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백의 캔버스, 색을 입다

박지현 2021. 6. 24.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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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 노화백의 캔버스에 드디어 색이 들어왔다.

20여년 전엔 돌아보지 않았던 물감의 색들이 그를 '유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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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미술의 대가 이강소, 3년만에 개인전
'이강소 : 몽유' 2층 전시 전경. 갤러리현대 제공
팔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 노화백의 캔버스에 드디어 색이 들어왔다. 20여년 전엔 돌아보지 않았던 물감의 색들이 그를 '유혹'했다. 그의 화업에서 새로운 시가 쓰여지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가장 청명한 기운이 그의 내면을 감도는 순간, 어떤 다른 생각을 더하지 않고 마음이 가는대로 마구 칠을 했다. 마치 선비의 책상에 놓인 서화처럼 흰 캔버스에 굽이치던 검은 선의 물결들이 이제 잔잔하고 맑은 호수에 도달한 듯하다. 아침과 저녁의 빛에 물결이 산란하며 오로라를 만들어내는 것 같다.

실험미술의 대가 이강소(78·사진)가 3년만에 개인전을 열고 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몽유(夢遊, From a Dream)'. 꿈속에서 노닐듯 그린 그의 회화 30여점이 전시장 지하부터 2층까지 내걸렸다. 작품의 연대는 1990년대 말부터 최근까지로 근 20여년 그의 화폭의 변화상을 훑어볼 수 있다.

젊은 시절부터 늘 변화를 추구해왔던 이강소는 대학시절 회화를 전공했지만 설치와 퍼포먼스, 사진, 비디오, 판화, 조각 등 매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여왔다.

1970년대 30대 젊은 시절에는 '신체제'라는 미술 연구 모임을 통해 한국의 실험미술을 주도했다. 2018년 그의 실험미술 작품을 회고하는 전시가 갤러리 현대에서 열렸고 3년 만인 이번 전시에선 그의 회화 작업을 망라했다.

이번 전시에는 일필휘지(一筆揮之 )로 남긴 역동적인 붓질과 과감한 여백이 아름다운 대형 회화를 비롯해 1980년대 말부터 작가의 작품에 아이콘처럼 등장한 새, 나룻배 등을 연상시키는 구체적 형상이 공존하는 회화, 회색이나 흑백의 모노톤 회화 등 그의 기존작과 더불어 형형색색의 물감을 사용해 그려낸 실험적인 신작 채색 회화가 더해졌다.

"그림에는 그린 사람의 에너지가 담겨 있고 또 그것이 보는 이에게 영향을 준다"고 믿어 왔던 이강소는 한동안 보이지 않는 강렬한 '기(氣)'를 화폭에 담아내기 위해 흑백과 무채색의 회화에 전념해 왔다. 때로는 빠른 붓질과 느린 붓질을 더해 자신이 그린 게 아니라 저절로 써지는 기운생동(氣韻生動)의 그림을 추구했다. 늘 변화를 탐구하던 그에게 색에 대한 새로운 심경의 변화는 5년 전 늘그막에 왔다. 이강소는 "어느날 작업실에서 20년 전 아크릴 물감을 꺼내서 칠해봤는데 너무 아름다웠다. 이렇게 멋진 색을 놔두고 지금까지 왜 이것을 안했나 싶더라"며 "색이 나를 유혹했다. 이제 내가 유혹하는 색채를 찾아보는 실험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석양빛을 머금은 듯한 주홍빛이 캔버스에 깔리고 때로는 푸른 새벽빛이 담겼다. 그 위에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무심한 오리들이 오간다. 이 화백은 "그려진 것은 오리일 수도 있고 비슷한 어떤 것일 수도 있는데 이런저런 생각하지 않고 마구 칠했다. 보는 사람에 따라 오리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그 찰나의 간극이 재밌다"며 "습관적인 붓질에서 조금씩이나마 벗어나 보려고 노력했다. 작가가 계속 변하지 않으면 골동품이 된다"고 말했다. 전시는 8월 1일까지.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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