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 고어"기후 대응 운동 계속돼 미래 희망적..비즈니스 리더들 수익성 이미 자각" [경향포럼]
[경향신문]
무대 스크린이 갑자기 암흑으로 뒤덮였다. 푸르스름한 가냘픈 빛이 암막을 좌우로 가르며 곡선을 그렸다.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사진)은 이 배경 앞에 서 23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1 경향포럼’의 화상 기조연설을 시작했다.
“달에서 찍은 지구의 모습입니다.” 고어 전 부통령이 설명했다. 가느다란 빛살은 우주에서 본 지구 대기권의 모습이다. 고어 전 부통령은 “대기는 얇은 막에 불과하다. 수천년 동안 존재해 온 이 얇은 막 안쪽에는 매일 원자폭탄 60만개가 터진 만큼의 열에너지가 쌓이고 있다”고 말했다.
‘기후변화 전도사’. 20년 가까이 고어 전 부통령을 따라다니는 별명이다. 2006년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로 지구온난화를 고발했던 그는 기후변화가 불러온 재앙들을 열거했다. “지난 30년간 여름은 길어지고 겨울은 짧아지는 변화가 있었다. 몬순 시기의 물폭탄으로 인명 손실과 경제적 피해가 막심하다. 특히 인도 등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일부 국가에서는 전쟁보다 더 많은 손실이 이어지고 있다.”
고어 전 부통령은 “미국은 1000년 만에 찾아온 혹서기를 겪고 있다. 지난해 기록적인 산불로 대기오염이 증가했고, 허리케인 시즌 전인데도 대서양 연안에 허리케인이 강타했다”고 말했다. 이어 “대자연이 더 이상의 지체는 불가능하다고 명백히 경고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미래를 희망적으로 바라봤다. 그는 “세계 환경론자들의 적극적 움직임을 통한 기후운동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며 “열정적인 액티비즘으로 인해 민간 분야도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눈에 띄는 변화는 비즈니스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다. 고어 전 부통령은 “비즈니스 리더들과 투자자들은 이것이 전례없는 수익 기회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며 “풍력에너지와 배터리 가격은 점차 떨어지고 있고 효율도 개선되고 있어 지속 가능한 경제의 가능성이 열리게 돼 있다”고 말했다. 재생에너지가 석탄·석유보다 더 저렴한 발전원으로 자리매김하는 시대가 곧 열린다는 뜻이다. 정부의 역할로만 여겨졌던 기후변화 대응은 관련 시장의 가능성이 열리면서 주도권이 민간으로 넘어가고 있다.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의 “2030년까지 탄소 네거티브를 실현하겠다”는 목표가 대표적인 사례다. 배출되는 탄소보다 더 많은 양을 제거해 ‘마이너스’를 달성하겠다는 뜻이다. 고어 전 부통령은 “소비자들이 대기업을 압박하고 있다”며 “미래에는 점차 현금흐름이 화석연료에서 회수돼 지속 가능 경제에 기여하는 기업에 투자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어 전 부통령은 “정부도 민간 주도에 따라가기만 하면 안 된다”며 “코로나19 대응에서 엄청난 노력과 세계적 협력이 있었는데 동일한 노력이 기후위기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도 매우 중요한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고어 전 부통령은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이 기후정상회의에서 신규 해외 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한 금융지원을 끊겠다고 선언한 것을 “탈탄소에 매우 중요한 족적을 남기는 선언”이라고 평가했다.
고어 전 부통령은 “우리는 위기를 타개할 솔루션을 이미 갖고 있다”며 “미래 역사학자들이 이 시기를 ‘인류 문명에서 가장 큰 터닝포인트였다’라고 평가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상범 기자 ksb123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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