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디지털 복지, 뉴 패러다임 찾아라>韓, 정부역할 강한 국가중심적 네트워크 사회..'관계지향적 거버넌스'필요

최재규 기자 2021. 6. 2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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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下) 사회적 제도·실천

시장은 가상 플랫폼으로 이전

다양한 난제 유기적으로 연결

정부 정책만으론 해결 어려워

한국은 자국중심·중앙집권적

노사관계·국가복지 주도 여전

집단주의적 문화 토양도 한몫

한국사회 현실적 조건 감안한

국가중심 복지 네트워크 구축

디지털 기술 혁명이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사회복지 분야에서도 이 같은 기술 혁명으로 인해 생겨나는 문제들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진행돼왔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는 대부분 디지털 기술혁신이 초래한 현상에 대한 사후적인 반응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김수영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사회복지는 사회문제를 해결해 인간 욕구를 충족하는 사회적 제도와 실천을 뜻한다”며 “그렇기 때문에 사회복지제도의 실천에 앞서 사회문제가 발생하고 인간의 욕구가 규정되는 사회환경과 기반을 먼저 진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디지털 기술 혁명이 근본적으로 사회구조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파악해 선제적·종합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얘기다.

디지털 과학기술의 등장은 근대사회의 기반을 재구조화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은 시장을 가상공간의 플랫폼으로 이전시키고 있으며, 가상공간에서 활동하는 네티즌이 새로운 시민의 이미지가 됐다. 위계적 관료제를 특징으로 해온 정부는 수평적이고 유동적인 협력 네트워크를 지향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사회가 플랫폼화, 가상공간화, 네트워크화되는 발전과정에서 모든 영역이 연결되고 융합된 디지털 네트워크 사회의 구조가 형성돼 가고 있다.

김 교수는 이러한 디지털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복지국가와 같이 정부가 시장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문제를 강력한 행정력을 동원해 조정하는 전략이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고 봤다. 김 교수는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시장영역만이 아니라 전 영역에서 다양한 난제가 연쇄적으로 발생하며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면서 “따라서 유동하고 불확정적인 사회 구조상 특정 영역이 다른 영역을 관리하고 계획하는 방식으로 난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정부 정책의 힘에만 의존해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다만 모든 사회가 같은 방식으로 네트워크 사회를 구축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각 사회의 역사와 맥락에 따라 구축된 네트워크 사회의 형태는 조금씩 다를 수 있다. 김 교수는 한국의 디지털 혁명이 갖는 특징에 기반을 둔 사회복지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한국사회의 독자적 특징을 살펴야 한다고 봤다. 김 교수는 “한국사회의 네트워크 모형은 자국 중심적이고 중앙집중적이며, 글로벌화와 지역화가 혼재된 ‘글로컬’한 모형”이라고 설명했다. 디지털 시대의 한국사회는 모든 영역에서 정부의 역할이 다른 국가에 비해 여전히 강하다는 측면에서 ‘국가 중심적 네트워크 사회’라고 명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네트워크 시장영역을 살펴보면, 한국도 플랫폼 경제가 활성화돼 다양한 플랫폼 기업이 등장하고 있으며 플랫폼 노동자 역시 증가추세에 있다. 따라서 한국에서도 플랫폼 경제 내 노사관계가 고용관계로 성립할 수 있는지에 대한 법정 논쟁이나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서구나 제3세계와 달리 플랫폼 노동자들이 자국 기반의 플랫폼 기업에서 주로 활동하기 때문에 글로벌 플랫폼 경제에 대한 인식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국가경계를 넘어선 노사관계 역시 두드러진 문제로 등장하진 않고 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닫힌 네트워크인 한국사회에서는 플랫폼 경제의 노사관계에 대한 국민국가의 일정한 개입과 자국 기업과 노동자의 사회합의가 어느 정도 가능한 토양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네트워크 국가 측면에서도 한국은 여전히 국민국가의 영향력이 강하다. 서구에서는 시장경제의 세계화, 신자유주의의 부상, 초국가적인 연합체의 등장이 복지국가를 약화하는 요인들로 작용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에서 볼 수 있듯 이러한 글로벌 기류가 자국의 국가복지를 강화하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또한 한국의 전자정부는 세계적으로 선두를 자랑할 만큼 강력한 공공행정 시스템으로 발전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 국가의 사회통제에 대한 오랜 역사가 있으며,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어느 정도 용인하는 집단주의적 문화로 국민이 정부의 개인정보수집과 활용에 대해 상당한 수용성과 적응력을 보인다.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2020년 5월 발표한 개인정보공개 적절성에 대한 설문 조사를 보면, 코로나19 확진자의 상세한 동선 공개에 대해 적절하다고 보는 응답자가 90%를 넘고, 응답자의 77% 이상이 한국형 뉴딜 정책의 방침처럼 기업의 신기술과 의료보건 기술개발, 공공서비스 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개인정보 제공에 긍정적 의사를 밝혔다.

마지막으로 네트워크 시민사회의 특징을 살펴보면, 한국의 온라인공동체는 자국 중심의 특성을 보인다. 한국의 온라인공동체들은 한국어를 기반으로 내국인 중심 의사소통을 주로 하고 있어 가상성(virtuality)만이 아니라 그 자체로 지역성(locality)을 내재하고 있다. 그렇기에 온라인공동체의 활동이 오프라인 단체나 집회 결성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안드레아 발라토어(Andrea Ballatore) 런던대 교수팀의 ‘디지털 헤게모니 : 검색엔진 사용의 지역화 수준’ 연구에 따르면 세계 인터넷 검색 현황에서 미국에 URL을 둔 웹사이트를 60% 이상 검색하고 사용하는 국가가 53개국이 넘지만, 한국은 미국 기반 웹사이트 이용률이 10∼20% 미만으로 디지털 현지성(localness)이 가장 높은 국가에 속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김 교수는 “한국의 국가 중심적 네트워크 사회는 나름의 문제와 한계를 갖는다”며 “그러나 디지털 시대의 사회안전망을 마련하는 데 있어 각 사회가 가지고 있는 현실적 조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최재규 기자 jqnote9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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