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 작가 이영수 개인전 봄을 위해 희생하는 단풍 풀잎에 맺힌 물방울 등 찰나의 탐미적 예술 추구
`자연 이미지(Late autumn)`. [사진 제공 = 선화랑]
2019년 늦가을 비에 젖은 낙엽이 눈에 들어왔다. 이영수 작가는 오래된 아파트 단지에 양탄자처럼 쌓여 있는 노란 은행잎에서 숭고한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나무의 겨울나기를 위해 희생됐지만 봄이 되면 새 잎이 나올 것이라는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
서울 선화랑 개인전에서 만난 작가는 "누군가는 낙엽이 쓸쓸하다고 했지만 내 눈에는 화려한 열정이 보이더라"며 "인류 역사보다 더 오래된 은행나무는 음식과 약재, 고급 가구 재목 등으로 쓰여 버릴 게 없다"고 말했다. 그가 은행잎이 얼마나 눈부시게 아름다운지 보여주는 신작 '자연 이미지(Wealthy)'를 들고 나왔다. 가로 3m가 넘는 대작으로 전시장 벽면을 샛노랗게 채운다. 그 자태가 너무 풍요로워 제목으로 영어 단어 'Wealthy'를 선택했다. 또 다른 신작 '자연 이미지(Late autumn)' 역시 비에 젖은 낙엽을 그렸다. 손을 대면 물기가 느껴질 것처럼 생동감이 넘친다. 작은 물방울도 곳곳에 맺혀 있다.
이영수 작가
영롱하고 큰 물방울은 그가 20여 년 천착해온 소재다. 금방이라도 뚝 떨어질 것 같은 물방울은 거울처럼 주변 풍경을 비춘다. 유년시절 아버지가 집 정원에 물을 준 후 풀잎에 맺힌 물방울이 오래 기억에 남아서 그리기 시작했다.
작가는 "햇빛에 보석처럼 빛나는 물방울을 그리면서 어릴 적 순수를 떠올린다"며 "깨끗한 물방울을 본 사람들이 순수하고 착해져 사회가 정화됐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강조했다. 유년시절 집 정원 연못가에 피던 양귀비도 작가가 오랫동안 붓질해온 소재다. 여린 꽃잎과 가는 줄기가 미풍에도 살랑거리지만 쉽게 꺾이지 않아 '외유내강(外柔內剛)'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이번에 전시된 양귀비꽃 색깔은 파스텔톤으로 예전보다 더 옅어지고 아련해졌다.
이영수 Windy day(Poppy garden). [사진 제공 = 선화랑]
작가는 "실크처럼 부드럽고 야들야들한 꽃이 피는 찰나의 미(美)를 화면에 영원히 남기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꽃이 피거나 낙엽이 떨어지거나 물방울이 맺히는 순간을 '절대미감' '탐미적 예술'로 표현했다.
이영수 자연 이미지(Wealthy). [사진 제공 = 선화랑]
이전 작보다 배경을 흐릿하고 몽환적으로 처리해 주인공인 꽃과 물방울을 더욱 강조한 게 특징이다. 주변 풍경을 오롯이 담아내는 볼록거울 역할을 하는 물방울 묘사는 전작보다 더욱 치밀해지고 밀도도 높아졌다. 이번 전시 서문을 쓴 미술평론가 윤진섭은 "커다란 풀잎 위에 놓인 단 하나의 물방울이 관객의 시선을 끄는 가운데 주변의 녹색을 약간 흐릿하게 설정한 것은 결과적으로 이 그림을 여타의 극사실주의와 차별화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목가적인 풍경도 아니고 극사실화도 아닌 '제3의 영역'에 안착시킨다"고 평했다. 전시는 오는 7월 6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