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은 우리를 풍요롭게 하는가? [오늘을 생각한다]

2021. 6. 23. 09:3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주간경향]
처음에는 색색의 풍선인가 했다. 풀 한포기 없이 황량한 민둥산 기슭 어딘가에 어울리지 않게 웬 풍선이 저렇게 많이 붙어 있지 했다. 가까이 가서 보니 풍선이 아니라 원색의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었다. 생명이라고는 살아남지 못할 것 같은 그 산에 위험천만해 보이도록 옹기종기 붙어, 그들은 무엇을 찾고 있는가.

미얀마 최북단 카친주의 파칸읍은 세계에서 가장 질 좋은 옥 매장지다. 1994년 휴전 이후 미얀마 군부는 무분별하게 광업 면허계약을 체결했고 기업들은 옥을 쓸어갔다. 폐기물과 돌덩이만 남아 황폐해진 산에서 프리랜서 광부들은 밤낮으로 옥 조각을 찾는다. 프리랜서라 하니 자유롭고 야심 찬 광부들 같지만, 사실은 일자리가 없는 주민들이 생계를 위해 목숨을 걸고 불법채굴을 하는 것이다. 이 지역에서는 매년 몬순 시기가 되면 폭우로 산사태가 발생한다. 그로 인해 2015년에는 110여명, 2019년 90여명, 2020년 200여명이 사망했다. 주민들은 사고의 가능성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당장 먹거리를 위해 산에 오른다.

또 하나의 사진은 필리핀이다. 석양의 해변은 색색의 쓰레기로 가득 차 있다. 그 중앙에는 아이들이 있다. 폐허 더미에 매달리고 올라가 바다를 바라보는 아이들. 얼핏 보면 프랑스 혁명을 그린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 떠오른다. 쓰레기 마을이라고 불리는 마닐라의 빈민촌, 톤도의 모습이다. 주민들은 쓰레기더미에서 재활용품 수거로 생계를 유지한다. 아이들도 예외는 아니다. 맨발로 쓰레기 속을 뒤지며 돈이 될 만한 플라스틱이나 물병을 찾는다.

얼핏 평화스러워 보이기까지 하지만 이야기를 들으니 현장은 쓰레기에서 나오는 독성가스와 오염물질로 아찔해 기절할 것 같다고 한다. 톤도는 원래 어획량이 풍부해 살기 좋은 지역 중 하나였다. 그러나 수도인 마닐라의 쓰레기가 어느 날부턴가 이곳에 쌓이게 됐고, 대한민국과 캐나다의 쓰레기도 이곳에 왔다. 물고기를 잡던 사람들이 이제는 쓰레기를 뒤진다.

우리는 무엇이든 사고팔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말인즉 무엇이든 사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이기도 하다. 전에는 거저 얻던 것들을 이제는 돈을 주고 사야 한다. 요즘에는 동네 축구가 사라져 축구를 가르치려면 클럽에 보내야 한다고 푸념하는데, 그런 식이다. 점점 더 돈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이 돼가고 있다. 미얀마의 광부들도, 필리핀의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난 5월 31일, P4G 서울 정상회의가 ‘서울선언’으로 끝을 맺었다. 파리협정에 따라 국제사회가 본격적인 행동을 시작하는 첫해인 2021년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개최되는 환경 분야 다자정상회의라 그 의미가 크다는 이 회의는 이벤트 치르듯 지나가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 그러나 P4G 기념사진 전시장에서 본 이 사진들은 슬픔이 절절해 잊히지 않는다. P4G는 ‘녹색성장 및 글로벌 목표 2030을 위한 연대’를 의미한다고 하는데 사진은 ‘녹색성장’이라는 단어의 아이러니를 꼬집는다. 성장은 녹색과 공존할 수 있는가. 성장은 우리를 풍요롭게 하는가.

지현영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

인기 무료만화

©주간경향 (weekly.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