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의 아동학대 영상 공개,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한겨레 2021. 6. 23.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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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이아무개 부부의 무차별한 폭행과 물고문으로 10살 조카가 사망에 이른 사건이 다시 한번 대중의 분노를 사고 있다.

미디어를 통해 아동학대 영상을 불특정 아동들이 보게 된다면 이는 아이들을 또다른 '정서적 학대'에 노출시키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물론, 미디어가 영상을 노출한 이유는 아동학대의 심각성을 널리 알리고, 가해자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촉구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미디어의 아동학대 영상 공개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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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비극’]

[왜냐면] 박정순ㅣ굿네이버스 사업운영본부장

지난 2월 이아무개 부부의 무차별한 폭행과 물고문으로 10살 조카가 사망에 이른 사건이 다시 한번 대중의 분노를 사고 있다. 지난 8일 법정에서 공개된 학대 영상이 언론을 통해 적나라하게 노출된 것이다. 영상에서 본 아동의 모습은 너무나 처참했다. 온몸에 멍이 든 채 고통스러워하고 있었고, 차마 말로 표현하기 힘든 끔찍한 학대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미디어에 영상이 노출되자마자 가해자들을 향한 공분과 함께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촉구하는 국민 여론이 들끓었다. 그러나 아동학대 영상이 미디어를 통해 급속도로 확산되는 현상은 다른 측면에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과연 피해 아동은 대중들이 이 영상을 보는 것을 원했을까.

최근 아동학대 사건을 다루는 보도에서 피해 아동의 모습이 그대로 담긴 사진과 영상이 모자이크 처리 없이 노출되는 경우도 종종 목격할 수 있었다. 과연 이 사회 어른들이 아이들의 권리를 제대로 존중하고 보호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미디어를 통해 아동학대 영상을 불특정 아동들이 보게 된다면 이는 아이들을 또다른 ‘정서적 학대’에 노출시키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물론, 미디어가 영상을 노출한 이유는 아동학대의 심각성을 널리 알리고, 가해자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촉구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망자가 된 피해 아동의 ‘인권’을 가장 먼저 고려해야 했던 것은 아닐까?

2018년 보건복지부에서도 아동학대 사건 보도를 통한 2차 피해를 예방하고자 ‘아동학대 사건 보도 권고 기준’ 원칙 다섯 가지를 발표했다. 그중 첫째 원칙은 ‘아동의 인권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이며, 피해자와 가해자의 신원 공개 금지, 개인정보 노출로 인한 아동인권 침해 금지, 학대행위가 담긴 사진이나 영상 노출 및 자극적인 재연 금지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지난 4월 국회입법조사처의 ‘아동학대 관련 언론 보도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 보고서에서도 아동학대 언론 보도의 자극적인 이야기 구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언론의 아동학대 보도에 대한 실태조사 실시와 권고 기준 수립 및 이행 확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국민의 관심이 아동학대를 근절하는 기반이 되기에 아동학대 사건을 대중에게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아주 부정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 수많은 미디어를 통해 많은 국민들이 아동학대의 심각성에 대해 함께 공감하고 분노해주었고, 그를 통해 아동학대 예방 정책 등이 조금 더 빠르게 변화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더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미디어의 아동학대 영상 공개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말이다. 미디어의 아동학대 영상 공개 기준은 ‘아동의 인권’이 최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아동의 인권’보다 우선될 수 있는 가치는 없기 때문이다. 이를 지킬 수 있도록 정부나 관련 단체도 미디어의 아동학대 보도에 대한 권고 기준을 수립해야 하며, 하루빨리 이행될 수 있도록 법과 제도적 보완도 함께 이루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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