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취] 탐사 보도로 최고 권력자 퇴진 이끈 '知의 거인'
일본에서 살아있는 권력을 끌어내린 탐사 보도의 상징이자 ‘지(知)의 거인’으로 통하던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81)가 급성 관상동맥증후군으로 지난 4월 30일 숨졌다고 일본 언론들이 23일 보도했다. 국내에서도 그가 쓴 책 ‘도쿄대생은 왜 바보가 되었는가’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 등이 베스트셀러가 되며 이름이 알려졌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1940년 일본 나가사키현에서 태어났다. 두 살 때 아버지를 따라 중국 베이징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일본 패전을 경험했다. 이때 온 가족이 일본 야마구치로 돌아가는 ‘인양선’에 타기 위해 화물열차와 트럭을 타고 천진항까지 이동한 것이 자신의 일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평소 이야기해왔다. ‘내일 어디로 가게 될지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라는 생각이 다양한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방랑으로 이어졌고, 그게 다양한 저서로 표출됐다는 것이다.
도쿄대 불문과를 졸업한 다치바나는 1964년 ‘문예춘추’ 기자로 입사한다. 하지만 평소 관심이 없던 프로야구 취재를 맡게 되자 퇴사하고, 다시 도쿄대 철학과에 재입학했다. 이후 대학을 다니면서 잡지 등에 르포 기사와 평론 등을 기고하는 자유기고가가 됐다. 그의 이름을 일본 전역에 알린 건 1974년 문예춘추에 기고한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그 금맥과 인맥’이라는 기사다. 이른바 ‘흙수저’ 출신인 다나카 가쿠에이 당시 총리가 어떻게 기업 뇌물로 큰돈을 모으고, 이를 활용해 일본 정계를 주물렀는지 구체적으로 파헤친 기사다. 그는 이 보도를 위해 다나카 전 총리의 주변 인맥을 샅샅이 훑는 한편 등기부와 정치 자금 수지 보고서, 그에 대한 크고 작은 기사를 일일이 수집하며 데이터를 축적했다. 해당 보도를 통해 일본 전후 최대 정치 스캔들로 불리는 ‘록히드 사건’이 세간에 드러났고, 다나카 전 총리의 퇴진으로 이어졌다. 이 보도는 지금도 일본에선 ‘탐사보도의 선구’라는 평을 받는다.
이후에도 깊은 취재를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100권 넘는 저서를 발표했다. 특히 ‘록히드 재판 방청기’, ‘일본 공산당 연구’ 등 일본 정치·사회를 다루는 책을 주로 내다 1980년대부터 과학으로 시선을 돌렸다. 우주비행사에게 우주 체험의 의미를 물은 ‘우주로부터의 귀환’, 삶과 죽음의 의미를 묻는 ‘뇌사’ ‘임사체험’ 등의 저서를 발표했다. 한국에도 20권 넘는 그의 책이 번역됐다.
1995년부턴 도쿄대 강단에 서서 후학 양성에 힘썼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고양이 빌딩’으로 유명해지기도 했다. 엄청난 다독가인 그는 자신이 가진 장서 10만권을 보관하기 위한 빌딩을 도쿄도 분쿄구에 만들면서 벽에 자신이 좋아하는 고양이 그림을 크게 그려 넣었다. 평소 그는 “관심이 있는 분야라면 관련 책을 최소 10권은 읽어야 한다”고 이야기해왔다.
2007년 방광암으로 한 차례 수술을 받았던 그는 저서를 통해 죽음에 대한 생각을 여러 차례 밝히기도 했다. 때가 되면 스스로 무리를 떠나 조용히 상아의 탑으로 떠나는 밀림의 코끼리처럼 죽고 싶다거나, 장례식에도, 무덤에도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죽음은 두렵지 않다')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그의 뜻대로 장례식은 수목장으로 치러졌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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