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칭] 누군가가 떠오르네.. 할머니들 등 치는 양의 탈 쓴 후견인 최후는
법원 신뢰 업고 재산도 다 빼돌려
조폭보다 무서운 비열한 사기꾼 얘기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거든. 사자와 양. 난 양이 아니야. 빌어먹을 사자지.
지난 2월 개봉한 영화 ‘퍼펙트 케어(원제: I care a lot)는 기대에 못 미쳤던 흥행성적보다 훨씬 높은 평을 받는 수작이다. 전형적인 케이퍼 무비(caper movie·강탈 절도 과정을 다루는 영화)로 분류될 수 있지만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고, 디테일이 섬세하다. 연기파 배우인 로자먼드 파이크, 피터 딘클리지의 연기도 뛰어나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돋보이는 장점은 전형적인 선악구도가 없다는 점. 누가 선(善)이고, 누가 악(惡)인가? 세상은 모두 다 악인들로 이뤄져 있는 것 아닌가? 도대체 누구를 응원해야 할지 아리송한 설정이 스토리의 몰입도를 높인다.
◇자신을 ‘착한 양’으로 인식되게 하는 기술
퍼펙트 케어는 노인 요양원 시설을 운영하는 사회복지회사의 대표 말라 그레이슨(로자먼드 파이크)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선악(善惡)구조의 허망함을 파헤친다. 말라는 외형적으로는 누가 봐도 훌륭한 복지사업을 벌이는 성공적이고도 도덕적인 CEO다. 법원의 전폭적인 신뢰까지 등에 업고 있다. 그러나 이 공권력의 힘을 활용해 자신의 사익을, 합법을 가장한 비열한 방법으로 챙기는 고도의 사기꾼이다.
세상엔 양과 사자, 이 두 종류의 사람이 있고, 자신은 양이 아니라 사자라고 외치는 게 말라의 본질을 드러내 주는 대사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양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기술이 그에게 힘과 부(富), 명예까지 안겨다 주는 비기(秘技)인 셈이다.
말라는 혼자 생활하기 어려운 노인들을 요양원에 보내 ‘케어’하면서, 생활 전반과 재산 문제까지 책임지고 돌보는 ‘법정 후견인’이다. 사회복지 사업을 대부분 민간에 위탁하는 미국 사회에서 존경받을 수 있는 사업가다. 그러나 본색은 정반대다. 노인들의 주치의들과 짜고 변변한 가족이 없거나 가족들과의 관계를 단절시킬 수 있는 노인들, 결정적으로 재산이 많은 노인들을 물색한다. 주치의들을 매수해 노인들이 더 이상 혼자 생활할 수 없다는 엉터리 진단서를 발급 받은 후, 법원에서 법정 후견인 자격을 따낸다.
법정 후견인으로 지정된 후엔 약탈자의 본색을 서슴없이 드러낸다. 노인들을 요양원에 사실상 감금시키고, 노인들이 가진 재산을 차근차근 처분한다. 그가 내놓은 고급 주택 매물이 수십 건에 달할 정도다. 노인들이 사설 금고에 보관해 놓은 귀중품도 모두 말라의 차지가 된다.
말라는 사자이지만 양의 탈을 쓰고, 약탈자이지만 누구보다 선한 모습으로 인식되기에 대응하는 게 쉽지 않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강도 혹은 조폭에게 당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고통스러울 수 있다. 법원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고 있는 사기꾼을 법적인 도움을 받아 응징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말라 일당의 마수에 빠져들면 신체의 자유는 물론 말문까지 막혀 버린 채 생을 마감해야 한다.
말라가 자신과는 전혀 다른 외연을 가졌지만 본질적으로는 똑 같은 약탈자를 만나게 되면서 영화는 복잡한 난전(亂戰)으로 빠져든다. 외형부터 진짜 사자인 마피아 두목 로만 룬요프(피터 딘클리지)와 치열한 대결을 벌이게 되는 것이다.
양의 탈을 쓴 사자와 암약하는 사자떼(마피아)와의 대결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어느 한쪽으로 힘의 균형추가 급격히 쏠릴 듯 하지만 어느 순간 다시 역전되고 또 뒤집힌다. 이게 이 영화의 매력이다.
◇이용수 할머니가 오랫동안 참았다가 토로했던 말들은···
이제 영화 줄거리를 더 쓰면 스포일러가 될 것이다. 다만, 이 영화를 보면서 전혀 엉뚱해 보이는 우리나라의 한 사건이 떠올랐다. 일제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오랫동안 참았다가 토로했던 말들이다. 우리는 선악의 도식적인 이분법에 빠져 선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의 말과 행동만 무턱대고 찬양했던 건 아닐까. 그런 도식 속에서 할머니는 많이 괴로웠고, 벽에 막힌 듯 저항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극 중 말라의 ‘케어'를 받는 노인들처럼.
2014년에 개봉한 영화 ‘나를 찾아줘’에서 완벽한 소시오패스 아내 역을 소화했던 로자먼드 파이크는 복귀작인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올해 78회 골든 글로브 뮤지컬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HBO시리즈 ‘왕좌의 게임’에서 라니스터 가문의 적자 아닌 적자로 살던 티리온 역을 맡아 우리에게 친숙한 피터 딘클리지의 표정 연기도 압권이다. 왜 마피아의 보스 역을 키 135cm의 배우에게 맡겼을까. 이 세상의 악인의 실체는 어떤 사람들일까. 곰곰 생각해 보게 만드는 또 하나의 질문거리다.
개요 범죄 스릴러 l 미국 l 2020년 l 1시간 58분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특징 양의 탈 쓴 악당 vs 그냥 악당의 대결, 왜 우리 사건이 떠오를까.
평점 로튼토마토🍅97% IMDb⭐6.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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