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디스코 바지를 디스코 출 때 입으면 안 되는 이유

신동헌 칼럼니스트 2021. 6. 2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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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헌 칼럼리스트

디스코바지가 다시 유행한다. 허리춤에 주름이 한 개, 혹은 두 개 잡혀 복부가 넉넉하고 아래로 갈수록 좁아지는 이 바지는 최근 정장과 스트리트 패션을 막론하고 다양한 소재와 형태로 등장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한때는 아재패션의 상징과도 같았지만 밑단을 짧게 걷어 입고 거대하고 기묘한 모양의 어글리 스니커즈를 신으면 월드클래스 패션피플이다.

그런데 국어사전에도 등재된 이 디스코바지를 입고 월드클래스가 되려면 넘어야 할 난관이 하나 있다. 외국에서는 이 바지를 디스코바지라고 하면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디스코바지(Disco Pants)란 말은 영어에도 존재하는데 이 바지를 뜻하는 말이 아니다. 디스코바지라고 하면 외국에서는 번쩍거리는 광택 소재로 만들어진 몸에 딱 달라붙는 바지를 의미한다. 복부는 절대 여유가 있으면 안 되고 엉덩이까지 딱 달라붙어야 하며 아래로 갈수록 좁아지는 게 아니라 넓어져야 한다.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에서 존 트라볼타가 입은 게 바로 디스코바지다.

모양만 다른 게 아니다. 디스코는 알다시피 1970년대 후반 전세계를 강타한 음악이다. 번쩍이는 조명을 반사하는 소재의 의상과 끊기는 듯 흥겨운 베이스 라인을 타고 흐르는 비지스, 아바, 빌리지피플의 노래에 전세계 젊은이가 열광했다. 딱 달라붙어 몸매를 드러내는 유행은 1980년대까지도 이어졌고 딱 달라붙는 가죽바지로 대표되는 1980년대 록음악 열풍도 그 연장선에 있다.

반면 우리가 디스코바지라고 부르는 형태의 바지는 디스코가 사라진 1990년대가 돼서야 유행하기 시작한다. 미국에서는 '해머팬츠'로도 불리는데 래퍼 MC해머가 즐겨 입었기 때문이다.

이 바지는 래퍼들이 딱 달라붙는 '디스코바지-워시드진'으로 대표되는 주류문화에 대한 안티테제로 여기며 즐겨입었다. 사실 이런 펑퍼짐한 바지가 주류에 반대하는 역할을 맡은 것은 1990년대가 처음은 아니다. 16세기 유럽에서는 펑퍼짐한 바지가 부자들의 옷으로 애용됐는데 전계층으로 유행이 퍼져나가자 귀족들은 반대로 '퀼로트'로 불리는 딱 달라붙는 반바지를 입기 시작했다. 그러다 18세기에는 프랑스 혁명을 일으킨 이들이 귀족들의 딱 달라붙는 바지에 저항하는 의미로 펑퍼짐한 바지를 입기 시작했다. 당시 급진적인 혁명을 추구하며 프랑스 혁명의 주축이 된 이들을 '상퀼로트'라고 불렀는데 이는 '퀼로트를 입지 않은 사람'이라는 의미였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의미가 바뀌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디스코에 저항하기 위해 입던 바지를 디스코바지라고 부르는 건 여전히 좀 꺼림칙하다. 아마 2030세대에게 '기득권 세력'으로 불리는 586 세대의 심정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586세대가 기득권으로 여긴 보수세력과 지금 2030세대가 기득권으로 여기는 586세대가 기득한 것이 다르듯 '펑퍼짐한 바지'도 시대가 바뀜에 따라 모양과 형태가 달라졌다. 1980년대에 입던 배바지와 1990년대 래퍼들이 입던 바지가 다른 것처럼 유행이 돌아왔다고 해서 예전에 입던 옷을 그대로 꺼내 입는 것은 금물이다. 패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브랜드도 소재도 가격도 아니라 실루엣을 결정하는 핏과 행동을 결정하는 태도(Attitude)다. 요즘 래퍼들은 펑퍼짐한 바지 대신 1980년대 로커처럼 가죽재킷과 딱 달라붙는 스키니를 입지만 누구도 로커와 래퍼를 혼동하지는 않는 것도 핏과 애티튜드가 다르기 때문이다.

18세기 귀족과 혁명계급이 바지만 바꿔 입으면 신분과 사상이 달라지는 게 아니었듯이 가죽재킷과 금목걸이를 두르고 스키니를 입는다고 20대 래퍼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가죽재킷을 어떻게 입고 어떤 사이즈로 입는지, 걸음걸이를 어떻게 하고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어우러져야 핫한 래퍼냐, 불만 가득한 로커냐, 겉모습만 흉내낸 따라쟁이냐를 구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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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헌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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