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발] 청년들이 자신의 미래를 꿈꿀 수 있으려면

이종규 2021. 6. 24.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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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지난 4월 청년시국선언 원탁회의와 대학생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세대가 아닌 시대를 교체하라’는 청년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종규 논설위원

이종규ㅣ논설위원

30대 초반의 지인이 최근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에 뛰어들었다. 백패킹(야영 장비를 등에 지고 떠나는 여행)을 즐기던 친구였는데, 취미 활동에서 사업 아이템을 찾은 것이다. 지역과 함께하는 지속가능한 ‘백패킹 플랫폼’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비유하자면, 백패킹 버전의 생태·공정여행 사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요즘 같은 취업난 시대에 정규직 일자리를 포기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그 친구의 퇴사 이유는 쿨했다. “재미있는 일을 오래오래 하고 싶어서.”

‘덕업일치’의 삶을 살겠다니, 일단 부러운 마음이 앞섰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했던 때가 얼마나 될까, 스스로 반문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안쓰러운 마음이 더 커졌다. 아이디어 하나 달랑 들고 맨땅에서 뭔가를 일궈내는 일이 얼마나 힘들지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졌다. 그는 ‘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 몸은 피곤해도 지치지는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종잣돈 마련부터 쉽지 않은 듯했다. 다니던 직장이 중소기업인데다 재직 기간도 짧아서 모아놓은 돈이 별로 없었던 거다. 그는 얼마 전 에스엔에스(SNS)에 “요즘처럼 돈이 고픈 적이 없다”고 썼다. 당분간은 파트타임 알바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투자자를 찾을 생각이라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새로운 일을 모색하는 청년들에게 사회가 ‘비빌 언덕’이 되어줘야 할 이유를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요즘 식상할 정도로 많이 들리는 얘기지만, 청년들의 삶은 팍팍하다.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갖췄으면서도, 부모보다 가난하게 사는 첫 세대가 될 것이라는 자조도 나온다. 서울연구원 자료를 보면, 서울지역 청년(만 20~39살) 가운데 ‘40~50대와 비교했을 때 청년세대에게 기회가 더 많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18.1%에 그쳤다.(2020 서울 청년 불평등 인식조사)

현재 청년세대 앞에 놓인 문제는 구조적이고 다층적이다. 한국 사회가 이미 저성장 국면에 진입한데다, 기술 발전에 따른 일자리 소멸, 노동시장의 이중구조화, 부의 대물림 등 여러 문제가 얽혀 있어 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일자리 절벽에 내몰려 절망하고, 생계를 위해 불안정 노동을 전전하는 청년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는 없다. 청년들이 당장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에도 벅차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없다면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시도해볼 만한 대안이 없는 건 아니다. ‘소득’에 대한 고정관념만 버린다면 말이다. 민간 싱크탱크 ‘랩(LAB)2050’이 기획한 <코로나 0년 초회복의 시작>에서 저자들은 개인의 실질적 자유와 삶의 안정성을 합친 개념인 ‘자유안정성’ 확대를 국가 정책 운영의 목표로 삼자고 제안했다. 구체적인 실현 방법으로는 기본소득을 제시했다. 가족이나 고용주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국가가 ‘최저 소득’을 보장해주자는 것이다.

문제는 기본소득을 전국민에게 지급하려면 너무 많은 돈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기본소득을 우선 청년 대상으로 도입해보면 어떨까? 지금까지 청년들은 노동 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보편적 복지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일자리 소멸 시대에 이런 통념은 더 이상 정당성을 갖기 어렵다. 미래 세대인 청년들이 새로운 분배 시스템에 대한 효능감을 느끼게 되면 ‘생애주기 보편적 복지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청년기본소득은 낯선 제도가 아니다. 이미 경기도에서 3년째 시행 중이다. 만 24살 청년 모두에게 분기별 25만원씩 1년 동안 100만원을 지급한다. 액수가 적고 1년 동안만 지원한다는 한계가 있음에도, 행복감과 희망 등 여러 측면에서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왔다고 한다. 서울시에서도 만 19~34살 미취업 청년 중 선정된 이들에게 월 50만원의 청년수당을 6개월 동안 지급한다. 서울시가 펴낸 ‘청년수당 에세이 모음집’을 보면, 이 6개월은 누군가에게는 “더 단단하게 성장한 시간”이었고, 또 누구가에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준 디딤돌”이었다. 만 20살이든 25살이든, 일정한 나이의 청년 모두에게 목돈(기본자산)을 지급하자는 제안도 있다. ‘사회적 상속’을 통해 공정한 출발선을 제공하자는 취지다. 이름이 뭐가 됐든 이런 제도들이 보편화하고 규모가 확대된다면 좀 더 많은 청년들이 생계 걱정에서 벗어나 자신의 미래를 꿈꿀 수 있을 것이다.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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