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석면에 녹물까지..국공립어린이집서 원아들 수년째 방치

손연우 기자 2021. 6. 24.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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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 "구청에 도움 요청" vs 구청 "특별한 보고 없었다"
학부모들 "구청 관리 시설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격분
1층 조리실 식수 배관에서 나온 녹물 사진(왼쪽).2021.6.23 © 뉴스1 손연우 기자

(부산=뉴스1) 손연우 기자 = 부산 남구 소재 한 국공립어린이집 원생들이 수년째 1급 발암물질인 석면과 녹물에 노출된 채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어린이집 원장 A씨는 위탁받을 당시부터 적자 상태에서 운영해 왔기 때문에 구청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적절한 조치가 없었다는 입장이고, 남구청 측은 일차적인 운영의 책임은 원장인데다 특별한 보고가 없어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다는 입장이다.

뉴스1 취재 내용을 종합하면 현재 어린이집 1층 조리실 식수 배관에서는 녹물이 나와 임시로 필터를 끼워놓은 상태고, 2층은 보육실과 복도 등 천장 전체가 석면이다.

해당 어린이집에는 현재 92명의 영유아가 입소 중이지만, 이같은 환경이 수년째 지속됐기 때문에 졸업생까지 포함하면 피해 원아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4월 2일자 해당 어린이집 교사회의록과 업무보고서에 따르면 3년 전(2019년)부터 조리실 식수배관에서 녹물이 나온다는 차량기사의 주장이 있었고, 조리사는 주기적으로 아침이면 녹물이 조금씩 나왔는데, 최근 들어서는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해 원장에게 보고했다.

원장 A씨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패트병에 5~10분 정도의 간격으로 4차례에 걸쳐 녹물을 받고 사진을 찍어 4월 5일 구청에 보고했지만, 구청측은 점검조차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석면 문제는 더 삼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업무보고서를 확인한 결과 2층 보육실 5곳과 복도 등 231.35㎡규모의 천장 전체가 석면으로 덮혀 있었다.

석면은 세계보건기구(WHO)가 규정한 1급 발암물질이다. 장기간 노출되면 폐암 등 심각한 호흡기 질환을 유발할 수 있고, 석면 관련 질병 잠복기는 10~50년으로 알려졌다.

이에 지난 2009년부터 국내 석면 사용이 전면 금지됐고, 이후 유초등학교 등에서는 서둘러 해체작업을 진행했다. 현재 남구 소재 국공립어린이집 중 석면 건물로 지정된 곳은 이곳이 유일한 것으로 파악됐다.

2층 복도와 보육실의 석면 천장(어린이집 업무보고서 캡처) © 뉴스1 손연우 기자

원장 A씨는 "지난 2018년 어린이집 학부모가 석면 해체공사를 요구하는 민원을 구청에 넣었지만 진행되지 않았다"며 "기능보강비(건물개보수비용 지원비)를 구청에 신청하면 급한시설에 우선 지원해야 하고, 시급한 사안에 대해서는 긴급예산을 편성해야 되는데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그는 "5년 전 위탁받을 당시 전임 원장에 의해 평가인증이 취소돼 3년간 기능보강비(건물개보수비용 지원비) 신청을 할 수 없었다가 지난해 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위탁받은 후 5년간 단 한번도 기능보강비를 지원받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남구청측은 원장의 주장에 대해 정면 반박했다. 구청 담당자는 "녹물 건에 대해서는 현장 실사를 나가 상황을 파악하고 기능보강비 신청을 권했고, 원장은 2022년 지원금(기능보강비)이 나올 때까지 필터를 사용하는 등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며 "이후 별다른 보고가 없어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국공립어린이집의 경우 대표자는 관할 구청장이고, 원장을 주기적으로 채용, 위탁운영한다. 이와 관련 구청 담당자는 "어린이집 관리감독의 책임은 구청이 맞지만, 일차적인 운영 책임은 원장에게 있다. 운영이 어렵다고 해서 구청이 무조건 지원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고 강조하면서 "다만 이번 민원은 긴급한 사안이라고 판단해 조만간 공사는 진행할 계획이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기능보강비지원이 이뤄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기능보강비 지원 기관 선정 권한은 보건복지부에 있다"고 말했다.

석면 문제에 대해서는 "구청도 고민하고 있기 때문에 연말 전까지는 방향이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으며, 또 다른 담당자는 "해당 건물에 대한 검사를 진행했는데 검사 결과 일상 생활에 지장이 있는 수준은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고 덧붙였다.

현재까지 학부모들은 어린이집의 이같은 상황을 몰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은경 어린이집 운영위원장은 "23일에서야 원장을 통해 들었다. 구청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이해가 안된다"며 "부모들이 국공립어린이집을 보내려고 애쓰는 이유는 국공립어린이집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가 있기 때문 아니냐"고 격분했다.

그는 "23일 어린이집에 가서 환경을 둘러봤는데, 건물 곳곳에 누수 때문에 곰팡이도 있었고 외벽도 엉망이었다"며 "어린이집 운영이 힘들고, 행정 절차상 지원이 안되면 아이들은 방치돼야 하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어른들의 문제로 아이들이 위험에 노출된 채 지내는 상황에서, 국공립어린이집 수를 늘리기 전에 기존 어린이집 시설부터 돌아보고 관리해야 된다"고 지적했다.

syw5345@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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