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트로닉 만난 '흩어진 가락'..파격, 이것이 조선의 재즈다

선명수 기자 2021. 6. 24.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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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국립무용단이 4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산조> 중 1막 ‘중용’의 한 장면. 국립극장 제공


고수의 북 장단이 시작되고, 지름 6m의 육중한 바위가 무대 위 허공으로 내려온다. 담백하면서도 리드미컬한 장단에 맞춰 머리에 가채를 얹고 긴 비녀를 꽂은 무용수가 정제된 몸짓을 선보인다. 여백을 살린 단출한 무대가 한 폭의 그림 같다. 무대는 여성 무용수의 독무에서 군무로 이어진다. 산조 음악이 지닌 흩어짐과 모임의 미학이, 춤의 언어로 살아나는 순간이다. 국립무용단의 신작 <산조>의 1막, ‘중용’ 무대다.

국립무용단이 4년 만에 대형 신작 <산조>를 24일부터 사흘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선보인다. 다양한 장단과 가락이 모아지고 흩어지는 전통 기악양식 산조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 춤과 음악, 무대 미장센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흩을 산(散), 가락 조(調)를 뜻하는 이름 그대로 산조는 ‘흩어진 가락’ 또는 ‘허튼 가락’으로 풀이된다. 기본적인 장단과 조성을 바탕으로 연주자의 개성을 담은 즉흥적 표현을 중시해 서양의 재즈에 비견되기도 한다. 그런 산조가 가진 비대칭, 비정형의 아름다움을 전통과 현대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무대예술로 확장했다.

1막 ‘중용’이 비움의 미학, 절제미를 주제로 한국적인 몸짓을 담았다면, 2막 ‘극단’은 완전히 상반된 에너지를 보여준다. 일렉트로닉 선율의 강렬한 불협화음에 맞춰 무용수들이 박자를 자유자재로 표현하며 ‘극단’의 춤을 선보인다. 3막 ‘중도’에 이르러 춤과 음악은 불협과 화음 속에서 또 다른 규칙과 조화를 만들고,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간다. 전통에 현대적 감각을 입힌 춤을 선보여온 최진욱이 안무를 맡았고, 현대무용가 임진호가 협력 안무로 참여했다.

국립무용단의 신작 <산조> 중 2막 ‘극단’. 국립극장 제공
국립무용단의 신작 <산조> 중 3막 ‘중도’. 국립극장 제공


무용수들의 몸짓만큼이나 강렬한 것은 전통 산조를 재해석해 작품에 긴장감과 속도감을 더하는 일렉트로닉 음악이다. 대표작 <다크니스 품바>로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안무가이자 자신의 작품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음악을 만들어온 김재덕이 2막과 3막을 작곡했다. 신디사이저와 장고를 주악기로 사용한 2막은 굿거리로 시작해 휘모리로 몰아치며 극단의 정서를 표현하고, 아쟁 산조 명인 김영길의 연주를 바탕으로 만든 3막은 폭발적인 에너지를 분출한다. 정통 산조음악을 선보인 1막은 한국인 최초로 그래미상을 2번 수상한 황병준 프로듀서가 이선화(거문고), 김동원(장고)과 함께 거문고 산조를 녹음했다. 최근 리모델링으로 새 단장한 해오름극장의 ‘몰입형 입체 음향 시스템’이 듣는 즐거움을 더한다.

2013년부터 국립무용단과 여러 차례 호흡을 맞춰온 디자이너 정구호가 연출 및 무대·의상·영상 디자인을 맡았다. 전통의 무게감과 깊이를 표현하는 오브제인 대형 바위와 음악적 변화에 따라 움직이는 추상 조형물, 원형 LED로 간결하지만 세련된 미장센을 구현했다. 정구호 연출은 “한국무용은 반짝이는 원석이기에 보여주는 방식만 조금 달리 해도 극도로 모던할 수 있다”라며 “관객들이 전통과 현대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유영하는 춤의 원형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게 이번 작업의 목표”라고 밝혔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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