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때녀', 어떻게 이 짧은 기간에 대세 스포츠예능이 되었나

김교석 칼럼니스트 2021. 6. 24.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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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스포츠 예능 '골때녀'가 사랑받는 이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SBS <골 때리는 그녀들>은 여러모로 가장 주목할 만한 신작 예능이다. 지난 설 명절 특집으로 제작한 파일럿이 무려 시청률 10%를 돌파하며 흥행에 대한 기대가 남다른데다 스포츠 예능 측면에서도, 여성 예능이란 측면에서도 무척 흥미로운 사례다. 스포츠예능은 MBC의 <아육대> 시리즈를 비롯해 JTBC의 인기 스포츠예능으로 자리 잡은 <뭉쳐야 찬다> 시리즈 등이 있지만 여성만으로 게다가 한 팀이 아니라 리그전을 치르는 정규 예능은 최초다. 성적도 나쁘지 않다. 6%의 시청률로 성공적으로 복귀전을 치른 후, 2회 시청률이 다소 하락하긴 했으나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수성하면서 수요일 예능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골때녀>는 이수근과 배성재의 해설진이 양념을 가미하는 중계 형태를 빌려와, 2002년 월드컵 스타들, 무한 리플레이, 감동과 웃음, 성장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친다는 볼거리 측면에서 전형적인 스포츠 예능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가장 매력적인 지점은 기존 스포츠팬들에게 예쁘게 보여주고, 이들이 얼마나 해당 종목, 그러니까 축구에 관심이 있고 좋아하는지 어필하는 과정을 과감히 생략했다는 거다. 물론, 최강팀인 FC불나방에서 실력이 가장 뒤처지는 송은영의 경우처럼 중간중간 개인 서사가 등장하고 인터뷰도 있지만 초점은 '여성'이 아니다.

스포츠 예능의 한계는 성장 서사를 따른다는 데 있다. 도전과 위기, 성취라는 사이클이 반복되는 구조인데 실력이 높아질수록 그 위기와 성취의 허들이 낮아지게 된다. 그러면 스포츠의 승부가 가진 생생한 긴장감, 승패에 걸린 짜릿함 또한 점점 둔화된다. <골때녀>는 4팀으로 토너먼트 리그를 구성했던 지난 파일럿보다 2팀 더 늘려 6팀으로 리그를 확장했다. 그러면서 오합지졸에서 하나의 팀으로 성장해나가는 스포츠 만화의 스토리라인보다는 승부에 초점을 맞춘다. 조별 예선을 포함한 토너먼트 특유의 단판 승부의 쫄깃함은 긴장감을 설득하는 작업을 생략한다. 캐릭터도 경기 내에서 만들어진다. 박선영은 물론, 원샷 원킬의 조커 조한나, 차미네이터 차수민 등 예능의 캐릭터쇼라기보다 스포츠 선수들의 캐릭터에 가깝다.

그렇다보니 <골때녀>의 수많은 출연자들은 여성이 아니라 그냥 '선수'로 주목받는다. 이들의 얼굴이나 인간미가 아니라 퍼포먼스에 집중하게 된다. 스포츠예능의 가장 큰 어려움은 설득이다. 이들의 도전에 왜 공감하고 이들의 성장과 승부에 왜 함께 몰입해야 하는지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가 없다. 우승이 걸려 있는 승부가 있고 승패가 걸린 게임이 있으니 나가서 뛰고 이겨야 하는 것뿐이다. 의미부여 과정을 걷어내고 승부에 집중하는 방식은 이른바 '여성 서사'를 기반으로 하는 여성 예능에서 거의 나타나지 않았던 새로운 접근이다. 그렇게 기존 스포츠 팬이라 상정할 수 있는 누군가에게 귀엽고 대견하게 보이고 싶은 모습을 걷어내면서 승부가 주는 재미에 집중할 수 있는 '서사'로 거듭났다. 그냥 축구를 하고, 잘하고, 이기고 싶은 담백함이 매력이다.

톱모델이자 방송인 한혜진이 30대의 마지막 골이 골 넣고 이기는 것이 되고, 방송분량은 도합 5분도 채 안 되는 카메라 밖에서 실제 경기의 몇 배 이상씩 시간을 내 훈련을 해 전술, 체력, 기술을 업그레이드시켰다. 감독으로 참여하는 2002년 월드컵스타들은 철저히 조연 역할에 머문다. 이들이 웃음을 책임질 필요도, 캐릭터를 드러낼 위치도 아니다. 촬영장에 들러서 감독 역할만 하는 게 아니라 각자 자신의 스쿨에서 실제로 프로그램을 짜서 트레이닝을 진행하는 게 훨씬 더 큰일이다. 방송에 나오는 게임을 위해 흘리는 땀과 노력, 100% 이벤트성 리그임에도 패배의 분함에 눈물을 흘릴 정도로 최선을 다한다는 점이 <골때녀>의 매력 포인트다.

그냥 승부 그대로의 승부. 기대를 상회하는 실력과 진지함. 그러면서 파일럿과 가장 크게 차이나는 부분이 관중석이다. 게임에 집중하다보니 파일럿에서 보여줬던 떼토크에서 오는 웃음은 거의 사라지고, 리액션만 남았다. 명언제조기로 인기가 많은 해설가 이영표는 처음으로 게임을 직관한 뒤 한마디 말로 <골때녀>가 가진 재미를 압축했다. "진지하게 하니까 재밌는 거예요."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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