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현대, 럭키..'한국 현대사' 휘갈긴 김충현의 글씨들

노형석 2021. 6. 24.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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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프로야구단 삼성 라이온즈 선수들의 유니폼 상의에는 고풍스러운 예서체 한자의 '三星'(삼성) 제호가 찍혀 있었다.

가로가 세로보다 넓고 위풍당당한 당시 제호 이미지는 지금도 팬들의 기억 속에 '삼성 왕국'을 구축한 구단의 상징으로 선연하게 남아있다.

지금 삼성 제호와는 천양지차로 다른 고풍스러운 이 글씨는 이젠 국내 최대 재벌의 과거 영욕을 상징하는 역사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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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100년 특별전, 서울 백악미술관 내달 6일까지
1982년 3월27일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에서 첫 홈런을 날리고 홈에 들어오는 삼성라이온즈의 이만수 선수. 그의 유니폼 상의에 일중의 제호 ‘三星’(삼성)이 보인다.

1980년대 프로야구단 삼성 라이온즈 선수들의 유니폼 상의에는 고풍스러운 예서체 한자의 ‘三星’(삼성) 제호가 찍혀 있었다. 가로가 세로보다 넓고 위풍당당한 당시 제호 이미지는 지금도 팬들의 기억 속에 ‘삼성 왕국’을 구축한 구단의 상징으로 선연하게 남아있다. 지금 삼성 제호와는 천양지차로 다른 고풍스러운 이 글씨는 이젠 국내 최대 재벌의 과거 영욕을 상징하는 역사로 남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 제호를 썼던 대가의 붓끝에선 현대, 럭키, 선경 등의 당대 재벌 그룹 제호들은 물론이고, 동숭동 옛 서울대 캠퍼스 정문에 붙어있던 ‘서울대학교’, 한때 서울의 고급 아파트였던 여의도 ‘수정아파트’, ‘천마콘크리트공업주식회사’ 등의 쟁쟁한 제명과 상호들이 수십여년간 쏟아져 나왔다.

대중의 눈에 친숙해진 글자들이지만, 그 바탕은 중국 고대 비석에 새겨진 한자의 전서와 예서, 세종 때 창제한 <훈민정음>과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 같은 15세기 초기 한글 문헌의 고딕체 자형을 집요하게 비교 연구하고 숱한 습작으로 예인의 기운을 담은 필법을 개발해 나온 것들이었다.

1997년 일중이 파킨슨병으로 절필하기 전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긴 글씨 작품 <명통공부>(明通公溥). ‘밝아서 통하고 공평하여 넓게 한다’는 뜻이다. 백악미술관 제공

나라를 대표하는 서예가, 국필로 지금도 칭송되는 일중 김충현(1921~2006). 해방 이후 50여년 동안 그의 글씨는 그렇게 한국 사회와 대중의 시선 속에 물처럼 스며들었다. 해방 직후인 1947년 정갈하면서도 우람한 궁체로 쓰고 새긴 충남 병천 유관순 비명이 시작이었다. 1997년 앙천루 현판에 이르기까지 700개가 넘는 비문과 동상이름, 현판 작품이 그의 붓질에서 나왔다.

이달 초부터 서울 관훈동 백악미술관(관장 김현일)에서 열리고 있는 일중 김충현 탄생 100주년 특별전 ‘一中(일중), 시대의 중심에서’에 가면 일중의 대중적인 글씨들과 지금도 한국 서예사에 산처럼 우뚝한 그의 대표작들을 시기별로 대부분 볼 수 있다. 전시 장소인 백악미술관은 1983년 그가 ‘백악동부’(白岳洞府)란 이름을 지으며 서울 인사동 골목 한쪽에 손수 마련한 작품의 터전. 그가 남긴 또 다른 유산인 이 공간에서 마음에 중심을 잡는 ‘일중’의 마음으로 한국 서예사의 중심을 잡고 새로운 지평을 창조한 거장의 작품들을 초기부터 말기까지 망라해 보여준다.

전시실 3층 안쪽에 있는 일중 김충현의 흉상. 1987년 조각가 김경승이 만든 작품이다. 뒤쪽에 1974년 서예가 송성용에게 써준 ‘남취헌’ 편액이 보인다. 노형석 기자

전시의 핵심은 평생 한자와 한글 글씨를 함께 연마하며 1960년대 예서와 한글 고체를 바탕으로 ‘일중체’를 정립하고 1980년대 이후엔 행서초서까지 세계를 넓혀 이른바 한자의 오체와 한글의 고체 등이 모두 융합된 초유의 경지를 일구기까지의 과정들을 담은 대표작들이다. 1970년대의 예서 대표작 <서대행>, 전서부터 초서까지 한자의 오체가 녹아든 1987년작 <삼연시>, 1997년 절필작 <명통공부> 등을 우선 주목해야 한다.

1981년 화가 운보 김기창이 그려준 일중 김충현의 초상. 초상 옆에 일중이 직접 그리게 된 경위를 세필로 써넣었다. 백악미술관 제공

운보 김기창이 코믹하게 그려준 캐리커처 등 다른 예술가들과 교유하며 남긴 글씨와 그림들, 후학들의 교육에 부심해 남긴 각종 쓰기 교재들에 이르기까지 194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글씨 인생을 살펴볼 수 있다. 시대가 천번을 바뀌어도 항상 형형한 먹빛처럼, 기본을 지키되 시대에 따라 변화할 줄 알았던 일중의 법고창신을 느껴보는 자리다. 7월6일까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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