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부동산에 드리운 정치망령

김기동 2021. 6. 23.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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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회 대책에도 집값 요지부동
시장 외면하고 '표심'만 의식
'주택공급' 무시한 대가 혹독
세금규제 대신 방향 제시해야

요즘 지인들과 만남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골 대화 메뉴는 ‘아파트’ ‘주식’ ‘비트코인’이다. 부동산과 관련해선 이런 우스갯소리도 있다. “서울 집값은 오늘이 가장 싸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지금이 가장 빠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대한 불신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부동산은 주식과 함께 ‘벼락거지’ ‘영끌(영혼을 끌어모아)투자’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25차례 각종 대책에도 집값은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정부를 비웃기라도 하듯 연일 고공비행 중이다. 원인은 자명하다.

“(4·7재보선)서울에서 큰 표 차이로 지고 과연 대선을 이길 수 있느냐는, 정당으로서의 현실적인 고려를 안 할 수 없었다.”
김기동 논설위원
더불어민주당 김진표 부동산특별위원장이 얼마 전 종합부동산세 완화를 채택한 배경을 설명하면서 한 말이다. 그는 “보궐선거에서 서울에서만 89만표 차이가 났다. 내년 대선은 표 차이가 50만표를 넘지 않으리라는 전문가 예측이 많다”고 했다. 선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걸 자인했다.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 그는 ‘부동산은 끝났다’라는 책에서 “집을 가지면 보수에 표를 찍고, 집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진보에 표를 찍는다”고 썼다. 모두 집값을 잡겠다는 것보다는 선거에서 이기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부동산을 ‘정치’로 보고 있다는 반증이지만 ‘만시지탄’이다.

4·7재보선 패배 이후 집권여당은 종부세·양도세를 개편하겠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2개월 만에 나온 결론은 고작 종부세 ‘상위 2%’ 부과다. 급조한 티가 역력하다. 조세법률주의에 어긋나는 데다 매년 누가 부과대상이 될지 알 수 없다. 해마다 부자 편가르기 한다는 비난만 자초할 게 뻔하다. 논의 과정에서 부자감세 논란이 컸다고 한다.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똑바로 하라고 했다. 종부세는 노무현정부가 ‘상위 1%’ 부유층을 겨냥해 도입한 제도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조사 결과 문재인정부 초기인 2017년 6억2000만원이던 서울의 30평 아파트값이 올해 5월에는 11억9000만원으로 5억7000만원 뛴 것으로 나타났다. 공시가격 상승으로 올해 전국 종부세 대상이 52만3983가구(3.7%)로 늘었다. 서울만 보면 9억원 초과 아파트가 24.2%. 향후 5∼10년간 공시가격을 시세의 90%로 높이면 대상 주택은 더 늘어난다. 이쯤 되면 ‘부유세’가 아닌 ‘중산층세’나 다름없는데도 생색내기에 그쳤다.

무주택자의 주거 안정을 내세운 임대차3법은 집주인의 실거주가 늘면서 매물 잠김을 부추겼다. 전세의 월세 전환도 가속화하는 모양새다. 조세의 전가 현상이다. 여기에 103주 연속 상승한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또다시 매매가격을 끌어올린다. 역대 정권 집값 상승액 1위라는 오명과 ‘벼락거지’를 양산했다. 악순환이다. 전문가들의 경고도 무시하고 ‘집은 충분하다’며 공급정책을 외면한 대가를 혹독히 치르고 있다.

부동산 세제를 누더기로 만든 것도 모자라, 서민들의 대출까지 막아 ‘내집 마련 사다리’까지 끊어버렸다. 조국 전 법무장관의 이른바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가 오버랩된다. 그는 예전에 트위터에 “모두가 용이 될 필요는 없다. 개천에서 가재, 붕어, 개구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개구리가 개천을 박차고 나갈 길을 사전에 막아버린 것일까.

부동산은 ‘경제재’다. 생물(生物)이라고 부르는 이도 많다. 수요자의 심리와 수요·공급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쉽게 예측이 어렵다는 얘기다. 거래 과정에서 불법·위법을 가려내는 건 정부가 할 일이다. 일정 부분 규제가 필요하겠지만 ‘전가의 보도’처럼 남발해선 안 된다. 시장이 제대로 굴러가도록 방향을 제시하는 선을 넘어 인위적으로 가격에 개입해서는 백전백패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도 “세금으로는 집값이 안 잡힌다”고 자인했다. 시장은 심리다. 뒤늦게 내놓은 ‘2·4대책’ 역시 ‘공공주택=내편챙기기’라는 정치공학적 접근뿐이다. 정치에는 임기가 있지만 국민은 ‘집’이라는 울타리에서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 부동산에 짙게 드리운 정치망령을 걷어내야 한다.

김기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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