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원 칼럼] 최저임금, 지역별 차등화가 돌파구다

2021. 6. 24. 20: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명예회장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명예회장

최저임금은 2000년 이후 17년간 연평균 인상률이 8.6%였다. 이 정부 들어 첫해부터 5년간 매해 평균 9.1%씩 올렸더라면 이 정부의 공약인 임기 중 만 원이 가능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16.4, 10.9, 2.9, 1.5% 올린 후 내년에 만원을 만들려면 14.7%를 올려야 하는데, 과연 가능할까?

노동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임금근로자 수가 작년 319만명(15.6%)으로 재작년 338만명(16.5%)에 비해서는 좀 줄었지만 2001년 58만명(4.3%)에 비하면 엄청나게 늘어났다. 2019년까지의 가파른 인상의 효과가 아직 그대로 있는 것이다. 이들은 고율 인상을 강행하면 실직할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2000년 최저임금은 시간당 1600원이었다!)

최저임금을 못 받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도 위반자를 일제 단속한 적은 없다. 찾아 보니 미달자가 266만명이었던 2018년 2373건의 위반이 적발되었고 처벌까지 간 것은 1220건이라고 한다.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고발한 사례는 많지 않고, 당국도 굳이 조사하거나 처벌할 생각이 없다는 말이다. 인상된 최저임금을 받으려고 고발을 해서 폐업, 실직의 위험을 감수할 것인지의 선택을 근로자에게 맡긴 셈인데, 대단히 합리적이고 현명한 처사라 하겠다.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지역별 차등화로 연결된다. 노동 수요, 노동 강도, 생계비 수준 등 어떤 요소를 감안해도 서울 수준의 임금을 받을 수도 없고 받지 않아도 되는 지방에게 굳이 서울과 똑 같은 최저임금을 받으라고 강요해서 지역의 일자리 창출을 어렵게 만들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낮은 임금에라도 취직할 권리를 개개인에게 줄 수는 없다면 지방정부에게라도 주어야 한다.

최저임금은 남북전쟁 이후에 남부의 해방된 흑인노예들이 북부의 공장지대로 이주해 낮은 임금에라도 일을 하려고 하자 백인 노동자들이 이들을 막기 위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최저임금은 사용자에 대한 규제 같지만 반사적으로 더 낮은 임금에라도 일자리를 갖고 싶은 사람들의 선택권을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지방정부가 주도해서 임금수준이 좀 낮더라도 일자리를 만들어 보려고 하는 노력인 '광주형 일자리'가 이 정부의 대선 공약으로 이행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지방정부가 서울보다 낮은 최저임금을 정하게 해 주면 안 될까? 지자체의 장도 선거로 뽑히는 사람이라 주민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일을 할 리가 없다. 지방의 유일한 경쟁력일 수도 있는 '저임금'을 활용하여 서울과 일자리 경쟁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지역별 차등화는 국가 단위의 최저임금을 그야말로 최저 수준에서 정하고 지자체는 지역별, 연령별, 업종별로 그보다 더 높은 최저임금을 정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방안이다. 지자체가 지역에서 받을 수 있는 최대한 높은 수준의 최저임금을 정하는 모습으로 만들어 주어야 지자체가 운신의 폭을 가질 수 있다. 지금처럼 사실상 서울을 염두에 두고 '최고의 최저임금'을 정하는 방식으로는 안 된다.

편의점, 음식점에서 알바를 하는 청소년, 경비원, 주유원 등 노동강도가 약한 일을 하는 노인들이 높은 최저임금으로 실직할 위험에 가장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연령별 차등화도 절실하다. 사실 외국의 최저임금 차등화 사례를 보면 연령별 차등화가 가장 많다. 물론 연령별 차등화도 지역별로 하게 해야 한다.

국회에 계류 중인 최저임금 차등화 안은 업종별 차등화가 제일 숫자가 많다. 그러나 이는 사용자가 원하는 것이어서 피용자의 입장에서 필요한 노동제도의 유연화도 안 해주는 정치권에서 그리 환영할 것 같지 않다. 업종별 차등화도 지역별 차등화에 포함시켜서 실현 가능성을 높이면 어떨까?

근로자, 특히 미취업자에게 도움이 되는 제도개선부터 해보자. 사용자를 위해서든 근로자를 위해서든 노동관련 규제가 유연화되면, 근로자와 사용자 모두가 '선택의 폭의 확대'라고 하는 이익을 누릴 수 있다. 세상에 한 쪽만 구속하는 노동법은 없다.

끝으로 최저임금위원회의 근로자 대표를 노조 대신 최저임금, 또는 그 이하의 임금을 받는 사람들로 바꿔야 한다. 최저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최저임금 인상을 원치 않는다.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