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더 맞고 나오세요" 이혼소송 중 가정폭력 피해자가 들은 말

임재우 2021. 6. 23.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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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가 이혼소송 경험자들로부터 접수한 사례 일부 내용이다.

여성의전화는 이혼소송 경험자(297명) 설문조사, 이혼소송 경험이 있는 가정폭력 피해자(4명) 심층 면접조사 결과를 지난 11일 '이혼소송 과정에서의 인권침해 방지를 위한 토론회'에서 공개했다.

이를 위해 △판사·가사조사관·조정위원 등에 대한 여성폭력예방 교육 및 2차 피해 방지 지침 마련 △가정폭력 피해자 이혼소송의 경우 가사 조사 제외 △가정폭력 가해자가 신청한 자녀 면접교섭 사전처분 제외 등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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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가정폭력 이혼소송 경험자 실태조사
지난 2018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국가의 가정폭력 대응 강력 규탄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가정폭력 강력 대응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부부상담 10회 진행 권고합니다. 부부상담을 진행하지 않으면 원칙대로 적용해서 이혼소송이 언제 끝날지 모릅니다. 이혼소송이 아주 오래 걸린다는 것만 아시면 됩니다.”(가정폭력 피해자 이혼소송 재판 중 판사의 말)
“저렇게 반성하고, 다시 때리지 않겠다고 하는데, 적당히 한 번쯤 기회를 더 주지, 여자가 적당히 봐주는 맛이 있어야지…. 그렇게 빡빡하게 구니 때릴 수밖에.” “그렇게 가정폭력으로 이혼하고 싶으면, 지금은 증거가 약하니, 한 번 더 집에 들어가서 맞고 나오세요. 그러면 증거가 명확해지고, 이혼이 쉽겠네요.”(이혼 조정 절차에서 조정위원들이 한 말)

전국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협의회가 이혼소송 경험자들로부터 접수한 사례 일부 내용이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이런 내용을 포함해 이혼소송 경험자(297명) 설문조사, 이혼소송 경험이 있는 가정폭력 피해자(4명) 심층 면접조사 결과를 지난 11일 ‘이혼소송 과정에서의 인권침해 방지를 위한 토론회’에서 공개했다.

가사소송법의 조정전치주의에 따라 이혼소송은 반드시 조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 부부 중 한쪽이 이혼소송을 제기하면 ‘가사 조사’를 진행하는데, 이때 법원공무원인 가사조사관은 혼인생활 중 있었던 일과 이혼에 이르게 된 경위 등을 조사하고 이를 보고서로 정리해 조정위원회에 회부한다. 법관과 2명 이상의 조정위원으로 구성된 조정위원회는 가사조사관 보고서를 토대로 조정을 하고, 조정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강제조정을 하거나 재판에 넘기게 된다.

문제는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가사 조사와 조정위원회, 재판 등을 거치며 조사관·조정위원·판사 등에 의해 2차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혼소송 경험자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가사 조사 중 가장 어려웠던 점으로 “배우자와의 대면조사 강요”(37.2%), “가사조사관의 편파적 태도나 편견”(31.9%)을 꼽았다.

심층 면접조사에 응한 피해자들은 법원 관계자들로부터 겪은 2차 피해를 토로했다. ㄱ씨는 상습적인 가정폭력으로 이혼을 결심한 상황인데도 가사조사관에게 “이렇게 남편이 좋아하시는데 그래도 이혼을 하셔야겠냐”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ㄴ씨는 조정위원으로부터 “남자가 가장 쉽게 유책 사유로 될만한 게 가정폭력 아니냐”며 ㄴ씨가 당한 폭력 피해가 거짓은 아닌지 추궁당해야 했다.

여성의전화는 이혼소송 과정에서 상대방과 대면하도록 하는 것 자체가 당사자에게는 고통이라고 말한다. 부부 상담을 한 응답자 절반 이상(54.2%)은 “배우자의 일방적인 주장과 비난을 듣는 것”을 어려움으로 꼽았다. 특히 가정폭력 피해자나 자녀 입장에서 가해자인 상대방과 마주하게 된다는 경험 자체가 폭력의 재경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가사 조사나 조정, 재판, 자녀 사전 면접조사 과정에서 가정폭력 피해자는 별다른 보호를 받지 못한 채 가해자와 여러 번 대면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가사 조사 때 분리 조사를 신청할 수 있지만, 절차 효율성 등을 이유로 삼자대면을 강요받기도 한다. ㄱ씨는 가사조사관으로부터 “삼자대면을 하지 않으면 재판이 길어진다”며 대면조사를 권유받았다고 했다. ㄴ씨는 배우자 폭력을 피해 아이와 함께 집을 나와 이혼소송을 하던 중 아이를 만나고 싶다는 남편의 신청(자녀 면접교섭 사전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법원으로부터 ‘함께 1박2일 여행을 다녀오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여성의전화는 “(법원이) ‘자녀는 양쪽 부모가 다 있어야 한다’는 정상가족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고 있어서 폭력 가해자이지만 아버지라는 이유로 자녀와의 강제적 만남을 강요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했다.

여성의전화는 가정폭력 피해자가 이혼 성립까지 통상 1년 이상을 상대방과 씨름해야 하는 만큼 이 과정에서 2차 피해나 가해자와의 대면을 피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판사·가사조사관·조정위원 등에 대한 여성폭력예방 교육 및 2차 피해 방지 지침 마련 △가정폭력 피해자 이혼소송의 경우 가사 조사 제외 △가정폭력 가해자가 신청한 자녀 면접교섭 사전처분 제외 등을 제안했다. 여성의전화 부설 쉼터 ‘오래뜰’의 신상희 정책팀장은 “정상가족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이 한국 이혼 정책과 제도에 그대로 녹아있다. 이혼소송을 경험하는 가정폭력 피해자들은 그 과정에서 각종 인권침해를 당한다. 변화하는 가족 형태에 맞는 인식 변화와 함께 이에 맞는 가족 정책 수립도 병행되어야 한다”고 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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