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판매량 실시간 공개' 원칙은 합의.. 접근권· 운영주체 이견 팽팽

나윤석 기자 2021. 6. 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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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의 불투명한 유통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출판유통통합전산망’이 9월 출범하는 가운데 정부와 출판계는 큰 틀에선 합의를 이뤘으나 세부 사항을 놓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대형 서점의 내부 전경. 교보문고 제공

■ ‘출판전산망’ 9월 출범

장강명·임홍택 인세누락 폭로

출협,여론 악화에 보이콧 철회

깜깜이판매 개선·작가보호 명분

정작 저자에 정보 접근권 안 줘

관리주체놓고 출협·정부 이견

출판 표준계약서도 갈등 불씨

소설가 장강명에 이어 ‘90년생이 온다’의 임홍택 작가까지 ‘인세 누락’ 경험을 폭로하며 출판계의 불투명한 유통 구조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9월 출범하는 ‘출판유통통합전산망’(출판전산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영화관·공연장 통합전산망을 벤치마킹한 시스템이 구축되면 출판사들은 도서별 판매량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교보문고·예스24·지역 서점 등 개별 서점이 운영하는 자체 공급망관리(SCM) 서비스에 일일이 접속해 판매 부수를 집계하는 불편함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동안 ‘민간 주도’를 외치며 정부의 출판전산망 사업을 ‘보이콧’하던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는 불공정 계약 관행에 대한 여론 악화에 따라 관련 논의를 하는 ‘출판유통정보화위원회’에 참여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출판계와 정부가 정보공개 범위, 운영 주체 등 여러 쟁점을 놓고 팽팽한 입장 차를 나타내고 있어 출범 때까지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출판사만 볼 수 있는 반쪽 시스템” 논란 = 출판전산망은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진흥원)과 함께 지난 2018년부터 약 60억 원의 예산을 들여 구축한 시스템이다. 현재 개발이 완료된 이 시스템에선 출판사만 자사의 도서 판매량을 확인할 수 있다. 출판사가 전산망에서 저자에게 판매 수치를 이메일로 공유할 수 있는 기능을 마련했으나 출판사에 ‘정보 공유 의무’가 부과되는 것은 아니다. “작가 보호를 위해 만든 시스템이 정작 저자에겐 정보 접근 권한을 주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김진형 진흥원 본부장은 “출판계와 작가 단체가 합의해 작가도 판매 부수를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하면 된다”는 입장이지만, 정보 공유를 꺼리는 일부 영세 출판사의 이해관계 탓에 쉽게 합의에 도달할지는 미지수다. 전산망 개발에 참여한 박성경 한국출판인회의 유통위원장은 “시스템에 가입한 모든 출판사에 ‘정보공개 동의’를 받아야 하고, ‘저자 인증’을 위한 데이터도 구축해야 하는 만큼 시간을 두고 논의해야 할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추후 협의를 통해 정보공개 범위가 ‘출판사+저자’로 확대되더라도 영화관·공연장 전산망처럼 일반 대중이 판매 통계를 들여다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문체부 관계자는 “수백 만에서 천만 이상의 관객이 몰리는 영화계와 달리 시장 규모가 작은 출판계에선 정보가 개방되면 사재기를 통해 순위 역전을 노리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관리·운영 주체 놓고도 ‘시끌’ = 전산망 관리·운영 주체 역시 핵심 쟁점 중 하나다. 출판계는 독일(엠파우베)·캐나다(북넷 캐나다)·일본(인프라센터)·프랑스(크릴) 등 해외 사례를 참고해 민간이 전산망 사업을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출판계 한 관계자는 “출판사들은 박근혜 정부 당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연루된 진흥원이 영업 정보를 들여다본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며 “해외 사례처럼 각종 출판단체가 전산망을 통해 수익 구조를 마련할 수 있도록 정부는 ‘지원자’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문체부 관계자는 “회원제 서비스인 외국의 경우 회원으로 가입한 출판사가 돈을 내야 정보를 볼 수 있는 구조지만, 무료로 접근할 수 있는 정부 시스템은 ‘공공성’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반박했다. 700여 개 회원사를 거느린 출판계 최대 단체인 출협이 그동안 전산망 사업에 불참한 이유 역시 ‘민간이 주도해야 한다’는 원칙론 때문이다. 진흥원이 꾸린 출판유통정보화위원회엔 교보문고·예스24·알라딘 등 대형 서점, 한국출판인회의 등만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출협은 최근 일부 작가와 출판사의 인세 갈등으로 ‘깜깜이 계약 관행’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 위원회 참여로 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출협 관계자는 “이번 주 중 상무이사회를 열고 전산망 위원회에 참여하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다만 출협은 이후에도 ‘민간 주도’ 입장을 고수할 방침이라 출판계와 정부의 줄다리기는 계속될 전망이다.

◇‘표준계약서’도 갈등 불씨 = 표준계약서는 출판전산망과 직접적 연관은 없으나 인세 누락 등 불투명한 출판계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시도라는 점에서 맥락이 닿는다. 실제로 진흥원이 23일 개최한 ‘표준계약서 설명회’에선 ‘대량납품 시 인세 강제 인하’ ‘출간 때 시집 200부 강매’ ‘부동산 투기 이유로 인세 미지급’ 등의 불공정 계약 사례들이 공유됐다. 문제는 올해 1월과 2월 출판계와 문체부가 한 달 시차를 두고 각기 다른 ‘표준계약서’를 발표했다는 점이다.

출판계 10여 개 단체가 만든 표준계약서는 출판권 존속 기간을 10년으로 하고 영화·드라마 판권 등 2차 저작권을 출판사에 위임하는 것이 핵심이다. 반면 문체부 계약서는 계약 기간을 공란으로 두고, 2차 저작물 저작권이 작가에게 있음을 명시했다. 이들 계약서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지만, 문체부는 정부가 배포한 계약서를 사용하지 않으면 세종도서 등 각종 지원 사업에서 배제할 방침이다. 출협은 “문체부가 지원 사업을 빌미로 사실상 사용을 강제하는 것은 계약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법적 대응에 나선 상황이다.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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