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해운사들은 업종 특성상 짬짜미 막 해도 된다?

김재섭 2021. 6. 24. 15:0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우리 협회는 1980년에 경제기획원으로부터 경쟁제한행위 등록증을 받았다."

이날 세미나는 해운업체 관계자들 뿐만 아니라 기자들까지 참석한 공개 행사였다.

결론은 해운업체들의 공동행위를 공정거래법으로 제재하는 것은 특별법인 해운법의 취지를 거스르는 것이자, 해운 업종의 특수성을 존중하는 국제 흐름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해운업체들이 현재 벌이고 있는 언론플레이, 정치인 앞세워 공정위 압박하기, 공개 행사를 열어 공정위 공격하기 같은 '장외투쟁' 행태는 낯설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3일 오후 한국해운협회·한국무역협회 공동 주관으로 대한상의에서 열린 ‘선화주 상생을 위한 합동 세미나’에서 김영무 해운협회 상근부회장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한국해운협회 제공

“우리 협회는 1980년에 경제기획원으로부터 경쟁제한행위 등록증을 받았다.”

지난 23일 대한상의에서 열린 한국해운협회·한국무역협회 공동 주최 ‘선화주 상생을 위한 합동 세미나에서 김영무 해운협회 상근부회장이 기조연설을 하며 밝힌 내용이다. 그는 “경쟁제한행위에는 운임 합의도 포함된다”고 설명하며 “법을 어기지 않았지만, 설령 어겼다 해도 공정위가 (공정거래법을 적용해) 과징금 제재를 하는 것은 해운법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다. 절차상 흠결이 있었다 해도 해운법에 따라 100만원 이하 과태료 부과 대상에 해당될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세미나는 해운업체 관계자들 뿐만 아니라 기자들까지 참석한 공개 행사였다. 김 부회장의 발언은 거침없이 이어졌다. “공정위 주장대로 수조원의 과징금이 부과된다면, 정부가 추진 중인 해운산업 재건 정책에 정면 배치된다. 외국과 외교 마찰 및 국내 선사에 대한 보복조처로 막대한 과징금 부과 등도 예상된다. 화주들로부터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우려될 뿐만 아니라, 우리 선사들은 국내외 정부로부터 부과받은 천문학적인 과징금 납부를 위해 선박을 매각할 우려도 있다.…. 외국 선사들이 우리나라 선사들과 공동행위를 기피하거나 국내 항만 기항을 꺼릴 수 있다.” 김 부회장은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선사가 잘못되면 나라가 망할 수 있다’고 나에게 말했다”고 하는 등 유력 정치인을 앞세우기까지 했다.

한국해운협회(당시는 한국선주협회)가 1980년 경제기획원으로부터 받았다는 ‘경쟁제한행위등록증’ 사본. 한국해운협회 제공

김 부회장의 연설 내용을 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부당한 공동행위를 한 것으로 조사된 국적 선사 12곳과 외국 선사 11곳 등 총 23개 업체를 제재하는 내용의 심사보고서를 지난달 초 해당 해운업체에 회람했다. 김 부회장은 “(해운사에 부과될) 과징금이 8천억원에 이르고, 같은 잣대로 한-일·한-중 항로까지 추사로 조사하면 과징금 액수가 1조5천억~2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란 전제 속에 이런 주장을 이어갔다.

이어 주제 발표에 나선 양창호 인천대 명예교수는 공정위 심사보고서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양 교수는 “심사보고서 내용을 요약하면, 과징금 부과 대상 국내외 해운업체들이 2003년부터 2017년까지 15년 동안 122차례 운임 인상·유지 합의를 했고, 다 합치면 시장점유율이 80~90%에 이르는 업체들이 인위적인 운임 인상·유지 행위로 경쟁제한이 발생했는데, 공동행위 가입·탈퇴 등 중대한 절차상 흠결로 해운법이 허용하는 필요최소한의 범위를 벗어나 부당 공동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라며 “한-동남아 항로 운임이 아시아 역내 항로의 수급에 영향을 받는 구조여서 실질적 경쟁제한이 불가능했고, 공정거래법 제58조의 취지를 잘못 해석해 해운법 대신 공정거래법을 적용했다.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론은 해운업체들의 공동행위를 공정거래법으로 제재하는 것은 특별법인 해운법의 취지를 거스르는 것이자, 해운 업종의 특수성을 존중하는 국제 흐름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사보고서 회람이란 공정위가 조사 결과와 제재 가능 범위 등을 전원회의 심의·의결 안건으로 올리기 전에 당사자들의 의견을 듣는 절차이다. 당연히 행위 내용과 업종 특수성 등을 둘러싼 법리 논쟁과 공방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는 당사자들이 근거를 앞세워 공정위의 제재 논리를 깨거나 조사 결과의 신빙성을 무너트리는 내용의 의견서를 내면 심사보고서 최종안에 반영되고, 전원회의 심결 과정에서 참작돼 제재 대상이나 과징금 액수가 조정된다. 심결 결과를 수긍 못하면 행정소송으로 대응하는 길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해운업체들이 현재 벌이고 있는 언론플레이, 정치인 앞세워 공정위 압박하기, 공개 행사를 열어 공정위 공격하기 같은 ‘장외투쟁’ 행태는 낯설다. 해운업체들의 공동행위를 조사하는 게 해운산업의 재건을 막는 것이고, ‘치외법권’을 인정해달라고 요구하는 듯한 발언 등은 일면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이에 일각에선 “반박 논리와 근거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위가 ‘정상참작’이나 ‘업종 특수성’을 이유로 물러설 자리도 사라진다. 압박·협박에 굴복당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도 더욱 촘촘하게 들여다볼 수밖에 없게 된다”는 조언도.

김재섭 선임기자 jskim@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