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EFA '경기장 무지개색 조명' 불허에 온 독일이 무지개색으로 빛났다

임재우 2021. 6. 24.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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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뮌헨의 알리안츠 아레나 축구장에서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20) 조별리그 에프(F)조 헝가리-독일전이 열린 23일(현지시각), 독일 곳곳이 무지갯빛으로 물들었다.

뮌헨 시청사에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이 길게 내걸렸고, 베를린·프랑크푸르트·쾰른 등 독일 주요 도시의 경기장을 무지갯빛 조명이 둘러쌌다.

축구장 외관 조명은 불허됐지만, 헝가리-독일전이 열린 알리안츠 아레나 축구장 내부는 무지개색 마스크와 깃발, 스티커로 치장한 관객들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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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유럽축구선수권 헝가리-독일전에 무지개 마스크를 쓴 관객이 경기를 관람 중이다. 로이터 연합뉴스

독일 뮌헨의 알리안츠 아레나 축구장에서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20) 조별리그 에프(F)조 헝가리-독일전이 열린 23일(현지시각), 독일 곳곳이 무지갯빛으로 물들었다. 뮌헨 시청사에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이 길게 내걸렸고, 베를린·프랑크푸르트·쾰른 등 독일 주요 도시의 경기장을 무지갯빛 조명이 둘러쌌다. 베엠베(BMW)·지멘스·도이체방크 등 독일의 주요 기업들은 일제히 SNS에 내건 자사 로고에 무지개색을 입혔다.

트위터 도이체방크 계정 프로필
트위터 베엠베 계정 프로필

독일의 무지갯빛 물결은 엉뚱하게도 헝가리에서 비롯했다. 지난 15일 우파 성향의 집권당인 피데스는 소아성애방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미성년자(18살 이하)가 동성애나 트랜스젠더를 묘사하는 콘텐츠를 볼 수 없도록 한 법안이다. 이 법안에 대한 투표가 있기 전날 헝가리의 수도인 부다페스트 의회 앞에서 1만여명의 시민이 모여 항의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의석 3분의 2를 차지한 피데스가 법안을 통과시키는 걸 막지 못했다. 극우 민족주의 성향의 오르반 빅토르 총리와 피데스는 이 법이 ‘소아성애 등 아동성학대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유럽의 주요 언론들은 이들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보수층 표심을 결집하기 위해 법을 통과시킨 것이라고 본다.

유럽연합(EU)의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를 포함해 여러 나라가 우려를 쏟아냈다. 독일·프랑스·네덜란드 등 13개 유럽연합 회원국은 “강력한 우려”를 담아 공동 성명을 냈다. 집행위원회의 수장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이 법안이 “수치”라며 담당 집행위원들에게 “법적 우려를 표현하는” 서한을 보내도록 지시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이 법안은) 명백히 성적 지향에 근거해 사람을 차별하고 있고, 이는 인간의 존엄성·평등·인권 존중이라는 유럽연합의 근본적 가치와 어긋난다”라며 법안에 대한 반대의 뜻을 분명하게 밝혔다.

23일 무지개 깃발을 내건 뮌헨 시청사. 뮌헨 시청 누리집 갈무리
23일 무지개색 조명으로 장식한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도이체방크 파르크 경기장. 도이체방크 SNS

오르반 총리가 헝가리-독일전 관람을 위해 찾을 예정이었던 뮌헨시도 법안에 항의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 행동에 나섰다. 뮌헨시는 지난 20일 알리안츠 아레나 축구장의 외벽을 무지개색 조명으로 장식하겠다며 유럽축구연맹(UEFA)에 승인을 요청했다. 유럽축구연맹은 뮌헨시의 계획을 승인하지 않았다. “헝가리 의회의 결정을 겨냥한 메시지라는 정치적 맥락 때문에 거절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시야트로 페테르 헝가리 외무장관은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지만, 디터 라이터 뮌헨시장은 유럽축구연맹의 결정이 “수치스럽다”는 입장을 냈다.

무지개 조명을 불허한 유럽축구연맹의 결정은 오히려 독일 전역을 무지갯빛으로 물들이는 결과를 낳았다. 뮌헨시는 유럽축구연맹의 결정 직후 시청사를 비롯해 경기장 근처 올림피아탑 등 뮌헨 주요 건물에 무지개 깃발을 내걸거나 조명을 비추기로 결정했다. 쾰른·프랑크푸르트·베를린을 비롯해 독일의 다른 도시들도 뮌헨시의 움직임에 호응해 축구 경기장을 무지개색으로 장식하기로 했다.

23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유럽축구선수권 헝가리-독일전에 한 관객이 난입해 무지개 깃발을 흔들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축구장 외관 조명은 불허됐지만, 헝가리-독일전이 열린 알리안츠 아레나 축구장 내부는 무지개색 마스크와 깃발, 스티커로 치장한 관객들로 가득 찼다. 독일 대표팀 주장인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바이에른 뮌헨)은 무지개색 완장을 찬 채 경기에 나섰다. 경기에 앞서 헝가리 국가가 연주되는 순간에는 무지개 깃발을 든 관객이 경기장에 난입하기도 했다. 오르반 총리는 일정을 취소하고 이날 경기장을 찾지 않았다.

이날 경기는 독일과 헝가리의 2-2 무승부로 끝났다. 독일은 에프조 2위에 올라 16강에 진출했지만, 헝가리는 2무 1패에 그쳐 탈락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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