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커졌는데 망가진 내 삶'.. 독점 기업 향한 삐딱한 시선

김소연 2021. 6. 2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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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에서 아마존 노동자를 지지하는 시위대가 아마존 최대주주 중 하나인 피델리티 인베스트먼트 앞에서 아마존의 책임 있는 변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산타모니카=AFP 연합뉴스

''우리는 독점 기업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제목부터 일단 눈에 띈다. 이른바 '팡(FAANG)'이라 불리는 빅테크 기술 기업(페이스북·애플·아마존·넷플릭스·구글)을 겨눈 각국 정부의 반독점 칼날이 점점 매서워지는 현 상황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예상과 달리 미국 온라인 진보매체 아메리칸 프로스펙트의 편집장인 데이비드 데이옌의 시선은 정보기술(IT) 분야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가 제시한 미 독점 기업의 범위는 이보다 훨씬 넓었다. 항공·금융·통신·제약 등 주요 산업 분야의 독과점이 심각할 뿐 아니라 미국인은 맥주를 선택할 때조차 전 세계 500개 브랜드를 보유한 AB인베브나 몰슨 쿠어스 둘 중 한 곳의 맥주를 고르게 된다고 했다. 심지어 넘쳐나는 듯 보이는 데이트 애플리케이션(앱)도 시중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서비스를 한 회사가 소유하고 있다. 매치그룹의 포트폴리오에는 틴더·오케이큐피드·매치닷컴·힌지 등 40개 넘는 데이트 앱이 있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에는 독점 기업이 숨 쉬는 공기처럼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성공적인 혁신자가 독점적 이윤을 얻는 것을 당연시하는 독점 옹호론자들에게 반기를 든다.

저자는 우선 열악한 노동 환경을 독점 기업의 폐해로 꼽는다. 같은 산업 내에 경쟁자가 없다면 근로자의 재취업과 임금 상승은 제한된다는 이유에서다. 독점 기업은 근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공을 들일 필요도 없다.

대표적 예로 아마존 배송 기사 사례를 들었다. 아마존 미 사업장의 최저 시급은 미 연방정부 최저 임금의 2배인 15달러다. 문제는 수천 명의 배송 기사들이 아마존 유니폼을 입고 아마존 장비를 사용하지만 아마존 직원으로 분류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배송 서비스 파트너(DSPs)로 불리는 외부 하청 업체 직원들이다. 이들 하청 배송 기사들은 배송 일정을 맞추기 위해 페트병을 갖고 다니며 용변을 봤다고도 했다.

제품 품질 저하, 부와 소득의 불평등, 지역적 불균형, 정치 실패 등도 저자가 생각하는 독점 기업 시대의 초상이다. 경쟁 상품이 없는 독점 기업이 자사 상품 품질을 높일 이유가 없다고 봤다. 정치인을 쉽게 매수해 입법자와 규제자를 입맛대로 움직이는 것도 독점 기업의 특징이라는 주장이다.

저자는 이 같은 독점의 폐해를 추상적 명제가 아닌 직접 취재한 현실 사례를 통해 전하고자 했다. 일례로 정맥 주사용 주머니 독점 판매 기업이 생산지인 푸에르토리코의 허리케인 강타로 제품을 공수할 수 없게 되면서 암 환자가 제때 수액을 맞을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묘사된다. 구글과 페이스북이 디지털 광고 시장을 싹쓸이하면서 온라인 저널리즘은 황폐화됐다. 이 같은 현실은 경영이 어려워진 한 온라인 매체 기자의 해고 이야기를 통해 전한다. 독점 기업은 낮은 가격으로 경쟁 기업을 제거한 뒤 어느 순간 가격을 올리는 '약탈적 가격 전략'을 구사하는 것 외에도 개인의 삶에 다방면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다.


"독점의 힘에 무기력한 정부 일으킬 시민 행동 있어야"

우리는 독점 기업 시대에 살고 있다·데이비드 데이옌 지음·유강은 옮김·열린책들 발행·536쪽·2만5,000원

저자는 경쟁에 입각한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혁신의 씨앗을 뿌리고 생산성의 결실을 널리 퍼뜨린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이 같은 탄탄한 경쟁의 시대가 40년 넘게 중단됐고 소수의 기업이 경제 부문 대부분을 장악해 가고 있다고 본다.

그러면서 반독점의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보수적 법학자 로버트 보크를 언급한다. 보크는 1978년 소책자 '반독점법의 역설'에서 "우수한 품질과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를 만족시킨다면 독점 자체를 문제시할 이유가 없다"고 규정했다. 이에 저자는 "소비자 물가에 근거해 독점을 정의한 보크와 정반대의 일을 하고 싶었다"며 "독점 기업이 현대인의 삶을 어떻게 왜곡하는지 알고 싶었다"고 적었다.

저자가 이처럼 독점 기업의 갖가지 폐해와 다양한 학술 문헌을 동원해 주장하고 싶은 것은 결국 반독점 운동 제안이다. 독점 기업이 민주주의를 위협하지 않는지 주의 깊게 시장을 살펴보고 개개인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저자의 주장을, 기업 경쟁력과 국가 경쟁력을 연계해 생각하는 한국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또 저자가 언급한 거대 기업들의 여러 가지 병폐가 오로지 독점 때문에 발생했느냐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신과 상생을 어떻게 함께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화두를 묵직하게 던지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책이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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