 이장을 하느라 곤욕을 치르니 자손이 그렇지 않았더라면 묏자리는 편했지 않겠느냐는 심사를 드러낸다. 물론 자손들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어떻게든 우리가 잘 되어야 조상님을 더 명예롭게 할 게 아니냐는 식으로 말이다.
이는 혈연으로 이어진 가문에서만 그런 것도 아니며 구시대의 유물만도 아니다. 지금도 이름깨나 날리는 인사들이 무슨 때만 되면 검은색 정장을 입고 윗대의 무덤 앞에 나아가 비장한 각오 반, 낯 뜨거운 자랑 반을 뒤섞곤 한다. 그러나 그렇게 죽은 이 앞에 나아가 현란한 계보를 자랑할 시간에 무언가 새로운 성취를 하여 자신의 계보가 절로 빛나도록 하는 게 백배는 나을 성싶다. 그것이 이미 돌아가신 분들의 편안히 잠들 권리를 보장해드리는 최소한의 도리일 테다. 다 떠나서 죽고살기로 싸울 일이 있을 때만 나타나서 정통성을 들먹이며 다른 패들을 욕보이기에 바쁜 행태라면, 대체 어느 영혼이 기꺼이 손 내밀어 도와줄 것인가.
이강엽 대구교대 교수·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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